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코로나19 재확산으로 등교수업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9월1일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초등학생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1학기가 지나갔다. 초중고교 개학이 4차례 연기됐고 온라인으로 겨우 학사 일정을 맞춰가다가 6월이 되어서야 제한된 횟수로나마 오프라인 등교가 시작되었다. 어찌어찌 수업시수를 채우고 여름방학도 보냈다. 이제 또 사상 초유의 2학기가 시작되었다. 8월 중순 수도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2차 대유행 탓에 고3을 제외한 초중고 학생 대부분이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태블릿 PC 화면을 바라보며 새 학기 수업에 들어갔다. 곧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겨울방학도 찾아와서 2학기가 끝날 게 분명하다. 이렇게 1년을 채우면 초1은 초2로, 초6은 중1로, 중3은 고1로, 고3은 대학생으로 진학할 것이다. 굴러가야만 하는 우리나라 공교육 학사 일정은 인류사 최초의 전 세계적 팬데믹 혼란의 예외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2020년에 아무리 허망하게 1학기와 2학기를 흘려보냈더라도 그 공백의 시간을 되돌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일시 멈춤’이 안 되는 학사 일정에 허덕여 쫓아가면서도 놓치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사상 초유의 시간들을 평가하는 일이다. 온라인 학교라는 것이 얼마나 학교다웠는지,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과연 학습의 매개체 구실을 제대로 해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갑자기 집에 온종일 머물면서 학생들은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그를 돌보는 보호자들은 또 그것이 어떤 시간이었을지, 학생을 만나지 않는 교사들은 무엇을 했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교육 부문의 변화들이 각각에게 미친 영향은 어땠는지, 누군가에게는 특히 더 가혹한 위기가 아니었는지 물어야 하고, 달라진 학교와 사회를 바라보는 교육 주체들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 금방 끝나지 않을 ‘사상 초유의 시간’ 속에서도 대한민국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까지 ‘~일 것이다’라는 가설 속에서 그 평가들이 추측돼왔다면,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수행한 조사연구 ‘코로나19와 교육: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는 실증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이후 한국 공교육 현장의 변화를 증명한다. 연구팀은 지난 7월15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내 초중고 800개 학교의 학생·학부모·교사에게 온라인 설문지를 돌렸다. 학생에게는 수면·식사에서부터 온라인 학습, 사교육, 교우 생활, 정서 부분까지 코로나19 이후 겪은 변화를 90개 문항으로 물었다. 학부모에게는 온라인 학습 지원과 자녀 돌봄 등에 관한 문항 40개, 교사에게는 온·오프라인 수업 운영, 학생 생활 지도 등에 관한 문항 77개를 제시했다. 초중고 학생 2만1064명, 학부모 3만1042명, 교사 3860명, 총 5만5966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전국을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변화를 살피는 이 같은 대규모 실증연구는 앞서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다른 지자체나 전국 단위에서도 이런 조사가 시급하다.

〈시사IN〉은 이번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조사 결과들 중 일부를 발췌해 제678호와 제679호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먼저 ‘코로나19로 달라진 학생들의 삶’이다. 그간 예상했던 모든 암울한 전망들이 다 들어맞았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전반적 삶의 질이 떨어졌다. 학업 부담은 줄지 않고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 기회가 차단됐다. 취약계층일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누누이 우려해왔던 바대로, 재난 속에서 실제로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절망적인 신호만 있지는 않다.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학생들은 자신을 둘러싼 학교와 사회를 다시 돌아봤다. 학교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그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예상하며, 또 요구한다. 여기 그 절망과 희망의 증거들이 있다.

