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 책값 무제한 할인이 허용되더라도 실제로 할인이 가능한 곳은 대형·온라인 서점뿐이다.

8월7일 서울 종로구의 대한출판문화협회 사무실에서는 출판·문화단체 긴급회의가 열렸다. 약 30분 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한다”라고 말했다. 4시간에 걸친 비공개 회의에서 30여 개 단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목적은 ‘도서정가제 사수’였다.

도서정가제는 출판물의 할인을 규제하는 제도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적힌 도서정가제의 골자는 이렇다. 출판사는 판매 목적 간행물(책)에 그 정가를 표시해야 한다. 발행한 지 18개월이 지난 책은 출판사가 정가를 바꿀 수 있다. 바뀐 정가도 반드시 책에 표기해야 한다. 판매자는 정가의 15% 이내에서(가격 할인 10%, 사은품이나 마일리지 등 경제상 이익 5%) 책을 할인 판매할 수 있다. 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3년마다 이 제도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폐지, 완화 또는 유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강화할 수 있다는 문구는 없다). 이 법이 도입된 시점은 2014년 11월이다. 첫 재검토 시기였던 2017년 문체부는 ‘현행법 유지’ 결정을 내렸다. 그 후 다시 3년이 지나 오는 11월 개정 시한을 앞두고 파열음이 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도서 할인을 규제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출판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무제한 할인을 허용하더라도 실제로 값을 낮출 수 있는 곳은 자본이 넉넉한 대형·온라인 서점이다. 가격경쟁을 할 수 없는 작은 서점은 도태된다. 할인으로 입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 서점은 출판사에 책 원가를 낮추도록 요구한다. 대형 출판사와 달리 중·소형 출판사는 버티기 어렵다. 그 결과 출판사들은 모험적인 신간을 내지 않고 판매가 보증된 베스트셀러만 계속 찍어낸다. 독서시장의 다양성이 타격을 받는다.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제도인 도서정가제는 공익적 특성도 띤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문체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13개 출판·전자출판·유통·소비자 단체가 16차례 모여 논의했다. 7월15일 문체부는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열고, 민관협의체 참여 단체들이 몇 가지 합의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우선 정가를 조정할 수 있는 시한을 앞당겼다. 나온 지 18개월 넘은 책이 아니라 12개월만 지나면 값을 낮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웹툰·웹소설 등의 정가 표시 의무를 완화한다는 방안도 합의에 도달했다. 대부분 웹툰·웹소설 사이트는 정가를 원화가 아니라 ‘쿠키’나 ‘캔디’ 같은 유사 화폐 단위로 표기한다. 이를 원화로 고치도록 강제하는 대신 ‘1캔디=1000원’ 형식으로 병기해도 된다는 것이다. 판매에 준하는 ‘장기 대여’를 제한하자는 데에도 의견이 모였다. 이 또한 주로 웹툰·웹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반면 견해 차이가 현저한 쟁점으로 문체부는 △할인율 △신간의 일정 기간 중고 유통금지 △간행물 대여에 도서정가제 적용 따위를 꼽았다.

그런데 이날 공개 토론회에 출판단체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보이콧이었다. 출판계 대표로 민관협의체에 참여한 한국출판인회의 박성경 유통정책위원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6월 이미 합의는 도출되어 있었다. (각 단체 대표의) 서명만 남겨놓고 회의를 미루던 문체부가 7월 돌연 판을 깬 것이다.” 박 위원장 역시 단체들 사이에 ‘입장 차이가 현저한 쟁점’이 있었다는 문체부 발표에는 동의했다. 그중 할인율 문제는 도서정가제의 핵심 논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민감한 논점에 대한 민관협의체 내의 의견 충돌이 아니라, 문체부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민관협의체 논의가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문체부 담당자가 최종 합의안 도출을 몇 차례 미뤘다. 그 후 돌연 민관협의체 외부의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고, 7월 말 합의안 추진을 중단한다고 구두로 통보해왔다.”

신간이 늘고 독립서점이 흥하는 제도

문체부는 합의안 파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8월10일 보도자료를 내고 “협의체 합의 사항을 파기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민관협의체에서 논의해온 내용을 대국민 대상으로 공개하고 좀 더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개선안을 마련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인 도서정가제에 대해 사회적 의견을 더 수렴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취재 중 “사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들은 (도서정가제) 완화나 폐지 의견에 가까운 부분이 좀 많다”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지난해 10월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을 들었다.

도서정가제에 부정적인 이들은 주로 이 법의 취지보다 효과를 타격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이는 “지식 전달의 매체로서 책은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이 독자에게 책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라고 썼다. 문화진흥책으로 추진된 도서정가제가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이야기다.

출판계는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올랐다’는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도서정가제 시행 후 가격상승률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통계에 따르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인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도서 정가 증가율은 2.51%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 5년간 증가율(5.08%)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7월15일 문체부 관계자는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이 통계를 인용해, “개정 도서정가제가 도서 정가 상승을 둔화해 소비자 실질 부담을 완화했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이상원8월7일 서울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출판·문화인 긴급회의가 열렸다.

