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책자국’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책방의 널찍한 창 너머로 오름 지미봉이 보인다. 해안을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올레길의 마지막 구간인 21코스는 지미봉을 거쳐 책방 옆을 지난다. 북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지미봉을 내려온 올레꾼들이 종종 커피를 시키고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기자가 찾아간 8월2일도 올레길을 걷던 젊은 청년 두 명이 책자국을 찾았다. 책방 주인 고승의씨는 미안하다며 곧 있을 행사 때문에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책자국에서는 ‘꿀독서 대회’가 예정돼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책읽기에 몰입하면 상품으로 1만원짜리 책방상품권을 받는다. 졸거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3초 이상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면 탈락이다.

마스크를 착용한 참가자 14명이 자리를 채웠다. 휴가철이라 여행자들이 끼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모두 제주도 거주자라고 했다. 꿀독서 대회를 위해 제주도 서쪽에서 동쪽 끝 종달리까지 한 시간 이상을 달려온 참가자도 있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사는 곳에서 30㎞ 이상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다고 고씨가 귀띔했다.

꿀독서 대회는 7~8월 제주 동네책방이 모여 함께 벌이는 책방예술제 ‘책섬’의 일환이다. 제주는 서울, 경기 다음으로 동네책방이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책방올레 지도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한편 주말마다 제주책방 버스투어를 진행 중인 제주착한여행 이다경 팀장에 따르면 제주 전역에 산재하는 동네책방만 100여 곳에 달한다. 제주 이민과 동네책방 창업 열풍이 맞물린 결과로 추정된다.

이들 책방 중 18곳이 모여 올해 처음으로 책방예술제 ‘책섬-책섬에서 읽는 책, 책섬에서 타는 썸’을 벌인 것이다. 이 축제에서 책자국은 ‘읽고 쓰다’라는 주제로 세 가지 행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가 읽기에 해당하는 꿀독서 대회이다. 8월15일에는 〈시사IN〉 나경희 기자와 함께하는 ‘뉴스가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진행된다. 마지막은 8월28일 열리는 ‘자기 언어를 만드는 글쓰기’ 강좌다.

발자국처럼 가슴에 남는 독서 ‘책자국’

서울에서 나고 자란 고승의·송혜령 부부는 2014년 제주도에 왔다. 종달리에 책자국을 연 건 지난해 7월이다. 하도리에서 카페를 하다 자리를 옮기면서 서점 겸 북카페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 일주일에 책을 10권씩 구입하곤 했지만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그때 사 모은 책이 북카페를 여는 밑천이 되었다. 팔지 않지만 자유롭게 꺼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책자국 한쪽 벽면을 채운다.

판매하는 책을 진열해놓은 매대는 아담하다. “(서점을 시작하면서) 책이 얼마나 팔릴지에 대해 감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매대가 작으니 책을 더 엄선하게 된다. 두 사람이 각자 취향에 따라 책을 고르고 번갈아 읽어본 뒤 서점에 들여놓는다. 작은 동네책방이 깊이를 갖출 수 있는 비결이다. 발자국처럼 독서가 가슴에 남았으면 해서 이름을 ‘책자국’이라고 지었다. 주인 부부는 이곳에 들르는 손님들이 지향을 찾고 취향을 나누기를 바란다.

‘책 읽는 독앤독’은 ‘독’립언론 〈시사IN〉과 ‘독’립서점이 함께하는 콜라보 프로젝트(book.sisain.co.kr)입니다. 책방과 사람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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