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8월1일 조세저항 집회 참석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핵심은 계약갱신청구권이다. 계약기간 2년이 끝났는데 집주인이 돈을 올려달라고 하면, 이전에는 선택지가 둘이었다. 올려주거나, 나가거나. 이제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 못 올려주겠다고 버틸 수 있다. 적어도 한 번은 계약갱신을 청구할 권리가 보장된다. 집주인은 임차인의 그 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최장 4년(2년+2년)은 쫓겨날 염려가 없는 것이다.

과도한 입법일까?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임대차계약은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게 원칙이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세입자가 임대료를 크게 올려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날 위험이 없다는 이야기다.

독일 민법은 법에서 정한 예외적 사유가 아니면 ‘기간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를 원칙으로 한다. 해지 사유도 엄격히 규제한다. 집주인이 임대차 관계를 종료시킬 만한 ‘정당한 이익’이 있어야 해지가 가능하다. 즉 세입자가 임대차계약 의무를 위반했거나, 집주인이나 그 가족이 들어와 살려고 하거나, 계약을 연장하면 집주인이 토지를 경제적으로 이용하지 못해 현저한 불이익을 받는 경우 등이다. 임대료 인상을 위한 계약해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설령 집주인에게 ‘정당한 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입자가 적절한 대체 주거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등 계약해지가 세입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할 경우에, 세입자는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임대차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은 다르지 않을까? 미국 뉴욕주의 임대차계약 기간은 1년 또는 2년으로 당사자가 정하지만, 계약갱신이 원칙이다. 뉴욕주의 ‘임대차 안정화(rent stabilization)’ 제도에 따르면, 세입자가 임대료를 계속 지급하는 한, 집주인은 계약갱신을 거절하거나 세입자를 강제로 퇴거시킬 수 없다. 세입자가 위법행위를 했거나 집주인 측이 입주하려는 경우, 또는 비영리법인이 자선이나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경우에 한해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집주인이 임대차 사업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거나 철거 등 법이 정하는 사유가 있을 때 뉴욕 임대차갱신국의 승인을 받아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을 뿐이다. 임대차 안정화 제도는 주로 1974년 전에 지어진 6호실 이상 건물에 적용되는데, 뉴욕 임대주택의 50%가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도 기한이 없는 임대차가 원칙이다.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은 어떨까. 기간을 정하거나 정하지 않은 임대차계약이 모두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집주인 마음대로 끝낼 수는 없다. 즉 집주인이 계약갱신을 거절하거나 계약해지를 신청하면, 이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법원이 인정했을 때에만 임대차계약이 종료된다. 마치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정당성을 판단할 때는 집주인 측이 거주하거나 영업할 필요성, 부지 활용 여부 등을 고려한다. 다수 판례에서는 퇴거료를 지급하는 경우 갱신 거절의 정당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합의하면 ‘기간의 정함’이 있으나 갱신청구권은 없는 임대차계약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로 계약하는 경우는 2017년 현재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AP Photo지난해 4월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주거는 상품이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기간만료 시에도 ‘정당한 사유’ 있을 때만 가능

그렇다면 이번에 한국이 보장한 4년이라는 임대차 존속 기간은 어떻게 봐야 할까. 특정 기간을 정해서 임대차계약을 보호하는 나라는 프랑스 정도다. 자연인은 3년, 법인은 6년의 최단 임대차 기간을 보장한다. 그러나 프랑스 역시 기간만료 시에 집주인에게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집주인이나 그 가족이 거주하려 하는 경우, 집을 팔려고 하는 경우, 임대료 미지급 등 세입자가 계약의무를 따르지 않은 경우에만 해당된다. 만약 세입자가 고령이고 저소득층이라면, 집주인이 대체 주거지를 제공해야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일반적인 시장의 거래라면 이 같은 제한은 말이 안 된다. ‘사인(私人) 대 사인(私人)’의 자유롭고 동등한 계약은 민법에 맡기면 된다. 둘의 의사가 맞지 않으면 계약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집주인은 더 높은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는 세입자를 찾아 얼마든지 새로 계약을 맺고 기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이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왜 세계 각국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하는가.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위원,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공동대표)는 “그래야 집주인과 세입자가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주택 세입자는 거래관계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다. 아무리 동등하게 임대료 등 임대 조건을 협상하려 해도,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대로 맞춰주지 않으면 쫓겨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인간은 하루라도 머물 곳이 필요하다. 거처를 옮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기본을 이루는 주거문제를 오로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의해 맡겨두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2018년,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 게다가 집주인이 제시하는 금액이 실제로 합리적인지, 세입자로서는 추가 정보가 없으면 알기 어렵다. 즉 주택 세입자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김남근 변호사는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 보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제도다.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겠다면 임대차계약을 얼마든지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을 정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대사업을 계속할 거라면 가능한 한 세입자가 안정적으로 거주하게 하자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임대차계약 신고를 제대로 받아서 종전 임대료나 주변 임대료는 얼마인지 정보를 제공하고, 협상이 잘 안 되면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신속히 조정해주는 조치도 추가로 필요하다.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는, 그렇게 이뤄진 협상의 결과 임대료가 너무 높은 수준에서 합의되지 않게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이번에 한국에서는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인상률 제한은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느슨한 규제다. 1·2차 세계대전 전후로 주택 부족과 임대료 폭등에 직면한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는 임대료 자체를 통제(rent control)한 적이 있다. 이 엄격한 통제는 전후 복구가 마무리된 뒤에 해소되었다가,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일부 국가나 도시에서 부활하기도 했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이 1965년 도입한 공정임대료 제도에 따르면, 집주인은 임대료 사정관이 산정한 공정임대료 범위에서만 임대료를 청구할 수 있었다. 이 제도는 대처 정부에 의해 폐지되었다. 1989년 이후 맺어진 임대차계약에서는 임대료 규제가 사실상 없다.

