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최예린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던 2020년 1월 말 긴 잠에 빠져들었다가 반년 뒤 눈을 뜨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리둥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 본 ‘코로나19 세계지도’는 〈그림 2〉(아래)와 같은 모습이었다. 1월29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그린 그림이다(Situation report-9). 코로나19 발생 지역은 하얗게, 미발생 지역은 회색으로 표시했다. 빨간색 동그라미의 크기가 클수록 누적 확진자 수가 많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는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유럽 일부와 아메리카 대륙에도 일부 번졌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발생 국가는 17개국, 전체 6065명의 확진자가 WHO에 보고되었다. 그 가운데 5997명이 중국 확진자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직 ‘중국 바이러스’ 또는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리던 시절이다.

■ WHO는 왜 ‘그러데이션’을 택했을까

6개월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19는 사라지지도, 약해지지도, 특정 지역에서만 돌지도 않았다. 확산 초기 제기됐던 여러 가지 낙관적 가능성이 기각됐다. 나왔던 전망들 가운데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다. 전 세계를 휩쓸었는데 그 양상은 7월29일 기준 〈그림 1〉(위)과 같다. 역시 WHO가 그린 지도다(Situation report-191).

WHO는 코로나19 발생을 세계지도 위에 나타내는 방식을 3월26일 66번째 리포트부터 변경했다. 발생 지역과 미발생 지역을 흰색과 회색으로 나누고 확진자 수를 빨간 원의 크기로 표현하던 그래픽(〈그림 2〉)으로는 더 이상 코로나19의 확산 범위와 규모를 반영해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륙의 배치도 바꾸었다. 예전 동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이 코로나19 지도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감이 오히려 유라시아 대륙을 누른다.

이제 코로나19는 ‘그러데이션’으로 표현된다. 색의 짙고 옅음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가 유채색, 코로나19의 확산지이자 진원지다. 색이 가장 짙은 인도·브라질·미국은 반년 전 코로나19를 비교적 강 건너 불구경하던 나라들이다. 반대로 확산 초기 상황이 심각했던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비교적 색이 옅다.

다만 이것은 상대적이다. 반년 전 500명 이상이었던 누적 확진자 수 최대 단위는 10만명 이상, 2명 미만이었던 최소 단위는 100명 미만으로 바뀌었다. 색이 옅은 곳이 코로나19에서 안전한 국가는 아니다. ‘진짜 심한 곳보다 덜 위험한’ 지역일 뿐이다. 전 세계 184개국, 1658만4341명(7월29일 09시 기준)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는 이제 명실상부한 ‘팬데믹 바이러스’이다.

■ 반전에 반전,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세계사’

저렇게 그림의 모양이 바뀌는 동안 지구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 6개월간 코로나19 세계사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위기와 반전, 안도와 후회 속에서 각 국가들의 희비가 그래프 곡선처럼 ‘엇갈렸다’. 그 엇갈림이 〈그림 3〉(아래)에 나타나 있다. 각기 다른 색깔의 선들은 12개 주요 국가들의 최근 7일간 일일 평균 신규 확진자 수의 추이를 보여준다. 저 어지러운 선들 사이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 3〉 그래프에서 시기를 나눠보자. 대략 4월 말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가를 수 있다. 중국에서 먼저 그래프가 치솟은 다음 한국 등 주변국이 따라 오르고, 서유럽 국가들이 초기 중국의 충격이 무색하게 높은 꼭짓점을 찍고 서서히 가라앉은 게 전반부 상황의 요약이다. 미국은 유럽과 같이 묶어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로 특이한 상승세를 보였다. 대규모 확진이 다소 늦게 시작되었지만 빠른 속도로 증가해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를 차례차례 제치고 3월22일 코로나19 최대 발생 국가가 되었다.

상승세는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다. 2~4월 한창 코로나19 관련 국제뉴스 면을 장식하던 국가들은 5월 즈음 조금씩 하락세를 경험했다. 살금살금 봉쇄령을 풀고 경제활동을 재개했다. 4월26일 4만8529명으로 최대 확진자 수를 찍은 미국도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렸다. 한국 역시 중국발에 당황하고 ‘신천지발’에 기겁하고 서유럽·미국발에 경악하던 ‘충격과 공포’의 시간을 거친 뒤 확진자가 한 자릿수에 머물면서 다소 긴장이 풀리던 시기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진 황금연휴 철에 고속도로가 꽉꽉 막히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북반구를 먼저 휩쓴 코로나19는 이제 지구 남반구로 향했다. 〈그림 3〉의 후반부 스토리다.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새로운 코로나19 위기 서사를 만들어냈다. 채식이니 카레니 ‘코로나19 의외의 선방’의 비결이 운운되던 인도, 대통령이 ‘작은 독감’이라고 부르며 코로나19의 위험을 무시하던 브라질, 중국과의 국경을 조기에 차단해 확산을 막았다고 자찬하던 러시아가 현재 상위권 랭킹을 달리고 있다.

