ⓒ시사IN 양한모

이기찬은 요란하지 않다. 하는 활동마다 화려하게 홍보하지는 않는다. 내년이면 데뷔한 지 25년이 되는 중견 연예인이지만 그래서인지 지겨운 느낌이 하나 없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친근하기까지 하다. 청취자 고민 해결 사연에 맞춰 애절한 발라드곡 ‘플리즈(Please)’를 부르는 그를 듣고 있노라면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 그의 노래가 우스운 일은 한 번도 없다. 웃다가도 감탄하게 된다. 여전히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발라드 가수로 데뷔했고 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그의 음악 행보에 관성이란 없었다. 히트곡들이 간격을 두고 드문드문 있었다. 대중 가수로서는 고달프고 힘든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1990년대 가수 등용문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 뽐내기 대회’ 대상 출신이다. 진행자였던 이문세도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로 이기찬을 꼽는다. 그는 특유의 첫사랑 같은 톤과 호소력을 가진 ‘고교생 가수’였다.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또래 남성 발라드 가수들이 있었지만, 이기찬은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하며 차별점을 두었다.

그는 음악을 전공했고 자기 앨범을 직접 프로듀스했다. 이 노력은 당장에 대중적인 사랑으로 보답받지는 못했다. 데뷔곡이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잠잠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회사 사정 때문에 공들인 앨범을 거의 홍보하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2001년, 박진영에게 발라드곡 ‘또 한 번 사랑은 가고’를 제공받았다. 자기 음악을 만들던 그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이 곡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 ‘감기’를 직접 작사·작곡하며 결국 자기 손으로 만든 노래로 음악 방송 4주 연속 1위를 거머쥐었다. 데뷔한 지 6년 만이었다.

그러고도 그는 음악적인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8집 타이틀곡 ‘그대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다’는 딥하우스 장르의 도회적인 곡이었다. 딥하우스는 2010년대 중반 들어 샤이니가 다시 선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으니, 2004년에 내놓기에는 시대를 앞서간 선택이었다. 2007년 ‘미인’으로 다시 1위 가수가 되기까지 간격이 생겼지만, 명곡을 남겼다. 돌아보면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이기찬답다. 그만의 해석과 감성이 있되 과시하지 않는다.

요즘은 연기 활동이 훨씬 더 많은 그를 두고 음악 이야기만 해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올해 SBS 드라마 〈하이에나〉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고 작년에는 역시 SBS 드라마였던 〈녹두꽃〉, 또 2015년에는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8(Sense8)〉에 출연했다. 이 세 개 작품을 세 가지 다른 언어인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연기했다. 짧은 말로 정리하기엔 대단한 성과이건만, 그는 요즘도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며 부단히 노력하는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원래 그런 것처럼 말이다.

2020년 1월 상상마당에서 연 콘서트 영상 속 그는 녹슬지 않은 성량과 더욱 섬세해진 감성을 들려준다. 20세기에 데뷔한 가수들이 세월과 관리 소홀로 음악 팬들을 아쉬워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기찬은 새 분야를 개척하면서도 본래 잡고 있던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잔잔하게 늘 진행형이다. 그래서 좋다.

기자명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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