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2020년 8월11일 섬진강이 범람하면서 전남 구례읍 일대가 큰 침수 피해를 입은 가운데 구례시장에서 이불을 팔던 한 상인이 쉬고 있다.

폭염도 장마도 제멋대로다. 사람들은 이미 기후위기 시대를 피부로 감지하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재직 중인 홍종호 교수는 경제학자다.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경제’와 ‘환경’ 분야는 어떻게 만나는 걸까. 경제학은 기후위기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2020년 4월23일 영국의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흥미로운 만평이 실렸다. 사각의 링에서 지구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치열하게 권투 경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엄청난 덩치의 선수가 링 안을 쳐다보는 그림이었다. 링 밖 선수의 이름은 ‘기후변화’. 링 안 경기에는 ‘예선전’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경제 이슈를 다루는 전문지에서 기후변화를 이토록 부각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기후변화가 지난 200여 년간 인류의 지상 과제였던 경제성장을 제약하고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첫해이던 1989년, 나는 기후변화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학제 간 세미나’ 수업이었다. ‘온난화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세계 각 지역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형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막 시작될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오늘날, 지구온난화는 더욱 일반화된 개념인 기후변화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기후 비상사태’라는 용어가 사용될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해졌다.

기후변화란 현재의 기후 상황이 자연적 요인과 인위적 요인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연적 요인은 대기가 해양, 바다 얼음, 육지 등 지구를 구성하는 다른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

문제는 인위적인 요인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에 따라 기후변화가 진행된다. 지난 수십 년간 지구 온도가 상승하는 이유를 두고 과학계에서는 수많은 연구와 논쟁이 있었다. 이 문제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기구인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2014년 펴낸 공식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진단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기후변화를 일으킨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활동일 가능성이 95% 이상으로 ‘거의 확실(extremely likely)’하다.” 대규모 벌목과 화석연료 소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가축 분뇨에서 나오는 메탄가스 등 온실기체가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일차적으로 기상학이나 생태학, 지질학처럼 과학계가 연구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경제학 역시 기후변화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효한 도구다. 기후변화의 시작과 끝이 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원인, 결과, 해결 모두 경제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이 돈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며 온실기체를 배출한다. 온실기체로 인한 기후변화는 폭염과 가뭄,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악화시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돈과 자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경제학은 설명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이 2006년에 낸 〈기후변화 경제학에 관한 스턴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으로 가장 유명한 저작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는 과거 세계대전이나 대공황 같은 지구적 재앙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지금 당장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돌이키지 못할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 기후변화가 인류와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는 경제성장 자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대안은 있다. 매년 전 세계가 생산하는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1%를 온실가스 줄이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 1%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인류의 생존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가치 있는 투자다. 이로 인해 창출되는 경제적 편익은 비용을 훨씬 웃돈다. 편익에서 비용을 뺀 순편익을 현시점에서 계산하면 2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 경쟁력이 약화되는 재화나 산업이 있을 수 있으나 지속적 기술혁신으로 경제구조를 바꾸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국가와 기업에 제공될 것이다.

세 가지 정책 방안이 가능하다. 탄소 배출에 적정한 가격을 매길 것,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촉진하는 기술에 투자할 것, 소비자와 기업이 온실기체를 줄이는 행동을 할 수 있게 정책을 개선할 것.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감축(mitigation), 혁신(innovation), 적응(adaptation)을 위해 노력한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스턴 보고서가 출간된 지 10년이 넘어 구체적인 수치는 달라졌겠지만 핵심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다. 화석연료에 기초한 경제활동이 기후변화를 불러왔고,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커지고 있다. 경제활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문제는 기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의 지구 평균기온에서 1.5℃ 더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시간이 7∼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들려온다.  

한국의 피해, 2060년 약 24조원 추정

지난 200여 년 동안 지구 기온은 1℃ 정도 상승했다. 지구 기온이 계속 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IPCC가 작성한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이 최근보다 0.5∼1.5℃ 오르면 농업 생산성이 50% 가까이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앙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남미 지역의 옥수수와 쌀, 밀 생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감축 행위와 적응 행위. 전자는 온실기체를 줄이는 노력이고, 후자는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살아가는 노력이다. 경제학에서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각종 정책의 도입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를 들 수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이러한 정책들은 교과서에나 나왔다. 지금은 한국 등 여러 나라가 탄소 감축을 목표로 다양한 제도를 정착시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감축 정책에 소극적인 나라에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탄소 국경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지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경쟁력 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한국도 기후변화 피해에서 예외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피해가 큰 나라에 속한다. 솔로몬 시앙 버클리 대학 교수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여 년간 태풍으로 인한 주요 국가별 누적 피해를 추정한 결과, 한국은 GDP 대비 피해 규모가 일본과 필리핀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나라였다. 내가 국회 예산정책처 이미연 박사, 김광열 서울대 자연대 교수와 공동 수행한 ‘기후변화 피해비용 연구’에 따르면, 자연재해로 2060년 무렵에는 한국이 겪을 경제적 피해가 연간 최대 약 24조원으로 추정된다.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2002년 8월 태풍 루사 당시 피해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이번 여름 물난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기후변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재난 훈련 등 적극적인 적응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한 보건·경제 위기와 폭염과 홍수로 드러난 기후위기라는 복합 위기를 경험한 해로 인류사에 기록될 것이다. 두 위기 모두 인간의 소비와 생산 활동이 자초했다는 냉엄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결의 실마리도 인간이 경제활동을 제어하고 전환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기자명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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