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재형 제공

참 아무렇게나 찍었다. 렌즈를 광각으로 바꿔 끼울 생각도 없이, 사람들이 좀 사라지길 기다릴 생각도 없이 무심하게 셔터를 누른 티가 팍팍 난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고 나서 9개월 후 사진 속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지고, 더 나아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언제 다시 가게 될지 알 수 없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저렇게 덜렁 셔터 한 번을 누른 채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을까.

슈리성(首里城)은 오키나와가 ‘류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섬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섬 주민들의 자부심이었다. 13세기에 처음 건축된 이후 류큐 국왕의 즉위를 인정하는 명나라 황제의 사절단을 맞이한 것도, 일본에 복속할 것을 강요하는 사쓰마 번(藩)의 사신을 향해 류큐의 재상이 호통을 친 것도, 그리고 결국 사쓰마 군대에 의해 왕이 무릎을 꿇었던 것도 이 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깊게 굴곡진 오키나와의 역사만큼이나 슈리성도 갖은 곡절을 겪었다. 1453년에는 왕족 간 왕위 다툼에 휘말려 성이 불에 탔고, 1609년 사쓰마 번의 침입 때도 약탈과 파괴를 피할 수 없었다. 가장 참혹한 피해를 당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다.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은 본토 방어의 최전선을 오키나와로 설정하고, 슈리성 주변 지역과 섬 전체에 걸쳐 복잡한 방어선과 통신망을 구축했다. 1945년 5월25일 미국 해군 전함 미시시피호는 무려 사흘간 슈리성을 포격했고, 그 결과 돌로 쌓은 성의 기단부를 제외하면 땅 위에 남은 건물이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본격적인 복원 사업에 나선 것은 1989년이 되어서였다. 30년에 걸친 길고 긴 공사 끝에 완벽하게 복원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2019년 1월이니, 공교롭게도 나는 복원이 끝난 바로 그달에 슈리성의 완벽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2019년 10월31일 새벽 2시, 슈리성은 다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불이 시작된 곳은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관계자들이 가설한 조명용 전기배선이었다. 건물들이 ‘ㅁ’자로 배치된 장소 특성상 소방차의 접근은 어려운 반면 불이 옮겨붙기는 쉬워, 11시간 만에 주요 목조건물들이 전소되었다.

그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했다

우주에 머물다 가는 어떤 존재든 영원할 리가 없지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의 요소들을 너무 쉽게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또는 반복될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그 일상을 잃고 나서야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리곤 하는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찍을 때도 나는 그것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성의 모습인 양 찍었어야 했다. 그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았어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또 다른 일상이 된 지구 위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잔잔한 기쁨들을 추억한다.

코로나19 이후에 다시 시작될 일상처럼, 오키나와의 슈리성도 불사조처럼 다시 지어지길 바란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지치지 않고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류큐의 자존심을 담아, 10년이 되었든 20년이 되었든 새롭게 일어서길 바란다. 언젠가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좀 더 멋진 슈리성의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기자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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