■ “친구 못 만나고, 경험 제한되고, 영상매체 보며 공부만 더 해요”

12쪽 〈그림 1〉은 코로나19 이후 초중고 학생들 삶의 변화를 시각화한 그래프다. 회색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 비율이고, 빨간색과 파란색은 변화를 겪었다는 응답 비율이다. 회색 부분도 어느 정도 차지하니 코로나19가 학생들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은 건 아닐까? 연구책임자인 이정연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교육통계센터장)은 이 통계를 읽는 방법을 알려줬다. “‘변화했다’는 비율이 10%가 아니라 거의 50~60%, 혹은 그 이상이라는 점에 분명 의미가 있다. 학생들 절반 이상이 코로나19로 일상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회색의 비율을 통해 변화의 정도를 측정했다면, 이번에는 변화의 방향을 보아야 한다. 빨간색 비율이 높을수록 해당 부문의 경험과 시간이 늘고, 파란색 비율이 높을수록 그 경험과 시간이 줄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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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독해법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의 삶은 여러 부문에서 꽤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학생들은 공부를 위해서든 놀기 위해서든 미디어 사용 시간이 늘었다. 사교육 시간, 학교 과제 시간도 늘었다. 동시에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냥 있는 시간도 늘었다. 반면 운동·산책 시간, 밖에서 친구 만나는 시간, 문화놀이공간 방문 시간은 확 줄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2020년 1학기,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거나 미디어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혹은 무료하게 시간을 때웠다.

증가한 시간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가장 두드러지게 늘어난 시간은 TV,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미디어 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다. 전체 초중고 학생의 68.8%, 46.7%가 ‘학습 목적’과 ‘학습 외 목적’으로 미디어 이용 시간이 증가했다. ‘감소’라고 답한 비율은 4.6%와 9.5%밖에 안 된다.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하니 당연한 결과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 이용 시간이 ‘학습 목적’이든 ‘학습 외 목적’이든 하루 평균 4시간 이상인 비율이 각각 22.2%, 23%이다. 학생 4분의 1 정도는 하루 8시간 이상 미디어 기기 화면을 들여다보고 살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미디어 노출 증가가 심각하다. ‘학습 목적’으로 74.8%, ‘학습 외 목적’으로 61.6%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오랫동안 미디어 기기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그 증가 폭이 전 학년층 가운데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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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노출 시간과 더불어 늘어난 것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다. 학교는 문을 닫았는데 사교육 시간은 도리어 늘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한 학원 및 과외 수강 시간을 물었을 때 29.6%가 ‘늘었다’고 답했다(‘줄었다’ 14.9%, ‘이전과 비슷하다’ 55.5%). 집에서 숙제, 수행평가, 지필평가 준비 등을 하는 공부 시간도 53.1%가 ‘늘었다’(‘줄었다’ 9.3%, ‘이전과 비슷하다’ 37.5%)고 답했다. 동시에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냥 있는 시간’도 증가했다. 전체 학년의 31.2%가 ‘늘었다’(‘줄었다’ 18.7%)고 답했다. 이번에도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그 비율이 가장 높았다(39.3%). 학생들은 양극단의 한 학기를 보냈다. 늘어난 과제와 사교육 부담에 허덕이거나, 공백의 시간 속에서 방치되거나.

학습 시간, 미디어 이용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면 분명 줄어든 시간도 있을 터다. 무엇일까? 조사 결과 학생들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감소한 시간은 운동·산책 시간, 문화놀이공간을 방문하는 시간, 그리고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 등이다. 전체 학생의 18.9%가 하루에 운동·산책을 하는 시간이 전혀 없었고, 42.8%는 1시간 미만 동안만 몸을 움직였다. 35.2%가 하루에 한 번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고, 23.3%가 1시간 미만 동안만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 신체 활동과 사회생활 시간 감소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또 가장 심각하게 나타났다. 운동·산책 시간, 친구와 만나는 시간, 친한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 문화놀이공간 방문 시간 모두 전 학년층 가운데 ‘줄었다’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39.1%는 코로나19 이후 하루 평균 한 번도 친구들과 만나지 못했다(1시간 미만 29.5%, 1~2시간 18%, 2~3시간 8.3%, 3~4시간 3%, 4시간 이상 2.1%). 하루 중 친한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도 아예 없거나(14.2%), 1시간 미만(52.1%)이 대부분이었다.

