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테이젼〉에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역학조사관(케이트 윈즐릿)이 등장한다.

감염병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를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영화 〈컨테이젼〉(2011)에서 배우 케이트 윈즐릿이 연기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역학조사관은 원인 모를 질병이 퍼지고 있는 현장에 즉시 파견된다. 종횡무진 환자와 접촉자들을 만나며 역학조사를 진행하다가 자신도 질병에 감염되고,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호텔방에서 홀로 견디다 결국 집단 격리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상관에게 한 말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였다.

볼 때마다 숙연해지기도 하는 이 장면에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역학조사관이 ‘완수하지 못해 죄송하다’던 그 임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언컨대, 이른바 ‘접촉자 추적조사(contact tracing)’라고 하는 접촉자 조사와 동선 파악이 주요 임무는 아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홀로 파견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도 미국 CDC 역학조사관으로 재직하던 시기 허리케인 카트리나, H1N1 신종독감, 멕시코만 원유시추선 폭발 사고 등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되어 동료 역학조사관들과 함께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역학조사관의 임무 가운데 가장 일차적인 일은 ‘당면한 건강 문제를 통제할 방법들을 찾아내고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분석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현장 연구를 궁리해야 한다. 사실 이 정도로 분석을 서두르다 보면 과학적 엄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역학적 분석을 늦출 수는 없다. 촌각을 다투는 위기 대응 상황에 시의적절한 방법을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역학조사관이 현장에 파견되어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CDC의 ‘현장 역학분석 교과서(Field Epidemiology Textbook)’에 매우 잘 기술되어 있다. 질병의 유행이 확인되면, 환자에 대한 정의를 수립하여 이에 기반한 조사가 진행된다. 가설을 수립해 검정하는 것은, 질병의 확산을 막고 예방하기 위한 근거를 현장에서 포착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다. 역학조사관의 역량은 질병의 확산 방지와 예방에 매우 중요한 핵심 자원이다.

미국 CDC는 현직의 현장 역학조사관(Epidemic Intelligence Service Officer)을 포함한 다수의 역학조사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조사는 단지 감염 확진자를 조사하고 접촉자를 추적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CDC가 자체 발간하는 보고서를 읽어보면, 결코 며칠 동안 확진자 동선 조사만 해서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조사가 수행되었다. 그 모든 조사 결과를 짧은 분량 안에 담아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얼마나 고단한 검토 작업이 이루어졌을지 짐작이 간다. 역학조사관들은 감염 현장에 가장 먼저 파견되는 대응 요원이기도 하다.

ⓒ연합뉴스6월29일 광주 북구보건소 코로나19 전담대책본부 역학조사팀 직원들이 CCTV를 보며 확진자 동선과 접촉자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감염 현장에 가장 먼저 파견되는 인력은 역학조사관이다. 역학조사관이 어떤 작업을 하고, 그 작업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실제로 어떻게 전파되는지는, 다음에서 알 수 있듯, 많은 것이 아직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학조사의 연구 과제

역학조사관들은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감염의 전파속도와 양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무증상 감염률이 높은 연령대나 특정 그룹에 대해 집단감염 전파 차단을 위한 중재 및 소통 노력을 집중할 수 있다.

또한 경증 환자들의 병의원 방문 형태를 알아내야 한다. 이는 감염병 전파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정보로 활용된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해열제 등 관련 의약품 구매 정보를 실시간으로 활용하면 감염병이 어디서 어떻게 전파되는지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코로나 증상을 보이는 환자 중 발열은 약 45%의 유증상자에게서 나타난다. 그러나 발열은 전체 감염자 가운데 약 20%에서 나타나는 증상에 불과하다. 역학조사관들은 발열 이외에 어떤 증상을 점검할 때 더 많은 감염자를 찾아낼 수 있는지 체크하고, 이를 실제 방역에 적용해볼 수 있다.

