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전광훈 목사가 8월17일 보건소 차량에 탑승해 있다.

“저와 함께 생명을 걸기를 원하시면 두 손 들고 만세!” 8월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외쳤다. “만세!” “아멘!”을 외치는 군중은 정말 목숨을 건 듯 보였다. 인파 가운데는 마스크를 벗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쥔 노인들은 침을 튀기며 “뻘개이”들이 암약하는 시국을 논했다. 연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비를 챙겨 입고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맨손으로 풋고추를 집어 쌈장에 찍었다. “먹어야 싸운다”는 것이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운동본부(대국본)’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야외 집회를 벌였다. 이번 집회는 이전에 열린 보수 집회보다 참가자가 훨씬 많았다. 주최 측인 대국본은 100만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경찰은 2만~3만명으로 추산했다. 집회가 시작된 지 두 시간쯤 흐르자 인파를 뚫고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지방에서 온 참가자도 많았다. 인근 주차장의 관광버스 유리창에는 ‘사천3호’ ‘대전태극연합’ 따위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해병대 모자나 군복을 입은 사람들도 출신 지역이 적힌 깃발을 들었다.

노인들은 싸움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였다. 느릿느릿한 서울 사투리와 빠른 경상도 사투리가 엉켜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대상은 주로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보수 집회에서 ‘빨갱이 몰이’는 약방의 감초다. 이에 4월 총선이 조작이라는 주장이 추가됐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사형당했는데 4·15는 우째뿌꼬!”라고 외치는 이들은 점잖은 편이었다. 서로 “너 좌파지?”라고 말하며 몸싸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해야 할지를 두고 벌인 논쟁의 결말이었다. 부상자가 나왔지만 호송이 원활치 않았다.

지난해 가을 청와대 사랑채 앞 집회와는 참석자들의 ‘성분’이 조금 달라 보였다. 노인이 다수인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중장년층, 청년층도 종종 눈에 띄었다. 가장 큰 차이는 종교색이었다. 연사와 청중 다수가 개신교계 단체로 보였다. 여성, 청년, 교회 등으로 행사 시간을 나눠 대표자가 연설했다. ‘부정선거’ ‘역사관’ 등 문재인 정부를 맹비난하는 데에는 뜻이 같았다. 행사 진행자는 “여기 못 보던 분들이 많이 나왔다. 드디어 우리 10대들이 정신을 차렸다!”라고 외쳤다.

이 혼란스러운 집회의 ‘대회장’은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다. 하지만 실제 지휘자가 전광훈 목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 목사가 등장한 것은 오후 3시10분. 집회의 절정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마이크를 쥔 그는 “우리는 대한민국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모였다”라고 말했다. 꽹과리와 북, 나팔, 환호, ‘아멘’ 소리가 뒤엉켜 현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5분가량 계속된 전광훈 목사의 연설은 몹시 세속적이었다. 그는 “문재인이 건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간첩의 왕인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등 예의 이념 공격을 펼쳤다.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목회자인 그는 평소 다른 집회에서도 종교적 언행은 삼가는 편이다).

이날 전광훈 목사의 말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끈 것은 단연 방역 문제였다. “아까 오후에 구청에서 우리 교회 찾아와서,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는데, 나는 열도 안 올라요. 나는 병에 대한 증상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전광훈 목사를 격리 대상으로 정했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이놈들이!”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실행하지 않으면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최고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에 처해진다. 전광훈 목사 측 강연재 변호사는 8월1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방역 당국이 기준과 근거도 없이 마음대로 자가격리 대상자라고 통보만 하면 자가격리 대상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서는 “전 목사가 정식으로 격리통지서를 받은 것은 8월15일 (집회 후) 저녁 6시다. 개인이 공문서를 받지 않고 인지하는 것은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약 5시간 뒤 전광훈 목사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간 감염병에 대한 전광훈 목사의 태도는 낙관적이었다. ‘하나님이 지켜주기 때문에 걸릴 리가 없지만, 걸리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니 그것대로 좋다’는 식이다. 지난 2월23일 야외 집회에서는 “(코로나19가) 전염될 수도 있다. 우리는 병 걸려서 죽어도 괜찮다. 우리는 목적이 죽는 거다. 우리는 하늘나라가 확보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8·15 집회 엿새 전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8월9일 연합예배 때는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자리였다. 이날 “8·15 집회에 한 사람당 100명씩 동원해달라”고 말한 그는 방역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성도님이 바깥 예배(야외 집회)에 참여해서 우리 교회가 조사 대상이 됐다. 한 명도 안 걸렸다, 한 명도. 여기는 주님이 지켜주는 곳이다. 성령의 불이 덮고 있는 곳이다.”

집회에서 가장 비논리적이었던 장면  

전 목사가 호언장담했던 바와 달리 이 교회에서 우후죽순 확진자가 나오자, 사랑제일교회 측은 ‘검사량’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8월20일 내놓은 ‘대국민 입장문’에서 교회 측은 “검사를 적게 하면 확진자 수가 적어 K방역이고, 많이 해서 확진자 수가 많으면 일촉즉발 위기인가?”라고 물었다. 사랑제일교회 신자들만 검사를 많이 해서 ‘위험집단’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주장이다.

전 목사 자신의 인식은 좀 더 급진적이다. 8·15 집회에서 그는 “저를 여기 못 나오게 하려고 중국 우한 바이러스를 우리 교회에 테러를 했습니다. (…) 바이러스 균을 우리 교회에 갖다 부어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8월17일 〈뉴스앤조이〉 인터뷰에서 그는 이 ‘테러’ 주체가 북한이라고 추정했다. 8·15 집회에서 북한이 사랑제일교회에 “바이러스 균을 갖다 부었다”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증언한 그는, “15일 동안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라는 말을 내가 받아들여야겠나?”라고 군중에게 물어 “아니요!”라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이날 집회에서 펼쳐진 풍경 가운데 가장 비논리적인 장면이었다.

팬데믹의 한복판, 보석 상태인 전광훈 목사는 왜 굳이 ‘제2의 신천지’가 될 위험을 무릅썼을까? 그는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최근 보수세력 내에서는 그가 코너에 몰린 징후가 보인다. 우선 정치권에서 선을 긋는다. 8월5일 〈크리스천 투데이〉 인터뷰에서 그는 “총선 성과 못 낸 건 황교안이가 책임져야 한다. (…) 나는 이명박한테도, 박근혜한테도, 황교안, 김문수한테도 속아봤다”라고 주장했다. 교계에서도 퇴출 위기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이단대책위원회가 1년간 연구해 내놓은 보고서는 전광훈 목사를 이단 옹호자로 결론 내렸다.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모세오경만 성경이고 나머지는 성경 해설서다” 따위 그의 신학적 견해만 판단해서 내린 결론이다. 다음 달 열리는 총회에서 위원회는 그를 ‘이단옹호자’로 규정할지 최종 결정한다.

전광훈 목사는 8월9일 연합예배에서 “(8·15 집회는) 제2의 혁명, 사상전쟁이다. (…) 8·15 집회 끝나면 모든 세균 다 끝장날 거다”라고 말했다. 집회는 그가 건재함을 과시하려 한 무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과 친하다”는 그의 뜻은 최근 잘 이뤄지지 않는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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