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유튜브 갈무리지난해 3월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씨(오른쪽)가 수전 워치스키 유튜브 CEO를 만났다.

최근 새로운 매체로 등장해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의 세계를, ‘가짜뉴스 잡는’ 유튜버 ‘헬마우스’가 매주 단위로 해학적이지만 냉정하게 그려냅니다. 〈시사IN〉에 새롭게 연재하는 ‘금주의 유튜브’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너도나도 유튜버다. 그야말로 ‘대(大)유튜브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케이팝의 최전선에 서 있는 방탄소년단(BTS)이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을 적극 활용하며 성장했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에게 알려져 있다. 이런 기회가 꼭 세계적인 팝스타에게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70대 할머니의 인생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뒤집어’지는 일도 생긴다. 2017년까지 자신을 ‘71세, 식당 운영자’라고 소개한 박막례씨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BTS와 규모는 다를지 몰라도 그의 유튜브 영상 역시 국경을 뛰어넘는다. 수전 워치스키 유튜브 CEO가 그를 찾아 한국을 방문했고, 구글의 CEO 선다 피차이도 “그의 콘텐츠에 영감을 가장 많이 받는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럴 만도 하다. 박막례씨의 성공 사례는 구글에게는 아마도 BTS보다 중요할 테니까. 평범한 사람들 모두를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박막례씨는 ‘71세에 유튜브에 도전하여 인생이 뒤집어졌다, 인생은 71살부터’라는 표현을 썼다.

다른 사례도 있다. 유튜브 채널 ‘이과장’. 채널의 핵심 콘텐츠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지방대’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변방의 상징 같은 건데 어떻게 중소기업을 소재로 전업 크리에이터가 될 만큼 채널을 키울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영상을 찍어 업로드하곤 했다. 상자가 대충 쌓여 있는 사무실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올린 4분 남짓한 영상이 대박을 터뜨렸다. ‘중소기업의 달인이 말하는 현실적인 X소기업 장단점’이라는 제목의 콘텐츠다. 영상에서 그는 자신이 겪었던 중소기업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자조했다. 예컨대 중소기업의 단점. 1)최저임금보다 낮거나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 2)중소기업의 사내 복지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3)컴퓨터로 업무하다가 빗자루를 들어야 하고, 빗자루를 들다가 인두기를 들어야 하고, 인두기를 들다가 지게차를 잡아야 하는 등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업무 구조 4)회사 오너의 가족이 아무렇게나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회사 오너의 후계자 양성소.

제목에는 중소기업의 장단점이라고 썼으나 중소기업의 장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장점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이 영상에서 “중소기업 다니면서 이걸 공감할 사람들 생각하니까 너무 웃긴다”라며 내내 자조했다.

ⓒ이과장 유튜브 갈무리‘이과장’은 중소기업을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돈이 되기도

예상은 적중했다. 영상은 86만 조회수를 넘겼다. 많은 이가 함께 자조하며 그의 얘기에 공감했다. 영상에서 말한 중소기업의 부조리와 문제가 비단 그가 다닌 회사들에만 해당될 리 없다. 한국 사회의 다수가 겪고 있는 문제지만 기성 매체나 담론에선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콘텐츠로 삼으니 수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즉, 개인사로 만든 콘텐츠가 다수의 공감을 얻고, 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심지어 콘텐츠를 생산한 본인은 이를 통해 다른 삶을 기획하게 된 사례다.

이렇듯 유튜브는 기회의 땅이다.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환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채널을 성장시키면 71세 할머니의 인생을 뒤집기도 하고, 굴레 같던 중소기업의 부조리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오죽하면 요즘 ‘직장인 2대 허언’이 ‘퇴사할 거다’와 ‘유튜브 할 거다’가 됐겠는가?

그러나 바로 같은 지점에서 유튜브를 통한 사회적 부작용도 발생한다. ‘공감’이라는 현상에는 윤리적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꼭 긍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N번방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콘텐츠를 업로드해도 일부 안티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다. 5·18 희생자를 모독하면 수많은 극우 성향의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정치인 중에도 대놓고 5·18을 왜곡하는 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반윤리와 역사 왜곡을 콘텐츠로 하더라도 수요는 분명히 있다. 더욱이 유튜브에선 그 모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돈으로 바꿔낼 수 있다.

공감만 받으려면 논리적 정합성도 필요 없다. 공감은 정서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얼기설기 가짜로 엮어서 발송해도 환호를 받을 수 있다. 일부 유튜버들은 21대 총선이 부정선거임을 밝히겠다는 주장으로 많은 사람들의 후원금을 얻었다. 실제로 투표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해도, 단지 정치적 박탈감이나 현실부정 의식을 자극해서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다.

아뿔싸! 이제 북한까지 나섰다. ‘북한 유튜버’ 채널들이 이슈가 된 이유는 ‘콘텐츠 형식’ 덕분이다. 북한 유튜브 채널에는 ‘먹방’ ‘브이로그’ ‘리뷰’, 심지어 ‘키즈 유튜브’까지 올라와 있다. 말하자면 채널에 올라온 콘텐츠들이 기존 북한 선전물과 달리 명백히 ‘유튜브 흥행 문법’을 따르는 셈이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 채널에 올라온 키즈 유튜브 콘텐츠를 ‘북한판 보람튜브’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현 시대의 가장 자본주의적 문법을 써서 반자본주의 체제 선전을 하고 있는 셈.

현실에서는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언저리인 대한민국을 향해 엄포를 늘어놓고 접경지역 안보 문제까지 일으키는 북한이, 온라인에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집단인 그 북한이,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가장 열려 있는 플랫폼인 유튜브를 이용해 자기들 체제에 대한 선전선동을 하는 시대다(일부 영상에는 광고까지 걸려 있다). 체제 선전인지 달러벌이인지는 지켜봐야겠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대북·대남 전단 살포 같은 구시대적 행태들이 판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사이의 간극은 아득할 정도다.

개인의 삶을 바꾸고 문화 트렌드를 바꾸며 기존 매체가 다루지 못했던 사회문제와 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시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자 동시에 기존 윤리와 상식을 전복하는 혼란의 땅. 우리는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바로 이 나라, 유튜브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우리 시대의 사람과 사회, 문화와 현상에 대해 읽어보려 한다.

기자명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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