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17년 8월30일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위한 서명 제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그림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삽화는 적나라하다. 남성과 여성의 벌거벗은 모습이 나올 뿐만 아니라 성교 모습의 ‘단면도’가 그려져 있다. 아기가 나오는 장면도 가감 없이 묘사한다. 아빠, 엄마, 아기, 의사는 ‘모두 평범한 장면’이라고 말하는 듯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다. 덴마크 작가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아동용 도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이 책을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선정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배울 수 있는 책’을 꼽아 일부 초등학교에 보급하는 정책이다. 2019년과 2020년 총 199종 도서를 선정했다.

작은 정책이지만 여파는 컸다. 일부 학부모 단체는 8월20일 기자회견을 열어 나다움 어린이책 중 “포르노 같은 동화책”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외에도 동성애, 페미니즘을 다룬 책들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퇴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8월25일 김병욱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자 여론의 관심이 더욱 몰렸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의원은 몇몇 선정 도서에 “조기 성애화 우려까지 있는 노골적 표현이 있다” “동성애, 동성혼을 미화하고 조장하는 내용까지 담겼다”라고 주장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에도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여럿 올라왔다.

이튿날 여성가족부는 책을 회수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 등 일부 초등학교에 보급된 도서 7종이 대상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수 조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8월31일 “책들이 문제가 있는 것인 양 낙인찍어버렸다. (…) 블랙리스트의 어두운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성명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9월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성가족부를 질타했다. “극우 매체의 지적에 정부 정책을 하루아침에 바꿨다(신동근 의원)” “서구 국가에서는 정확한 성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성교육을 하자는 공감대가 크다(권인숙 의원)” 따위였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코로나19로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것 같았다”라고 해명했다.

이 문제는 정책 하나가 부른 단발성 논쟁이 아니다. 성교육 방향을 둘러싸고 반복되어온 두 철학의 줄다리기에 가깝다.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아동·청소년을 성폭력뿐만 아니라 성행위 전반과 떼어놓아야 한다고 믿는 보수적 성교육이 건재했다. ‘순결교육’이나 여성 생리주기 등에 치중한 성교육이 이뤄졌다. 구체적인 내용을 더 다루게 된 계기는 성폭력 사건이었다. 1997년 청소년 4명이 성폭행을 주도하고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서 배포한 ‘빨간 마후라’ 사건이 벌어졌다. 교내에서 음란 비디오 매매가 빈번해지고, 중학생 교내 출산 사건이 일어난 시기였다. 성교육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육 당국은 월경, 혼전임신, 자위행위 등을 다룬 성교육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2006년에는 모든 학교에 연간 10시간 이상 성교육이 의무화됐다.

여성계와 현장 성교육 전문가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은 ‘성의 인지·정서·신체·사회적 측면을 가르치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나 성병 예방 등 생물학적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바탕이다. 포괄적 성교육에서 성은 남녀가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시작되며, 평생 존속하는 개인의 권리다. 성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나누고 노인과 아이를 배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주체적 권리 영역이라고 접근한다.

ⓒ김병욱 의원 제공〈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에서 논란이 된 부분. 노골적인 성관계 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포괄적 성교육을 주장하는 이들은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비판한다.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사용하도록 권고한 안인데, 시대착오적이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서술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치마를 입은 여성 그림 옆에 ‘안전하고 편안한 옷차림’이라고 쓰거나, ‘남성은 성에 대한 욕망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나타난다’고 적은 부분 따위다. 교육부는 이 자료의 문제되는 부분을 삭제했다가, 현재는 홈페이지에서 내렸다.

핀란드가 실시한 ‘포괄적 성교육’의 효과

보수적 성교육만 저항에 부딪힌 것은 아니다. 현장 교사들이 전위적인 성교육을 시도하자 일부 학부모는 반발했다. 지난 7월 바나나에 피임기구를 씌우는 성교육을 하려다 학부모 항의로 실습이 취소된 고등학교 사례가 단적이다. 광주의 윤리 교사 배이상헌씨는 성윤리 단원을 가르치던 중 여성이 상반신을 노출하는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상영해 경찰·검찰 조사를 받았다(〈시사IN〉 제650호 ‘페미니스트 교사가 성희롱 멍에 쓰기까지’ 참조). 검찰은 수사 13개월 만인 지난 8월11일 그에 대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결정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논란은, 전통적 성교육과 포괄적 성교육 사이 어딘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교육 현장의 일례다.