김선숙 아동권리보장원 아동정책평가센터장은 이 같은 감염병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관계 단절이 초등 저학년과 같은 유년기 아동들에게 특히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릴수록 사회관계라는 것은 양과 관련돼 있다. 성인기에는 한 명이라도 친한 사람이 있으면 되고 관계의 질이 중요하지만, 아동기는 충분한 양 속에서 경험하고 선택해가면서 관계의 질을 구축해나가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그나마 고학년 청소년은 나름대로 관계를 맺어온 경험들이 어느 정도는 축적돼 있지만 지금 초등 저학년은 양적으로 부대끼는 과정을 놓치는 바람에 관계 속에서 인지와 사회성 등 발달 과업을 이뤄낼 기회를 아예 빼앗겨버렸다.”

아이들 스스로도 그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생활 중 가장 힘든 부분을 물었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은 1순위로 ‘친구 관계’를 꼽았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평가 및 과제하기’ ‘학교 일정 따라잡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았다(〈그림 6〉 참조). ‘감염병 예방수칙 준수’도 주요 고충으로 새로 등장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높게 꼽은 ‘평가 및 과제’나 ‘학교 일정 따라잡기’ 고충의 비율은 교육이 어떠한 측면에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있던 문제들은 사라지거나 약해지지 않고 새로운 문제만 추가됐다. 이정연 연구위원은 “코로나 전이든 후든, 온라인이든 대면이든 기존 교육이 갖고 있던 입시와 평가의 문제들이 깨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에 친구 관계라든지 방역의 문제들이 더해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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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 격차를 보정해주던 학교의 기능이 사라졌다

‘재난은 약한 곳부터 부서트린다.’ 이 명제가 교육 부문에서도 증명됐다. 모두가 교육의 변화를 겪었지만 그것들로부터 받은 영향과 후유증의 정도는 결코 동일하지 않았다. 취약계층 학생일수록 더 깊고 길게 겪었다. 집이 가난할수록 온라인 수업에 더 못 따라가고,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의 생활과 인식의 변화 응답을 가정형편 상·중·하 계층별로 나눠 교차 분석해보았을 때 확인되는 내용들이다.

온라인 개학을 시작하며 우리 사회가 가장 걱정한 부분은 ‘디지털 기기 소유 여부’에 따른 격차였다. PC나 스마트폰, 태블릿이 있어야 수업 참여가 가능한데 기기가 없는 학생들은 학습권 자체가 가로막히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교육부가 급히 예산을 배정해 각 학교에 내려보내고 학교들은 수요 조사를 벌여 기기들을 구입해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그 덕분인지 전체 82%의 학생들이 ‘학교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이정연 연구위원은 ‘갖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18%도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지금 온라인 수업을 위한 디지털 기기가 없다는 것은 교실에 나온 학생들에게 책상과 의자가 없다는 말과 같다. 82%가 언뜻 생각하면 높은 수치 같지만, 한 반 학생이 20명이라고 할 때 3~4명은 아예 수업에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나마 기기 소유 여부는 계층별 격차가 크지 않다. 가정형편 상층 81.6%, 하층 79.7%로 차이가 미미하다. 격차는 기기 소유 여부보다 수업 ‘환경’에서 더 벌어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집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적어도 공교육 수업만은 같은 교실 안에서, 비교적 동일한 환경 속에서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각자의 ‘가정 배경’이 곧 ‘수업 환경’이 되었다. 가난한 집 학생일수록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학습하거나, 기기가 낡거나, 인터넷 속도가 느려 학습에 방해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비율이 높았다(〈그림 7·8〉 참조). 조용하고 쾌적한 개인 공부방을 가진 학생과, 에어컨 없는 좁은 집에서 형제자매와 부대끼며 교과서 진도를 나가야 하는 학생의 출발선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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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고 불편하다’는 비율도 저소득층 학생이 높다(〈그림 9〉 참조). 하층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어렵거나 궁금한 점이 생겨도 선생님이나 보호자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혼자 해결하거나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고(〈그림 10〉 참조), 집에서 숙제·수행평가·지필평가 준비 등을 하는 시간은 중층·상층 학생에 비해 지나치게 많거나 적었다. 그만큼 학습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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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에는 학교 선생님이 매일 알림장 내용을 불러주고 준비물과 숙제를 까먹으면 잔소리도 해줬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가정 내 보호자 말고는 아무도 학생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보호자가 자녀의 학습과 과제에 신경 쓰고 말고의 차이(〈그림 11〉 참조)는 예전보다 훨씬 더 큰 교육격차를 만든다. ‘나의 보호자는 학교 일정과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챙겨준다’는 비율조차 계층 간 차이가 벌어진다. 경기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형편이 어렵고 부모가 여유가 없는 가정의 경우 시시때때로 바뀌는 등교 일정을 숙지하지 못해 자녀를 미등교일에 등교시키거나, 등교일에 등교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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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에서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한 여러 복지사업이 시행되곤 있지만 대면 기회가 줄어든 요즘 시기, 그런 혜택의 ‘공지’는 진짜 필요한 이들에게 좀처럼 잘 가닿지 않는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취약계층 학생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교육복지사)’로 일하는 한정희씨는 최근 교내 교육복지 대상 학생들에게 1인당 3만원어치 방역물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꾸려 ‘e알리미(학교 알림장 앱)’를 통해 신청을 받았다. 대상 학생 학부모 다수가 공지를 확인하지 않아 “e알리미 공지를 확인해주세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그마저 회신이 없는 가정에는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한씨는 “모바일 데이터가 들어 공지를 확인하지 않거나, 아예 앱 활용법 자체를 모르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교육복지사가 재직하는 소수의 학교는 이렇게라도 신경을 써주지만, 대다수는 ‘공지’ 이상을 해주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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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엉망으로 먹고 자고, 더 우울하고 더 외롭다

