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에는 부록이 하나 딸려 있다. ‘지갑 속에 쏙! 가장 피해야 할 20가지 화장품 성분 카드’가 그것이다. 소비자들이 이 카드를 늘 갖고 다니다 화장품을 고를 때면 반드시 성분표와 대조해보는 습관을 들였으면 한다고 구희연·이은주씨(위)는 말했다.
두여성은 결국 얼굴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둘은 범법자가 아니다. 파렴치범은 더더욱 아니다. 멋내기 좋아하고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일 뿐이다. 이들의 죄라면, 오직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며 알게 된 화장품의 폐해를 세상에 드러내 알린 ‘내부 고발자’라는 것이다. 폭로 이후 업계 반응은 갈렸다. 상업적으로 이들을 이용하려는 쪽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쪽. 이들이 아직은 얼굴을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결정한 이유다.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석사 과정(향장미용 전공)에 재학 중인 구희연·이은주씨. 두 사람이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거름 펴냄)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년 전이다. 대학 졸업 직후 입사한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5년간 교육 업무를 하던 시절만 해도 이은주씨(31)는 ‘화장품 마니아’였다. 화장을 하는 둥 마는 둥했던 대학 시절과 달리 제 손으로 값비싼 최고급 화장품들을 사들이느라 바빴다. 구희연씨(34) 또한 20대 중반 들어 급작스럽게 발병한 아토피에 시달리기 전까지만 해도 화장품 애호가였다. 아토피를 낫게 하기 위해 입문한 천연 화장품의 세계에 이끌려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됐다.

그런데 화장품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면 할수록 이들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최근 석면을 함유한 화장품이 사회문제가 됐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화장품에 들어 있는 성분 중에는 석면만큼 위험하면서 언제 그 활성 반응이 나타날지 모르는 물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르고 화장품을 쓴다. 성인 여성뿐 아니라 10대 소녀, 남성, 심지어는 유아까지 매일 화장품 세례를 받는다. 저자들은 이런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과거 화장품에 무지한 나머지 괴롭혔던 자신의 피부에, 그리고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며 만났던 고객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두 사람을 만나보았다. 이들이 낸 퀴즈를 풀며 화장품의 진실에 접근해보자.

피부를 위해 4종 세트 정도는 발라야 한다?

4종 세트뿐이랴. 요즘은 12종 세트까지 등장했다. 세안 후 스킨-로션-에센스-크림을 발라야 고운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땅의 여성에게 상식을 넘어 거의 신앙으로 통한다. 그러나 구희연·이은주씨는 “기초 4종 세트 개념이야말로 더 많은 제품을 한꺼번에 판매하려는 화장품 회사의 전략이 낳은 한국형 마케팅의 소산이다”라고 말한다. 외국 화장품 가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발명품이 이들 4종 세트다. 이들은 점성과 탄성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같은 제품이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유사한 원료에 폴리머(화장품 점성과 탄성을 결정짓는 화학물)를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묽은 순서대로 스킨·로션·에센스·크림이 만들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화장품을 많이 쓸수록 돈은 돈대로 깨지면서 피부가 오히려 빨리 노화한다는 사실이다. 구희연씨는 이를 ‘피부 비만’ 개념으로 설명했다. 스킨·로션 등 거의 모든 화장품에는 보습제가 들어 있는데 이를 한꺼번에 바르는 것은, 밥·우동·스파게티·자장면을 한 그릇에 넣고 비벼 먹다 탄수화물 과잉으로 비만에 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것이 치명적인 것은 우리 몸의 항상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피부는 외부 환경에 맞춰 천연 로션(피지)과 스킨(땀)을 배출하게끔 자동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런데 외부에서 수분과 피지가 과다 공급되면 이런 조절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다고 구씨는 말한다. 곧, 넘치는 영양에 당황해 유·수분 배출량을 비정상으로 늘리거나 아예 줄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우리 몸이 자가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크림은 20대부터 발라야 한다?

눈가 주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크림을 바르기 시작하라고 화장품 회사는 권유한다. 심지어는 18세부터 아이크림 바르기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부추기는 화장품 회사도 있다(인터넷에 들어가면 이 문제로 고민하는 10대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이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 미친 짓이고, 피부에 가혹한 일이다.

