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3월10일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해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상인 대부분이 휴업에 들어갔다.

코로나19발 고용위기는 두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하나는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은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집단이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다. 고용보험 의무가입에서 배제되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대두된 배경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시민들의 소득 변동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당초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하위 70%에게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 했다. 그런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이 지원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자영업자 신분인 지역 가입자들이 가장 최근에 납부한 건강보험료는 2018년 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려 했을 때도 문제가 발생했다. ‘근로자가 아닌 이’들의 최근 몇 개월간 소득 변동을 증빙할 자료가 마땅치 않아서다. 고용노동부가 전 직원을 행정처리 업무에 투입했지만 일회성 고용안정지원금 지급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이유다.

사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는 자영업자 등 불안정 취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하는 역량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누가 언제 얼마를 벌었는지 알아야 사회보험에 가입시켜 보험료를 걷고, 위험이 실현되었을 때 보호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에야 이런 고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근로장려세제(EITC)를 도입하면서도 ‘소득 파악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한 만큼 장려금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제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누가 저소득층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조세체계엔 소득 파악에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소득을 왜 파악해야 하는지도 합의되지 못했다.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하는 과정이 처음부터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는 근로장려세제 도입과 함께 국세청에 일용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 및 보험료 부과·징수를 맡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세제실과 국세청 측이 반발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국세청은 일용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면세점 이하의 소득을 벌고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논의 초기, 국세청은 그동안 ‘징세’를 전담해온 자신들이 ‘복지’인 근로장려금 산정·지급을 위해 일용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소득까지 파악해야 하는 이유를 선뜻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근로장려세제 도입이 결정되자 국세청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분기 단위로나마 일용노동자의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저소득 노동자 지원을 위해 사업주와 경영계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연합뉴스2005년 7월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회보험료 통합 징수해 사각지대 해소”

참여정부는 더 나아가 국세청이 사회보험료를 통합 징수하는 방안을 별도 과제로 추진했다. 당시에는 각 사회보험 공단(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건강보험공단)이 각각 사업주의 신고를 받아 피보험자의 소득과 가입 자격을 확인했다. 이에 기반해서 보험료를 각각 징수했다. 매우 복잡하고 소득과 보험료를 정확히 산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국세청이 이를 일원화하여 시민들(일용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포함)의 소득을 파악해서 보험료를 부과·징수하는 시스템을 구상한 것이다. 이로써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으리라 보였다.

2005년 8월 근로장려세제 도입을 결정하고 국세청 사회보험료 통합징수 추진 필요성을 논의했던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메시지가 생각난다.

“소득 파악이 어렵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느라 반대가 있는 것을 알지만, 앞으로 저소득 일용 근로자와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달라. (…) 사회보험이 안정적 근로자 위주로 확대되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어려운 분들이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근로장려세제를 위해서 파악된 자료를 활용하고 국세청이 사회보험료를 통합 징수하여 사각지대 해소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당시 참여정부의 구상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저소득자에 대한 소득 파악 인프라 구축과 근로장려세제 도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세청 사회보험료 통합징수 법률안은 결국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되었다(제17대 국회). 제18대 국회에서도 국세청으로의 통합징수는 무산되었다. 건강보험공단으로 외형상 통합징수만이 추진되었을 뿐이다. 현재 4대 사회보험료 징수는 건강보험공단이 하지만, 피보험 자격 확인과 보험료 산정은 여전히 각 공단에서 사회보험별로 따로따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12년 취약 노동자에게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제도가 도입되고 국세청 소득정보 연계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더해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코로나19 위기는 불안정 취업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고용안전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청와대와 대통령이 포스트 코로나 과제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제시한 배경이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 담론은 태생적인 오류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산재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 등 모든 사회보험을 종합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제안은 고용보험 하나에만 편중되어 있다.