영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임대료 인상을 무한정 허용하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계약기간 중 임대료를 올리려면 계약을 체결할 때 미리 기간별로 정해놓아야 한다. 혹은 연방통계청이 작성한 가계물가지수에 맞춰 인상한다. 집주인이 세입자와 합의 없이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표준임대료’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표준임대료란 ‘임대차계약을 맺은 지역에서 해당 주택과 비슷한 종류·크기·시설·특성·입지를 갖춘 주택에 대해 과거 4년간 형성된 일반적인 임대료’를 말한다. 이 경우에도 3년에 20% 넘게 올리진 못한다(일부 지역은 15%). 독일에서는 원래 최초 임대차계약에 대해서는 임대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도 제한이 생겼다. 2015년부터 일부 임대료 급증 지역에서 새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경우 임대료는 표준임대료의 10%를 넘을 수 없다. 독일 베를린시 의회는 지난 10년간 임대료가 2배로 폭등하자, 아예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법을 1월에 통과시켰다.

ⓒKyodo News일본 도쿄 일대 주택가 전경. 일본에서는 재판을 통해 임대료 인상 혹은 인하가 결정된다.

프랑스 역시 최초 임대차계약은 자유롭게 체결하지만, 임대료 인상은 국가통계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하는 ‘비교기준 임대료 지수(IRL)’의 변동폭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이 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 변동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

미국 뉴욕은 임대료를 강하게 규제하는 도시 중 하나다. 뉴욕시 산하 ‘임대료 가이드라인 위원회’가 매년 임대료 인상 지침을 고시한다. 이 위원회는 세입자 대표 2명, 집주인 대표 2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평균 소비자물가지수, 주택의 공급과 수요, 주택담보대출 비용, 각 계층의 빈곤율과 해당 지역 생계비 등을 고려해 인상률 상한을 정한다. 2019년 10월1일~2020년 9월30일에 체결된 임대차계약 갱신의 경우 1년 계약은 1.5%, 2년 계약은 2.5%가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이다.

일본에서는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세금이나 가격의 변동 등으로 임대료를 올리거나(집주인) 내리라고(세입자) 청구할 수 있다. 재판을 통해 확정된다.

결국 주택 문제를 시장에 내팽개치는 국가는 거의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한국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상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10년간 보장하기로 정한 나라다. 그러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이제 막 도입되었다. 그것도 4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이런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물론 임대주택의 대부분이 민간 소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2017년 현재 전체 주택 대비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6.7%에 불과하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6.7%에 불과

각 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등 비영리 임대주택 비율, 자가 소유 비율, 주택 보유에 따른 세금, 금융 접근성, 노후연금 보장, 국토 균형발전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임대료 통제가 주택 공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연구 결과들이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각 사회의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때 세입자가 거주하는 한 내쫓을 수 없을 정도로 임대차 규제가 강력했던 영국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임대차 보호가 거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보편적 계약형태인 ‘단기 보장 임대차’에 따르면, 최초 6개월을 제외하고는 집주인이 언제든지 2개월 전에만 통지하면 별다른 사유 없이도 임대차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주택 문제는 결국 ‘주거’를 둘러싼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 문제다”라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자유주의적 복지국가에선 주택이 대부분 시장을 통해 배분되는 반면, 네덜란드 같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는 비영리 주택 비중이 30%에 달한다. 민간 임대주택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규제가 강한 독일은 시장과 공공이 조화를 이루는 조합주의적 복지국가의 특성을 갖고 있다. 굳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자가에 살든 세 들어 살든, 비영리 임대주택에 살든 민간 임대주택에 살든 큰 격차가 없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다. 계약갱신청구권은 미약하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다.”

참고 자료:〈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2018년,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2020년, 법제사법위원회) 등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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