청소년기는 피부 자정 능력이 활발하다. 넘어져서 다쳐도 피부가 금세 아문다. 그런데 이런 10대 피부에 화장으로 자극을 주면 상처 회복 능력이 일찌감치 마비될 수 있다. 10대에 피부를 혹사한 대가는 20대 넘어 돌아온다. 노폐물 때문에 모공이 막힌 피부는 호흡과 흡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피부 자체의 흡수력이 떨어지므로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써도 무용지물이고, 잔주름도  빨리 찾아온다.

 
기능성 화장품을 쓰면 주름이 사라진다?

기능성 화장품 승인을 받은 화장품 품목은 2006년 현재 2219개에 달한다. 2003년 전체 시장에서 12.9%를 차지했던 기능성 화장품 시장은 2006년 18.9%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시장의 총아인 이들 기능성 화장품이 비싼 만큼 제값을 하느냐.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들 생각이다. “기능성 화장품 또한 화장품일 뿐이다.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다”라고 구희연씨는 말한다. 화장품으로 ‘미백’ ‘주름 개선’ 같은 극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기능성 인증 절차라는 것도 사실 별게 아니다. 특별한 원료를 굳이 개발해 첨가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는 기능성 고시 원료를 함량 기준에 맞춰 사용하기만 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한 화장품 성분표를 보면 일반 화장품과 크게 차이가 없다. 오직 기능성 고시 원료인 아데노신을 첨가했을 뿐이다. 그 함량이라는 것도 적게는 0.04%, 많아 봐야 3%다. 구씨는 따라서 식약청이 기능성 화장품의 정의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처럼 아예 기능성 화장품을 따로 구분하지 말든가, 아니면 소비자가 기능에 따른 혜택을 제대로 입을 수 있는 제품에만 기능성 인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품 효과는 빨리 나타날수록 좋다?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화장품은 일단 의심해보라고 이은주씨는 말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다. 피부 주기상 새 화장품 효과가 나타나려면 한 달은 걸린다. 그런데 겨우 일주일 만에 피부가 몰라보게 촉촉해졌다? 이런 제품 상당수는 산화납, 수은화합물, 과산화수소, 하이드로퀴논 등 사용이 금지된 원료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씨는 지적했다. 이런 화장품을 사용했다가 한번 파괴된 피부조직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비싼 화장품은 좋은 원료를 사용한다?

화장품에 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이 바로 이 대목에 숨어 있다.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간단하다. 화장품은 70% 이상 물(정제수)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유분을 첨가해 피부의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것이 화장품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물과 기름은 자연 상태에서 섞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섞기 위해 유화제, 가용화제, 분산제, 습윤제 따위 계면활성제를 사용한다. 개봉한 화장품이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방부제를 첨가해야 한다. 유혹적인 빛깔과 향기를 위해 향료와 색소도 필요하다.

