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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내내 꽃길만 걸어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본인이든 주변 사람이든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아팠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성인 대부분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일터이니 말이다. 나만 해도 전공의 때 지독한 몸살감기에 해열제를 계속 먹으며 일하다가 독성 간염에 걸린 적이 있다. 시험문제에도 곧잘 출제되는 전형적인 약물 과다복용 부작용이었다. 당시 국제 학술세미나 준비를 맡아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고, 약의 성분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지어 간염 의심 증상이 나타나고도 설마 하며 하루를 더 버티다 결국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내과 전공의 친구가 화들짝 놀라 급히 입원 수속을 진행하며 말했다. “야, 이거 산재 아니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나는 산재보험을 청구하지 않았고 진지하게 고려하지도 않았다. 끙끙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팠지만 입원해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일주일 입원한다고 임금이 깎이는 것도 아니고, 보복이나 해고를 당할 염려도 없었으며, 병원비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병실에 모여서 수다를 떨던 전공의들에게 산재보험은 고단한 우리 처지를 보여주는 ‘웃픈’ 농담의 소재일 뿐, 손에 잡히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그랬으리라. “이거 산재 아니야?”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 산재보험 청구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감기에 걸렸든 암에 걸렸든 건강보험은 ‘당연히’ 적용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산재보험은 어쩌다 이렇게 콧대 높은 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었을까?

■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불만

노동자들에게 별 존재감이 없지만, 사실 알고 보면 산재보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회보장제도이다. 1884년 독일 비스마르크 정권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한 이래 오스트리아·핀란드·프랑스·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 등이 1890년대에 산재보험을 도입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조차 1911년에 산재보험을 도입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급속한 산업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노동자의 계급투쟁이 가져온 노동과 자본 사이 타협의 산물이었다.

국내에서도 산재보험은 가장 오래된 사회보장 프로그램이다. 1988년과 1995년에 시작된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1977년 도입된 건강보험보다 훨씬 이전인 1964년에 시작되었다. 군사독재 정권에서 그 어떤 사회보장보다 산재보험을 먼저 도입한 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산재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처음에는 500명 이상 규모의 광업과 제조업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것이 지난 56년 동안 적용 대상도 늘어나고 보장성도 꾸준히 개선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존재감이 없으며, 여전히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 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복귀를 촉진’한다는 목표에 여전히 근접하지 못한 탓이다.

사실 그동안 제기된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다 늘어놓으려면 〈시사IN〉 한 권 분량도 모자란다. 이 글에서는 지난해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시행한 ‘산재 노동자 지원사업’과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 경험을 토대로, 산재보험 신청 장벽의 문제를 간략히 소개해보려 한다. 산재보험 제도에서 아예 배제된 이들, 이를테면 가사·간병 노동자나 직원 5명 미만의 농림어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임의가입자 신분인 특수고용 노동자 이야기는 일단 미뤄두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로 사고성 산재를 당하고 산재보험 청구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 입장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사실 연구 시작 전에는, 업무 연관성을 둘러싼 논쟁 때문에 산재 인정까지 수년씩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직업병에 비하면 사고성 산재는 승인과 보상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연합뉴스청소업체 직원들이 줄에 매달려 건물 유리창을 닦는 모습. 산재가 발생하면 이를 은폐하도록 압력을 넣는 사업주도 적지 않다.

■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를 헤아려주지 않는 근로복지공단

노동자가 산재보험 청구를 하는 데 통과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은 사업주의 협조다. 이론적으로 산재보험은 피해 당사자가 국가(근로복지공단)에 청구하는 것이기에 사업주의 ‘허락’이 필요 없다. 2018년에는 사업주 날인 제도가 아예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어렵다.

예컨대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용접 일을 하는 A씨는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업체에 보고해야 하고, 그러면 다음 해에 하청업체의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고가 많이 일어난 회사는 아예 폐업을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장에서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했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산재보험 청구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건물 외벽 청소를 하던 하청 노동자 B씨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든 소방서든 전화를 해버리면” 문제가 커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벽에서 추락한 이후 기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가 있다가 작업을 마치고 복귀한 동료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산재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업주도 있지만, 은근히 혹은 대놓고 산재를 은폐하도록 압력을 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상(公傷)’ 처리 약속은 단골 레퍼토리. 죽을 때까지 책임질 테니 산재 청구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막상 치료가 길어지고 비용이 많이 나오면 회사는 다른 말을 꺼내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은 그제야 산재 청구를 결심하는데, 대개는 회사와의 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다음이다.

그나마 공상 처리라도 약속한 경우는 인간적인 축에 속한다. 계약직 노동자 C씨는 회사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지만 산재보험 청구를 하지 못했다. 상급자가 병원으로 찾아와 산재신청을 하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남편, 친정어머니, 딸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신청할 수가 있겠어요?” C씨가 이듬해 퇴직한 후에야 산재보험을 청구한 것은 그때 받은 모욕과 설움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었다.

