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월26일 코호트 격리된 부산 아시아드 요양병원의 중증 환자가 부산의료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지난 3월11일 정유엽 학생(17)이 경북 경산시 백천동 경산중앙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30분이었다. 운영 시간이 지난 선별진료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체온이 41℃를 오르내렸지만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응급실 출입도 거부당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조치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부모의 간곡한 요청으로 차 안에서 맞은 링거가 치료의 전부였다.

경산중앙병원에서는 상급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써줬다. 구급차 이송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는 호흡곤란으로 헐떡이는 아들을 태우고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병원까지 달려갔다. 영남대병원 음압병실에서도 코로나19 검사가 이어졌다. 결국 폐렴이 악화된 정유엽군은 3월18일 숨을 거뒀다. 건강했던 아들을 일주일 만에 잃은 부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내며 이렇게 적었다. “저희 가족은 ‘차라리 우리 유엽이가 코로나19에 걸렸으면 제대로 된 치료라도 받을 수 있었고 죽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응급 혹은 만성 환자가 의료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좁아졌다. 단지 열이 난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염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의심을 풀 방법은 음성 판정을 받는 것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검사는 독감 검사와 달리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최소 8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골든타임’이 지나간다. 비(非)코로나 환자에 대한 의료공백은 이렇게 생긴다.

시민단체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7월 말부터 의료공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약 한 달 만에 접수된 사례가 50여 건에 달한다. 정기적으로 신장 투석을 받아왔으나 발열 때문에 진료 일정이 지연되면서 상태가 악화된 환자부터 중이염 증상이 코로나19로 오인된 경우까지 다양하다.

지난 2~3월 대구에서는 비코로나 환자에 대한 의료공백이 컸다. 당시 보건 당국은 일부 의료기관을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해,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비호흡기 질환 환자의 진료를 분리하도록 했다. 정유엽군이 처음 찾아간 경산중앙병원도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된 곳이었지만, 그는 고열이 난다는 이유로 응급실에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의심되는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먼저 선별진료소에서 음성 결과를 받아야만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권정훈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국민안심병원에서 뜻하는 ‘안심’이 환자의 안심이 아니라 위험을 원천 차단한 병원의 안심이라고 지적했다.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응급환자가 병원 문턱에 발도 못 붙이게 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응급환자일수록 빨리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끔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병원에서 감염을 우려해 응급환자 받는 것을 꺼리자 보건 당국은 3월11일 ‘중증응급진료센터(중증센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증센터는, 발열과 호흡기 증상이 있더라도 환자의 증상이 심각하다면 우선 처치할 수 있는 격리병상을 갖춘 의료기관이다. 이 조치에 따라 각 시도는 최소 2곳의 병원을 중증센터로 지정해야 했다. 중증센터가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격리병상은 최소 5개다.

하지만 ‘시도별 중증응급진료센터 2곳’이란 기준은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부교수는 “한 달 동안 서울시에서 발열·호흡기 증상 때문에 119 구급차로 이송되는 환자가 평균 3000~4500명이다. 하루 100~150명꼴인데, 현재 서울시 내 중증센터 9곳에 있는 격리병상은 다 합쳐봐야 약 50개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도보나 자가용,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격리병상에서 소화해야 하는 일일 환자 수는 거의 300명으로 치솟는다. 게다가 한번 격리병상에 들어간 환자는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빈자리가 빨리 생기지도 않는다. 장은영 서울대병원 응급실 간호사는 “하루에 1~2건, 많으면 3~4건까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상황이 악화된 환자를 본다. 받아줄 병원이 없어서 구급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경기도 파주에서 이곳 서울시 종로까지 온 환자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유엽사망대책위 제공6월16일 고 정유엽군의 유가족과 대책위 관계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정유엽군 사망 진상조사와 비(非)코로나 환자 의료공백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응급환자 중 위급한 1단계 환자는 7%뿐

그렇다고 격리병상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상은 일반 병실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격리병상을 늘리면 그만큼 다른 환자에게 돌아갈 병실이 줄어든다. 공공의료기관이 중증센터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소외계층에게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는 더욱 축소된다. 홍기정 부교수는 “서울대병원은 공공의료기관인 만큼 행려자를 많이 담당하기 때문에 결핵 환자도 많다. 코로나19로 병상이 꽉 차 있는 상황이라 결핵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결핵 환자뿐만이 아니다. 빈곤층, 이주민 등 이미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진료받기가 더욱 힘들게 되었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노동건강연대 대표)은 “팬데믹 상황에서 ‘초과 사망’ 발생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소득이나 계층에 따라 초과사망률이 크게 다르지 않도록 사회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초과 사망’이란 일정 기간에 평균 수준을 초과해 발생한 사망을 의미한다. 홍윤철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단장(예방의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대구의 초과 사망자는 187명이었다. 이상윤 책임연구위원은 초과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이나 양상에 대해서도 추후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격리병상 확장이 어려울 때 의료공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더 위급한 환자가 먼저 격리병상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홍기정 부교수는 “응급환자 150명을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중증도 분류체계에 따라 지금 당장 의사가 진료를 봐야 하는 1단계 환자는 10여 명뿐”이라고 말했다. 열이 나서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구급차를 부른 사람들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일분일초가 급한 심정지 환자나 중증 외상 환자들은 빈 병상을 찾아 구급차를 타고 이 병원 저 병원 떠돌게 된다. 구급차가 환자를 싣고 계속 헤매는 동안 또 다른 응급환자는 구급차마저 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원래 고질적이던 응급실 포화 상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됐다. 결국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공백을 메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정적인 의료자원을 위급한 사람에게 먼저 배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홍기정 부교수는 진료 순서의 효율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응급실 가면 어떻게든 해주겠지’라는 생각만으로 구급차를 부르는 분들이 많다. 중증도 분류체계에 따르면 3~5단계 환자는 세 시간 안에만 진료를 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응급실에서 의사가 세 시간 만에 나타나면 대부분 멱살부터 잡는다. 진짜 응급한 환자는 화를 낼 기운도, 멱살을 잡을 힘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치료 기회가 돌아가는 식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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