문제는 이 통계가 ‘그해 나온 신간의 정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도 정가를 조정해 책을 싸게 팔 수 있다. 하지만 정가를 고치려면 법에 따라 바뀐 가격을 표기해야 한다. 정가를 내린다고 해서 책이 팔린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정가 조정 규정은 책값을 인상하는 데에 더 많이 쓰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간행물 재정가 공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정가를 내린 책은 1490종인 반면, 정가가 오른 책은 4107종이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을 할인받아 사던 소비자들이 ‘도서정가제 시행 후 책값이 비싸졌다’고 보는 것은 편견에 따른 착시가 아니다.

그런데 ‘책이 비싸져서 도서 구입량이 줄었다’는 주장은 맹점이 있다. 도서 구입량이 매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그 원인이 책값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펴낸 ‘개정 도서정가제 영향평가 및 향후 방향’에 따르면, ‘도서 가격’이 구매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9%에 불과했다. 할인 여부(할인율)를 꼽은 응답자가 1.8%로 그 뒤를 이었다. 가격을 3순위 이내에 둔 응답자는 22.9%로, 11개의 응답안 중 6위였다. △도서 내용 △저자 △베스트셀러 순위 △지인 추천 △도서 제목이 그 위에 있다. 지난해 한국출판연구소의 ‘도서정가제 이해관계자 설문조사’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왜 책을 덜 읽게 됐는지’ 물었다. ‘도서정가제의 변화’를 1순위로 꼽은 응답자는 5.1%였다. △스마트폰 등 매체 환경 변화(35.2%) △본인의 사회생활 변화(26.6%) △독서 이외의 여가활동(12.9%) △가정환경 변화(8.2%) 등이 상위 항목이었다.

도서정가제의 효과는 비판자들이 말하는 부작용보다 가시적이다. 특히 다양성 측면에서 성과가 났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발행된 신간은 총 8만1890종으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2014년부터 매해 늘고 있다. 직전 해인 2013년(6만1548종)에 비해 5년 만에 33%가량 증가한 것이다. 고사 직전이던 독립서점의 수도 늘었다. 독립서점 플랫폼 퍼니플랜에 따르면 2015년 97곳이던 독립서점이 2019년에는 551곳이 됐다. 가격경쟁 부담이 완화되면서 도서 큐레이팅 등 서비스에 신경을 쓴 서점이 나름의 시장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웹툰·웹소설을 위한 별개의 제도 필요

문제는 남는다. 최근 급성장 중인 웹툰·웹소설 등 전자책 분야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할지의 문제다. 현재 웹툰·웹소설 가운데에는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출판진흥법 규정 때문이다. 법은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출판물’도 도서정가제 대상으로 정한다. 그런데 웹툰·웹소설은 자동적으로 전자출판물로 규정되지 않는다. ‘출판사’로 등록한 사업체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발급받아 판매해야 전자출판물이다.

도서정가제라는 제약을 스스로 선택하는 전자책 업체가 있는 까닭은 면세 혜택 때문이다. 전자출판물은 도서와 마찬가지로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현재 전자책 업체들은 ‘부가가치세 10% 면제’와 ‘도서정가제 미적용’ 가운데 유리한 쪽을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 출판계는 “도서정가제 적용에서 제외해달라”는 전자책 업계의 주장을 “책이 아니라 다른 콘텐츠에 속해 (부가세 면제를 받지 않고) 사업하면 된다”라고 반박한다. 이들 사이에는 웹툰·웹소설 업계가 혜택만 바라면서 제약은 거부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반면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8월13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어떤 단체와도 각을 세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웹툰을 (무제한적으로) 할인해서 판매할 때 누가 어떤 피해를 입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부가가치세 면제는 도서정가제의 반대급부가 아니다. 양자 모두 문화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별개 정책일 뿐이다. 웹툰·웹소설은 종이책에 비해 유통경로가 단순하기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해 보호할 대상이 모호하다. 이 분야는 할인율을 업계 자율로 풀더라도 피해를 보는 ‘소규모 출판사’나 ‘동네서점’이 없다. ‘구독(subscription, 월정액을 내고 콘텐츠를 무제한 열람하는 서비스)’과 같은 전자책 업계만의 특수한 서비스를 포괄하기도 어렵다. 서 회장은 “도서정가제라는 기존의 벽 대신 (종이책과) 다른 서비스를 위한 다른 제도를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여론은 ‘3대 악법’이라는 온라인상 오명만큼 부정적이지는 않다. 문체부가 지난 6월30일부터 엿새간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도서정가제가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36.9%, 부정적이라는 평가는 23.9%였다. 폐지해야 한다는 답변은 15%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 45%가 과거 1년간 도서 구매 경험이 없었고, 36.4%는 독서 경험이 없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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