수하물 하역 작업을 하다 허리를 다친 D씨는 회사가 출입증을 정지시키는 바람에 산재보험 청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런가 하면 복지관 친선 축구대회에 참여했다 인대가 손상된 노동자 E씨는 산재 불승인 판정 이후,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에는 축구대회가 직원들의 자발적 친목 행사였으며 참가를 강제한 적이 전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가 개인 휴가를 내고 자발적 의사에 의해 참여한 운동경기 중에 발생한 사고’였기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던 것이다. E씨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회사가 가로막지 않아도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청구는 어려운 도전 과제이다.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근로복지공단이지만, 모든 서류 준비와 절차는 노동자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파견노동자 F씨는 산재를 당한 뒤 공상 처리를 했다가 뒤늦게 산재보험을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무심하게 서류를 준비해오라고 했지만 소속되었던 파견업체는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회사가 잠수 탔는데 어디 가서 서류를 준비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복지관 축구대회에서 다쳤던 E씨는 행정자료를 다루는 데 나름 능숙한 편이었지만,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자료를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다.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밖에 없고, 회사에 있는 게 아니니까 자료를 충분히 만족스럽게 제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산재가 빈발하는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행정정보에 대한 접근성이나 이해력이 높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건설 현장에서 물건을 옮기다 추간판탈출증에 걸린 G씨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전화를 걸어 산재보험 청구 절차에 대해 문의했지만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화를 하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저도 말주변이 없다 보니까… 말도 못하겠고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그는 “네, 알겠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했다. 항상 그 일을 처리하는 담당자한테는 익숙한 용어와 절차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신청 서식과 법령 용어는 외계어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구에 참여한 노동자 중에는 산재보험 처리가 어렵다는 주변의 이야기만 듣고 아예 신청을 포기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 자원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지인 중에 법률이나 의료 전문가가 있을 가능성이 낮고, 비용을 들여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죠. 어디 가서 신청해야 하는가 말로는 착착착 하지만. 누가 해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해주고.” 그러다 보니 이들의 딱한 처지를 이용하는 ‘수상한 브로커’에게 당하기도 한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사업에 신청한 노동자 대부분이 생계비뿐 아니라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근로복지공단 창구에서 서류를 제출하는 노동자들은 이미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것이고, 많은 이들이 문턱조차 넘어보지 못한다. 연구마다 결과는 조금씩 다르지만, 산재 발생 시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비율은 평균 24~34%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들이 어떤 노력을 들여서 이 서류를 준비했는지, 얼마나 고민을 하며 서식을 채워왔는지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시사IN 조남진2010년 2월 한 조선소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사람 중심, 환자 중심의 건강보장 체계

지난 몇 년 동안 보건학계에서는 ‘사람 중심 보건의료 서비스’라는 개념이 확산되었다. 이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를 보건체계의 중심에 둔다는 뜻이다. 사람들을 서비스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로 보며, 인간적이고 전인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필요와 선호를 반영하되, 이것이 가능하도록 사람들의 역량 강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설명에 비추어본다면 현재의 산재보험 체계는 ‘사람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도움의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에게 ‘알아서 신청하세요, 홈페이지에 다 나와 있습니다. 기다리세요, 순서대로 처리합니다’라고 하면서 노동자의 사정 따위는 일일이 귀 기울이지 않으니 말이다. 산재보험이 사람 중심의 사회보장제도라면, 그것이 없어도 전혀 어려움이 없는 사람, 제도의 미로를 능숙하게 잘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이들을 중심에 두고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 역량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공정’은 아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은하계 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지구가 ‘철거’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상공에 나타난 외계 우주선들이 철거 시작을 알린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항의하는 지구인에게 그들은 답한다. “지구에서 겨우 4광년밖에 떨어지지 않은 알파 센타우리 항성 지역개발 부서 게시판에 모든 개발계획 지도와 철거 지시서를 지구 시간으로 무려 50년 동안이나 붙여놓았는데, 그동안 왜 아무 문제 제기도 안 하다가 이제 와서 놀라는 척하는지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배꼽을 잡는 대목이지만, 현실 근로복지공단의 대응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면 씁쓸하다. 일터에서 산업재해를 경험할 위험성이 높은 이들일수록 법률·행정용어로 가득 찬 안내 지침을 이해하기 어렵다.

산재 은폐를 강요하는 회사의 압력을 견뎌내기 어렵고, 전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산재로 인한 생계 위협에 가장 취약하고 산재보험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택시를 한 거예요. 택시는 그날 나가면 몇만 원이라도 벌어오니까. 진짜 쌀이 없었어요.” “아침에 손을 들라고 해요. 잔업할 사람. 주간만 하면 돈이 안 돼요, 야간을 할 수밖에 없어요. 아니면 주말에도 풀로 나가든가. 그래야 돈이 되니까.” “빚이 워낙 많았고 제 앞으로 압류 들어오는 게 많으니까 그래서 일을 두세 개 이상 할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다쳤으니 당장 병원비, 생계비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산재보험제도는 더욱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같은 친절함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기자명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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