이들 성분 중에는 인체에 유해한 것이 많다. 2000년 미국 국립산업안전연구소가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화장품에서 총 884종에 이르는 독성 물질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778종은 신체에 매우 예민한 독극물이고, 376종은 피부와 눈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2004년 1월 〈응용독성학회지〉에는 유방암 환자 20명에게서 떼어낸 종양 조직 샘플에서 파라벤 성분이 검출됐다는 논문이 실렸다(영국 리딩 대학 P. D. 다버 박사팀). 파라벤이 유방암을 유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 환자에게서 예외없이 파라벤 성분이 나왔다는 것은 충격적인 결과였다. 파라벤은 화장품에 대표적으로 쓰이는 방부제다. 고가 화장품일지라도 성분표를 보면 메틸파라벤·프로필파라벤·부틸파라벤 따위가 어김없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화장품, 이 성분만은 피해라〈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에는 부록이 하나 딸려 있다. ‘지갑 속에 쏙! 가장 피해야 할 20가지 화장품 성분 카드’가 그것이다. 소비자들이 이 카드를 늘 갖고 다니다 화장품을 고를 때면 반드시 성분표와 대조해보는 습관을 들였으면 한다고 구희연·이은주씨는 말했다. 저자의 동의를 얻어 이 중 5가지 성분만 발췌·소개한다. 성분표에서 이들 명칭은 다르게 표기돼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파라벤’은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테르’로도 표기되며, 메칠파라벤·프로필파라벤 등으로 종류 또한 다양하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은 서점을 찾아주시길.
유아용품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극·무자극을 내세운 유아용 로션, 크림, 보디 제품에도 이런 성분이 버젓이 함유돼 있다. 샴푸, 린스, 보디클렌저 따위 목욕용품은 상황이 더 끔찍하다.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번식하기 쉬운 욕실에 있어야 하는 제품 특성상 더 많은 방부제가 들어 있다. 간혹 변질된 화장품이 눈에 띄는 것과 달리 샴푸·린스가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라며 이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방부제·합성 계면활성제 따위가 화장품에 쓰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성분은 식약청이 화장품에 쓸 수 있게끔 허가한 물질이며, 화장품은 식품과 달리 피부에 소량 바르는 것인 만큼 인체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희연씨는 ‘역치점’(생물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크기)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분의 역치점이 100이라면 이 물질은 99.9까지 활성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100이 되는 순간 활동을 개시한다. 현대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중금속 대부분이 이런 역치점을 갖고 있다.

“몸에 역치점 이상의 독성이 쌓이려면 300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라고 화장품 회사들은 호언하지만 구씨는 생각이 다르다. “독성이 들어간 화장품 18가지를 쓰는 사람은 불과 11년 만에 역치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화장품 시장 세계 7위인 한국은 화장품 많이 쓰기로 소문이 나 있다. 2007년 화장품 업체 로레알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품 가짓수는 낮에 12.9개, 밤에 6.47개에 달했다.

■그렇다면 천연 화장품이 대안이다?

석면 화장품 공포까지 겹치면서 요즘 유기농·천연·자연주의 따위를 내세운 화장품이 큰 인기를 누린다. 그렇지만 현행 화장품법상 천연 및 유기농 화장품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은 없다. 따라서 자연 성분이 단 1%만 들어가도 이를 천연·자연주의 화장품이라 우기는 일이 가능하다. ‘유기농’은 조금 다르다. “비유기농 원료가 소량이라도 들어가면 유기농 화장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고 식약청이 밝히고 있어 ‘유기농 화장품’ 용어를 쓰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식약청이 빨리 현실적인 지침을 정해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에서 이른바 유기농·천연 인증을 받았다는 화장품 인기가 치솟고 있다. 유럽의 에코서트(Ecocert), 독일의 BDIH, 일본의 JAS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인증 마크 중에는 허가 기준이 예상 밖으로 허술한 것도 있다고 요즘 화장품 전문 강사로 인기가 높은 유정현씨(SSC 뷰티아카데미 원장, 〈화장품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역자)는 지적했다. 더욱이 최초 검사만 통과하면 그 뒤 천연 성분을 재조정해도 제재 조처가 없는 인증 마크도 있는 만큼, 과신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대안은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일까? 이것도 해답은 아니라고 구희연씨는 말한다. 팩이나 천연 비누를 직접 만들어서 쓰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화장품은 다르다. 천연 재료를 장기간 사용할 때 독성 반응이 생길 수 있는 데다, 화장품을 피부에 흡수시키기 위해서는 분자구조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한 만큼 화장품 만들기는 전문가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오히려 화장품 회사의 각성을 촉구한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나 중소기업은 천연 계면활성제나 천연 방부제를 열심히 연구해 무파라벤 화장품 따위를 내놓고 있는데, 국내 대기업은 아직 무풍지대에 머물러 있다”라는 이은주씨는, ‘화장품 회사의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어온 착한 소비자’로 인해 기업이 더 현실에 안주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화장품을 고를 때 색과 향기, 가격만 보기보다는 성분을 먼저 깐깐하게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날 때 우리 건강권도 확보되고, 화장품 산업의 미래도 밝아진다는 것이 구희연씨 주장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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