코로나19가 벌인 격차는 학습 외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학습뿐 아니라 수면, 식사, 사회관계, 정서적 측면 모두에서 학생들 사이 계층별 불평등이 심화됐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잠자는 시간의 변화’를 물었을 때 하층이 ‘이전과 비슷하다’는 응답은 상중하 가운데 가장 적고, ‘줄었다’거나 ‘늘었다’는 비중은 가장 많았다(〈그림 14〉 참조). 더 많이 자거나 더 적게 자거나, 가난한 집 학생일수록 수면 습관의 변화를 더 많이 겪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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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의 격차는 더 심각하다.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평일 점심을 먹는지를 물었을 때 ‘항상 먹는다’는 비율이 상층은 65.4%인 반면 하층은 41.1%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전이라면 가정환경이 어떻든 학교에서 동일하게 급식을 먹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던 격차다. ‘코로나19 이후 편의점 음식, 패스트푸드를 더 먹는다’는 비율도 하층 학생일수록 높았다. 반면 상층 학생은 코로나19 이후 편의점 음식, 패스트푸드 비중은 줄고 집밥(한식) 비중은 느는 경향을 보였다. 학습뿐 아니라 생활습관과 식습관의 격차도 보정해주던 학교의 기능이 사라진 탓에 나타난 현상들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일수록 코로나19 이후 미디어 노출 시간이나 ‘아무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 시간들이 하루 4시간 이상이라는 학생 비율도 계층별 차이가 뚜렷하다(〈그림 16·17〉 참조). 밖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산책을 하는 시간은 반대로 가난한 학생일수록 코로나19 이전보다 감소했다(〈그림 18〉 참조). 이렇게 코로나19는 학교 시간표에 맞춰 동일하게 흘러가던 학생들의 학기 중 평일 시간을 갑작스레 각자의 재량에 맡겼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활용하는 역량은 계층별로 갈렸고, 시간 배분의 결과는 또 한번 계층의 격차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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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시간을 보내는가’가 이 격차에 관여한다. 평일 등교수업이 없는 날 어디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을 때, 계층에 상관없이 85% 이상이 ‘집’이라고 답했다. 차이는 그 시간 ‘함께 있는 사람’에서 벌어진다. 상층 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경우가 반 이상(52%)이고 혼자 있는 경우는 15%에 불과하지만, 하층 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 비율(35%)이 상층에 비해 훨씬 적고 혼자 있는 비율(28.6%)이 훨씬 높다. 이 격차는 ‘정서의 격차’를 만든다. 최정원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정신과 과장은 최근 진료실에서 그 격차를 목격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부모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거나 안정적인 수입이 유지되는 가정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대화가 많아지면서 심리 상태가 오히려 호전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반면 생계 문제 때문에 긴급돌봄에 보내야 하거나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적어지는 가정은 반대로 아이의 심리 상태가 더 불안해졌다.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실제 학생들에게 지난 7월 ‘요즘 행복하냐’고 물어봤을 때, 계층에 따라 응답이 크게 달랐다. 상층 학생은 72.5%가 행복하다고 했는데 하층 학생은 거의 반토막이다. 39%만 행복하다고 했다(〈그림 19〉 참조). 짜증이 나거나, 코로나19 이후 미래가 불안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날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부정적 감정도 하층 학생이 훨씬 강했다. 당연한 걸까? 김선숙 아동정책평가센터장은 이 같은 결과들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어느 정도 물질적 결핍만 없어도 행복하다고 답하는 경향이 있어서, 계층 간 행복도 차이의 변별력이 대개 이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상층에 비해 하층 학생들의 부정적 정서가 2배 가까이 높이 나온 걸 보면, 놀 거리도 없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대화 나눌 사람도 없이 미디어에만 계속 노출되는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아동, 특히 취약계층 아동에게 심각하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깊이 인식하고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사IN 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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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만석동에서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공부방 ‘기찻길옆작은학교’를 운영하는 김중미 아동문학 작가는 학교든 지역아동센터든 방역을 위해 문을 닫는 일이 속출하는 요즘, 가장 걱정되는 것이 취약계층 학생들의 ‘마음 건강’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아이들로부터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같은 말을 최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얼마 전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다는 소식을 전하자 공부방의 초등 저학년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저기 다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고립에 대한 불안, 충격이 아이들 사이 너무 커요. 이런 아이들의 심리 상태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라고 김 작가는 말했다.