더욱이 정부는 ‘자격 중심’ 사회보험 시스템의 시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존 사회보험은 업종, 고용 형태, 소득 등의 기준으로 피보험자 자격이 있는지부터 판단하는 체계다. 정부의 전 국민 고용보험 계획 역시 현재 고용보험의 틀을 유지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해 업종에 따라 단계적으로 고용보험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지난 10여 년간 자격 중심의 사회보험 체계가 실패한 결과가 지금의 사각지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노동자의 날인 5월1일 배달 노동자로 구성된 ‘라이더유니온’이 노동조합 출범식을 가졌다.

청와대·정부·국회 모두가 나서야 한다

사회보험은 자격이 아닌 소득 중심으로 가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넘어 ‘전 국민 사회보험’으로 갈 필요가 있다. 여전히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법률상 노동자’ 중심이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려면 ‘전속성(한 업체에 종속되어 근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성이나 전속성을 중심으로 ‘자격 있는 노동자’를 분류해내는 작업이 쉽지 않다. 아예 사업장이 없거나 다수의 사업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여러 군데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서도 결국 자격이 문제다. 건강보험의 직장가입자는 월급(소득)의 일부만 보험료로 낸다. 그러나 지역가입자들은 재산까지 고려해 부과된 보험료를 납부한다.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의 상당수가 납부예외자로 남아 있는 현실 역시 ‘자격’ 때문이다.

유일한 해법은 개인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 소득을 파악해 사회보험료를 납부토록 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소득을 지급하는 쪽이, 얼마를 줬는지 국세청 홈택스에 월 단위로 신고하거나 등록하도록 하면 된다. 피보험자인지 아닌지,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특수고용 노동자인지 프리랜서인지 구분하는 대신에, 개인별로 파악되는 소득이나 매출 정보를 바탕으로 전 국민 누구에게나 보험료를 부과·징수하는 것이 소득 중심의 사회보험 시스템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던 이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현재 보험료의 최대 90%까지 지원하는 사회보험료 지원제도(두루누리)를 소득이나 매출이 낮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 확대 적용하고 정부가 이를 위한 재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도 국세청 시스템으로 파악 가능하다. 국세청은 이미 근로장려세제를 시행하면서 근로소득 신고율을 대폭 높인 바 있다. 신고 주기만 분기 단위에서 월 단위로 변경하면 된다. 국세청은 또한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직종에 대해서도 정보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해왔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특수고용 노동자 및 프리랜서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사업주, 1인 자영업자의 소득이나 매출 신고는 ‘소득 중심 전 국민 사회보험’ 추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영세 자영업자 등 ‘모든 사업주’에게 월 단위 매출 정보만이라도 정확히 신고하거나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월 단위로 파악된 정보를 기반으로, 소득이나 매출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업주 역시 보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게끔 제도를 설계하고 필요한 재원을 대폭 반영해야 한다.

사회보험 관련 업무가 정돈되면, 사회보험공단의 노동조합들이 업무의 조정 또는 재배치로 인한 불이익이나 구조조정 등을 우려할 수 있다. 논의를 통한 합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공단 노조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보험 급여와 연계된 새로운 서비스 업무가 확대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공단 노동자들이 감당해오던 과중한 부과·징수나 감정노동(보험료 민원 업무)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공단 노조들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당사자 조직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소득 중심 전 국민 사회보험’의 전면적 개편 추진과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를 재정 당국에 요구해야 한다.

현 정부가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인 ‘전 국민 고용보험’을 ‘소득 중심 전 국민 사회보험’으로 확장하고, 이와 함께 국세청의 사회보험료 통합징수를 전면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알게 해준 사회안전망의 민낯을 개선할 마지막 기회를 잃고 2008년 통합징수 무산 후 지금까지 그랬듯 불안정 노동자가 배제된 사회안전망을 가진 복지국가로 남게 된다. 더 이상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말을 꺼내기 어려운 방 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처럼 서로의 눈치를 보거나 미루어서는 안 된다.

기자명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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