ⓒ시사IN 조남진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소장은 “성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태도와 기술을 함께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포괄적 성교육 움직임에 가장 강하게 저항하는 축은 ‘반동성애기독시민연합’ 등 종교색을 띤 단체다. 이들이 ‘성경에 금욕하라고 적혀 있다’는 식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아이들의 조기 성애화(sexualization) 가능성을 언급한다. 성행위 과정, 피임 방법 등을 배운 아이들은 이 분야에 관심이 더 짙어지고, 실행해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병이나 원치 않는 혼전 임신을 겪는 아이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는 우려 역시 이 논지에 가깝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애가” 급진적인 성교육에 노출되면 돌연 임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교육 연구가 다수 축적된 WHO 유럽지부에 따르면 이 주장은 세계적으로도 흔하게 나오는 우려다. 하지만 그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포괄적 성교육은 성적 활동이나 성병 감염률을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네스코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금욕을 조장하는 성교육은 성경험을 늦추거나 성행위 빈도·파트너 수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유네스코는 “젠더에 초점을 맞춘 성교육은 젠더를 배제한 프로그램에 비해 의도치 않은 의심과 성병을 줄이는 데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포괄적 성교육이 ‘문란함’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다.

청소년 임신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금욕 교육’이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검증한 곳이 있다. 국제연합인구기금과 WHO 유럽지부, 독일 연방보건교육센터는 2016년 보고서에서 핀란드를 예시로 들었다. 1990년 핀란드는 청소년 임신율을 낮추기 위해 구체적·종합적인 학교 피임 교육을 확충했고, 즉각 효과를 봤다. 그런데 1998년 예산 문제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축소하자 낙태와 출산은 다시 증가했다. 2006년 다시 성교육을 도입하자 임신은 또 줄어들었다. 이 결과에 대해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성교육은 △콘돔 등 피임기구에 대한 구체적 지식 △피임기구를 쓰는 이유와 태도 △파트너가 사용을 거부할 때 쓰는 기술 △피임 서비스와 상담을 찾는 능력 등을 가르치기 때문에 10대 임신율을 감소시키는 것 같다.”

말하자면 포괄적 성교육은 프리섹스 운동이나 청소년 성행위 권장이 아니다. ‘성행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그 후에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자세히 열거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임신과 성병을 방지하는 데에만 치중한 성교육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 방식이 불완전하고 효과가 없어서다. WHO 유럽지부는 홈페이지의 ‘성교육 표준안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에서 “왜 성교육이 성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소개했다. WHO 유럽지부는 “임신, 성병 등 부정적 요소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은 다수 젊은이들이 원하는 정보, 기술, 삶과 관련이 없다. 이는 그들의 호기심, 흥미, 욕구와 부합하지 않으며, 결국 의도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없다”라고 답했다. 축적된 연구 결과는 이렇다. 금욕이나 순결을 강조하는 교육은 실제 금욕과 순결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이들이 임신하거나 성병에 걸리지 않길 원한다면 구체적 성교육을 하는 게 낫다.

학교 성교육의 실패는 차이만 강조했기 때문

그러면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2001년부터 청소년 성교육과 상담을 해온 이명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소장은 “‘노골적이냐, 비노골적이냐’는 핵심이 아니다. 체계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을 비롯해 포괄적 성교육을 말하는 이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피임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예컨대 중학교 2~3학년쯤 피임 교육을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피임에는 콘돔이 있고 약이 있고…’라는 지식 전달을 넘어서야 한다. ‘오빠가 알아서 하겠지’가 아니라 피임을 주장하는 법, 성관계 동의를 어떻게 구할지 등 전후 맥락과 태도, 기술을 함께 말해야 한다.” 학교 교과서도, 인터넷 음란물도 다루지 않는 영역을 성교육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포괄적 성교육을 지지하는 이들은 보건·간호학 외에도 사회·윤리·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국가 차원의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 선결 조건이 2015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기라고 본다.

이 일을 공교육에서 담당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각 가정이 부모 가치관과 아이 수준에 따라 가르칠 일이라는 것이다. 수학이나 역사와 달리, 성교육은 학부모마다 무엇을 얼마나 가르칠지에 대해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더러는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도 있다. 성교육 담당 교사와 전문 강사들은 학부모들의 성교육관이 ‘극과 극’이라고 말한다. 30년간 도덕 교과를 가르쳐온 배이상헌 교사는 그럼에도 공교육만이 맡을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몫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의 역할은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교육은 차이가 있는 이성 간에 서로 고민을 듣는 과정이다. 그 결과 서로를 현실의 주체로 바라보고, 시민으로 만날 수 있다.” 그는, 학교 성교육의 실패가 차이만 강조한 교육 때문이라고 했다. “다 같이 친구들이던 아이들이 성이라는 주제만 들어가면 ‘남자들’ ‘여자들’로 울타리를 치게 된다. 대상화의 시작이다.”

일부 기독교 매체들은 서구의 성교육과 성적 문란함의 상관관계를 강조한다. “한국은 서구와 다르다”는 주장이다. 가령 지난 1월22일 김지연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는 〈기독신문〉 기고에서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에게 정확한 외부 성기의 명칭과 사용법, 성관계하는 법을 가르쳤던 덴마크는 고도의 인간 성애화를 경험했다”라고 썼다. 하지만 덴마크와 다르게 가르치는 한국에서, N번방 사건 같은 끔찍한 일이 잦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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