■ 교육의 ‘뉴노멀’ 요구하는 코로나 세대

기존의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학생들은 절망의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낼 수 있는 희망의 싹도 틔우고 있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교육의 ‘뉴노멀’을 정립하는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교사·학부모에 비해 훨씬 더 교육의 변화에 유연하고, 교육복지에 대한 요구가 강하며, 코로나19 이후 사회 전반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다.

먼저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유지될 것이다’에 응답한 비율을 보자(〈그림 23〉 참조). 이에 긍정한 학생 비율은 44.4%로 교사(31.9%)에 비해 훨씬 높다. ‘온라인 수업을 하더라도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즉 대면 수업의 필수성에 동의하는 비율(74.7%)도 교사(96.5%)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다(〈그림 24〉 참조). 또 학생 86.8%는 말했다. “감염병에 대비해 학교와 교육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앞으로 교육의 모습이 코로나19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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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복지에 대한 요구도 기성세대에 비해 강하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에 대비해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는 등교와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마스크 무상제공, 식재료 제공 등 필수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정보통신 기기가 제공되어야 한다’ 등에 학생 80% 이상이 동의했다(〈그림 27~29〉 참조). 교사나 학부모보다 일관되게 높은 비율로 교육복지 강화 쪽에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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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은 어떨까? 7월 중순 이후,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다소 느슨해진 시기에 벌인 설문조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84%가 ‘다중이용시설 자제나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은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답했다(〈그림 26〉 참조). 학생들은 코로나19 이후 감염병, 기후변화, 자연생태계, 병원 및 의료, 건강문제,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졌다(〈그림 25〉 참조). 학생 20.5%는 코로나19로 인해 진로나 장래희망 직업이 변했다고 답했다. 예전과 다른,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이른바 ‘코로나 세대’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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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관한 새로운 세대의 생각과 요구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응답해야 할까. 이수광 경기도교육연구원장은 “학생들의 이런 유연한 교육에 대한 관념, 인식 체계를 제도가 끌어안음과 동시에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공적으로 해결할 건가에 어른들이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이수광 원장은 학생들의 높은 교육복지 감수성을 보며 ‘시민교육의 창이 열렸다’고 느낀다. “국가나 사회가 계약관계에 있는 시민을 위해 좀 더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감각이 어른들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 새로운 시민교육의 창이 활짝 열린 상황에서 정부·사회·학교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제가 던져졌다.”

기자명 글 변진경 기자·그래픽 최예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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