가장 의외인 나라는 여전히 미국이다. 신흥 주자 브라질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 1위 자리를 내주는가 싶더니 6월 말 다시 브라질을 제쳤다. 이후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 불가’의 선을 그리고 있다. 7월 들어 하루 신규 확진자 수 7만명을 넘기며 여러 번 세계 최고 기록을 찍었다. 그게 어느 만큼이냐면, 우리나라 인구로 환산해보았을 때 하루 1만2000여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는 꼴이다. 미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7월29일까지 총 426만3531명(WHO 집계), 미국인 100명 중 1명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21세기 세계사를 이끌어나가던 미국은 2020년 팬데믹 역사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미국의 압도적 스케일에 눌려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보이는 지역들을 다시 들여다보자. 〈그림 3〉 그래프의 7월 말 시점에서 바닥에 깔려 있는 국가들, 밑에서부터 한국·중국·이탈리아·영국·일본·프랑스 등이다. 모두 2020년 상반기 한 차례 (당시로서는) 큰 파고를 겪었다가 지금은 미국·브라질·인도 등과 같은 도표 안에 집어넣어 놓으면 눈을 부릅뜨고 선을 찾아봐야만 하는 ‘기사회생’ 국가들이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상대적이다. 미국·브라질·인도의 착시를 걷어내고 다시 보면 밑에 가라앉아 보이는 그래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뒤로 갈수록 미미하지만 분명 그래프가 고개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이다. 3월27일 하루 신규 확진자 수 9181명까지 올라갔다가 6월 말 200명대까지 떨어진 스페인은 7월27일 다시 6361명을 기록했다. 프랑스·독일·네덜란드·벨기에 등도 재확산 조짐에 방역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7월29일 일본은 1344명을 찍어 4월12일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한국도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50명 아래에 머물렀던 5월을 지나 6월과 7월에 접어들면서 ‘100명 미만’의 선이 심심찮게 도전받고 있다. 해외 유입 확진자가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이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요인이 결국 지역감염 확산의 불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위협적이다.

국경을 치우고 전 세계를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 일일 신규 확진자 수(7일 평균) 그래프를 그려보면 〈그림 4〉와 같다. 코로나19를 반년 결산해보면,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있다. 7월 말 하루 평균 약 25만명이다. 전 세계에서 경북 경주 시민(6월 말 기준 인구 25만3758명) 전체를 합한 수만큼 매일매일 신규 환자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치사율은 국가별로 다르긴 하지만 평균 4% 남짓. 7월29일까지 총 66만여 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날은 4월16일, 1만512명이 죽었다. 최근인 7월24일 9836명으로 다시 그만치에 육박했다(〈그림 5〉). 결국 코로나19의 세계사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적어도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 천차만별 그래프가 알려주는 것

코로나19라는 도전 과제를 받은 개별 국가들의 성적표를 매긴다면 무엇이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발생률’이 한 축이 될 수 있다. 발생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방역정책이 실패한 국가일 확률이 높다. ‘사망률’도 중요하다. 고위험군을 사회가 얼마나 보호했는지, 의료기관이 얼마나 높은 ‘캐퍼시티(capacity:수용능력)’를 갖추고 있는지 방증할 수 있다. 〈그림 6〉은 몇몇 국가의 코로나19 발생률(인구 10만명당 확진자 수)과 사망률을 각각 가로·세로축으로 두고 좌표로 표시한 그래프다. 미국·브라질·싱가포르 등은 발생률이 높고, 영국·이탈리아·멕시코 등은 사망률이 높다. 한국은 어떤 평가 기준 아래에서도 대략 모범적인 상위권으로 보이지만, 언제든 좌표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언제 저 그래프를 그리느냐에 따라 점의 위치는 확확 달라질 수 있다.

발생률과 사망률이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 기준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발생률은 진단검사를 얼마나 활발하게 하는지, 그 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와 무관하지 않다. WHO는 진단키트 부족 등으로 아프리카 확진자 통계가 부정확할 수 있다면서 ‘침묵의 확산’을 우려했다. 독재국가 북한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아직 코로나19 발생률이 0%이다. 사망률 역시 실제 얼마나 많은 코로나19 환자들이 공식적 통계에 잡히는 죽음을 맞이하는지와 연관돼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쩌면 ‘추이’가 더 정확한 평가 기준일 수 있다. 처음부터 코로나19를 잘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에 잘 대응하고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 사회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량일 터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림 7〉의 국가별 코로나19 신규 확진 수(7일 평균) 추이를 보자. 나라별로 그래프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각국이 택한 방역정책과 처한 환경, 어쩌면 약간의 행운과 불운이 함께 만들어낸 선의 모양이다. 인도처럼 거칠 것 없이 쭉 올라가는 ‘맹공형’ 그래프도 있고, 일본·이스라엘·오스트레일리아처럼 1차보다 2차 파고의 높이가 더 높은 ‘뒷심 부족’ 그래프도 있다. 한국의 그래프는 그중 가장 준수한 모양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슬금슬금 다시 오르는 느낌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국내 여행 장려 캠페인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는 자가격리자 관리에 실패하면서, 이스라엘은 경제 재개방 등 봉쇄 조치를 완화하고 나서부터 다시 그래프가 치솟았다. 한국도 언제든지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얼마나 염두에 두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남은 2020년과 다가오는 2021년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바뀔 것이다. 지난 반년간의 코로나19 기록에서 분명 배울 것이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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