한국은 다른 유전형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경험한 소수의 국가 중 하나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바이러스에 동시 감염될 때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최근에 발표되었다. 이 두 유형의 감염자에게서 보이는 증상의 종류와 빈도, 무증상 내지는 경증 환자의 비율, 잠복기 비교 등의 연구도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확진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계속되고 있다. 해외 유입이 지역사회 감염으로 옮아갈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태 초기엔 ‘해외 유입 확진자’ 중 귀국 유학생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싱가포르처럼 이들의 주거환경, 사회적 모임 형태 등을 파악하고 위기 소통과 감염예방 활동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종교 집회 외에도 특정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의료시설 및 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다수 보고되었다. 이들의 조직적·문화적 특성을 파악하여 다른 기관들이 운영하는 의료시설과 요양시설에 대한 방역지침에 적용할 수 있다.

직장이나 각종 사업체에서 코로나 확진 사례를 분석하여 사업장 유형에 특화된 방역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콜센터와 일반 IT 회사 사무실의 물리적 근무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조건이 감염 전파의 차이를 만드는지, 직종별로 어떤 환경조건이 방역에 취약한지 사전에 파악하는 현장 연구로 선제적인 예방책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65세 이상 노년층의 감염 중에서 30대 이하 젊은 층으로부터 감염되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위험요인과 감염 전파 환경에 대해 파악하고, 그 결과를 예방지침에 반영해야 한다.

어린이들 사이의 감염은 적은 것으로 보고되는데,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많은 학원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감염이 보고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정보를 학교 운영을 위한 데이터로 적용하려면 어떤 가설을 세워 검증하면 될까?

한국의 방역 활동에서 대대적인 환경 소독은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실내외 표면에 대한 소독으로 방역 효과를 얻고 있는지 평가된 적은 없다. 환경 소독의 득과 실은 무엇일까?

항공기에서의 감염 경향에 대한 역학적 분석도 가능하다. 확진자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같은 비행기에 타는 것만으로도 감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지 평가하여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자가격리나 진단검사의 필요성을 평가할 수 있다. 기내 화장실 등 공동 장소나 공기조절장치를 통한 감염 전파 가능성도 체크해봐야 한다.

ⓒ연합뉴스인천 부평구보건소 비접촉 선별진료소 내 역학조사실에서 의료진이 검체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밀착·밀접·밀폐된 환경의 대중교통에서 감염된 사례가 의외로 보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실제로 감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감지가 되지 않는 것뿐일까. 이 밖에도 실내 공간에서 창문을 열어두거나, 에어컨을 가동하거나, 마스크를 쓰는 각각의 경우 감염 위험에 차이가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분자유전학적 연구나 감염 전파 예측모델처럼,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과 분석도구를 활용하여 해답을 끌어내야 할 연구과제가 많다. 반면 현장에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인력이 바로 현장 역학조사관들이다. 역학조사관들은 매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에 대해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이며 관련 법규에 부합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학술논문보다 빨라야 하는 증거 생산

앞으로 다가올 2차, 3차 유행에 대비하여 국가적으로, 지역사회별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방역은 단순히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는다. 과학적 사고에 입각해 끊임없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하는 데 현장 역학조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학술논문이 빠르게 출판되고 새로운 지식들이 실시간 피드백되어 방역에 활용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 특화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환경에 기반한 증거들이 필요하다. 시각을 다투는 이러한 증거의 생산은 학술논문에 게재되는 속도에 맞출 수 없다. 따라서 현장 역학조사관들이 이제는 현장에서 얻은 각종 정보들을 바탕으로 차분히 방역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답하기 위한 가설 검정과 결과의 해석을 피드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께, 영국에서 코로나19 양성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당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확진자의 밀접접촉자 조사와 동선 파악을 위해 2만5000명의 ‘접촉자 추적조사관’을 추가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관을 추가로 채용했다.

코로나19를 종식시키고 나아가 진보한 방역체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역학조사관들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와 기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절실한 때이다.

기자명 탁상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부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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