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동 출입을 금지하는 음식점의 조치에 대해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차별금지법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형사처벌 법안이다.” “‘동성애 반대’라는 표현만 해도 처벌이 가능하다.” “자유를 억압하는 무소불위의 독재 악법이다.”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다. 물론 이미 여러 방송사와 신문사의 팩트체크를 통해 확인된 가짜뉴스다. 그럼에도 영향력 있는 학자나 종교인들, 그리고 정치인들도 여전히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쯤 되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반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다행히 가짜뉴스는 점차 퇴출되는 분위기다. 가짜뉴스 대응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이다. 이제 차별금지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인지 차분히 점검해볼 기회가 생겼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즉 차별행위가 발생했을 때 차별행위를 어떻게 중단시키고 피해를 구제해 원상 복귀시킬 것인지, 차별의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적절한 구제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이 법의 핵심이다. 이른바 차별구제 또는 차별시정의 문제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차별시정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정기관이 될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일단 차별금지법상 차별시정은 ‘시정권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차별행위를 한 사람에게 차별의 중지나 구제 또는 재발방지 조치 등을 ‘권고’하는 방법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그렇다면 왜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를 화끈하게 처벌하지 않고 이렇게 물러터진 규제방법을 채택하고 있을까? 차별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차별 판단 기준을 오랫동안 가다듬어온 국가들에서도 무엇이 차별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물론 분명하게 가려질 수 있는 의도적인 차별행위도 있지만, 만약 그런 행위만 차별이라고 한다면, 고의성이 없거나 은밀하고 다양한 차별행위는 손을 댈 수 없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다양한 차별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이 법의 궁극적 목표라면 차별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범위를 좁히는 쪽으로 타협하지 않는 대신, 규제방법은 강제력 없고 유연한 방식을 우선적으로 채택한다.

‘노키즈존’이 차별일 수 있음을 환기

성차별의 일종인 성희롱에 대한 규제 방법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현행법상 금지되는 성희롱의 범위는 꽤 넓다. 실제로 성희롱 사례 중에는 한 번쯤은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성적 농담부터, 최소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받아내야 마땅한 성차별적 발언,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중징계를 내려야 하는 심각한 성적 괴롭힘 행위까지 다양한 수위의 성희롱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성희롱을 유죄 또는 무죄로 다룰 수는 없다. 그래서 성희롱은 형사처벌보다는 조직 내 분쟁해결기구 또는 (구)남녀차별개선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차별시정기구에 의해서 다뤄진다. 구제조치도 교육 수강, 사과, 재발 방지 약속, 조정, 합의, 경징계, 중징계 등 다양한 방법이 선택될 수 있다. 심각한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다.

ⓒ연합뉴스8월10일 원주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방법을 ‘연성 규제(soft regulation)’라 부르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식의 ‘강성 규제’와 대비된다. 액면으로는 전자는 약하고 후자는 강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연성 규제가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며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 항공사들의 항공기 객실승무원 채용 시 신장이 162㎝ 이상인 사람에게만 지원 자격을 부여한 것에 대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는 판단을 내렸다.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 불과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원자들의 항의만으로 회사 방침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국가기구’인 인권위의 권고가 간단히 무시되지는 않는다. 인권위는 ‘신장 162㎝ 이상’이라는 기준이 객실승무원의 업무 수행을 위한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했고, 전 세계 항공사 사례를 조사해서 국내 항공사들의 신장 제한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밝혀냈다. 어떤 한 시민이 차별을 입증하고 싸우긴 어렵지만, 이렇게 국가의 자원을 동원해서 조사하고 근거가 마련되면 처음에는 미약했던 각각의 시민들의 주장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실제로 인권위 권고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은 신장 제한을 없앴다. 인권위의 권고가 즉시 수용된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 진에어,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은 여전히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문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그 이후 인권위는 차별에 관한 수많은 결정례를 남겼고 국민의 차별에 관한 인식 수준은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2015년 대한항공도 결국 고집을 꺾었다. 인권위 권고 7년 만에 신장 제한을 폐지한 것이다. 이렇게 인권위의 권고는 단번에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2017년 인권위는 13세 이하의 아동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 음식점의 조치에 대해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특정 연령대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행위인지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란이 일어났다. 인권위가 어떤 결정을 내렸건 여전히 노키즈존 영업은 성행하고 있으니 인권위의 결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권위의 결정은 ‘내 가게에서 내가 마음대로 손님을 받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어놓았다. 아동을 배제하는 것이 차별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물론 지금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사·교육·홍보·연구 등 인권위의 여러 활동들을 통해 차별에 관련된 인식 수준이 높아진다면 언젠가는 이 권고가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될 날이 올 것이다.

ⓒ연합뉴스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항공사의 승무원 채용 시 신장 제한에 대해 차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시정명령에 불복하면 법원이 판단

이렇게 차별금지법의 구제조치는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단번에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가능해지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면 차별금지법은 믿음직한 ‘친구’ 노릇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차별시정기구는 부당한 차별을 당했을 때 상담해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 구실을 한다. 조력자도 중요하지만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종국적인 힘은 사회 자체에서 나온다. 대한항공이 신장 제한을 폐지한 것은 채용 차별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그만큼 올라가서였을 터이고, 노키즈존이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동 차별에 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미약한 상태여서일 터이다. 차별시정기구는 그 과정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취지는 이러한 기존 차별구제의 효력을 좀 더 보완하기 위한 것일 뿐 기존 차별구제의 근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안에는 좀 더 강화된 구제조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시정명령제도를 두고 있다.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시정명령에 대해 당사자가 불복하면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다. 인권위는 일차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현행법 중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기간제법 등에 이미 시정명령제도를 두고 있지만, 시정명령권을 가진 법무부,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가 권한을 남용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실제로 시정명령제도는 심각한 피해를 낳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렇게 운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위가 시정명령을 남용하여 엄청난 권력기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막연한 상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혹시나 모를 가능성이 우려된다면 시정명령 권한을 삭제하면 된다. 인권위의 평등법 예시법안에는 시정명령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시정명령제도가 그렇게 문제라면 인권위의 예시법안처럼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 되는 것이지 차별금지법 제정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또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예시법안에는 소송지원, 법원의 임시-적극 조치 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증명책임 전환 등 차별 관련 소송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여 소송을 통한 차별구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아직까지 법원은 차별 판단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차별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데에도 인색하고 손해배상액 산정도 소극적이다. 현재 인권위가 판단하는 차별의 범위와 법원에 의해서 승소가 가능한 차별의 범위 사이의 간극은 상당히 큰데,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차별을 구제하는 기관인 차별시정기구에 비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제3자로서 판결하는 법원은 아무래도 소극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차별로 판단한 사건들 중 소송을 통해서도 구제받을 수 있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차별금지법의 몇몇 조항으로 쉽게 개선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세상을 바꾸길 간절히 바란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구체적인 차별 기준이 법제화되면 인권위의 문을 두드리는 차별의 피해자들은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 인권위는 피해를 호소하는 진정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며, 그들의 호소가 근거 있는 것임을 입증해내고 사회 변화를 촉진시켜낼 것이다.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 유연하지만 단호한 진전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차별금지법은 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

기자명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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