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과학 사무차장은 백신 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라고 강조한다.

국제백신연구소(IVI) 본부는 서울에 있다. 유엔개발계획의 제안에 따라 설립됐고 한국이 본부 유치국으로 선정된 후 1999년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단지에 자리 잡았다. 세계 보건을 위한 비영리 기구로 백신 개발과 예방접종에 전념한다. 특히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저소득 국가에서 백신 접근성을 높이는 일에 힘쓰고 있다. 전 세계 35개 국가가 가입돼 있는데 그중 선진국은 많지 않다. 1달러짜리 저렴한 백신을 개발·보급하겠다는 국제백신연구소의 비전을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달가워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처럼 백신은 과학의 산물이자 필수 의약품이지만, 동시에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국제백신연구소의 송만기 과학 사무차장은 2004년 이 기구에 합류했다. 감염병 백신 전문가인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제백신연구소는 코로나19 백신을 직접 개발하지는 않지만, 개발 단계에 있는 제약사와 연구팀을 폭넓게 지원하고 이끄는 역할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 등 보건 분야 국제단체들과 긴밀하게 백신 개발 전략을 공유한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였던 지난 2월, 송 사무차장은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까지 1년6개월이 걸릴 거라고 내다봤다. 1년6개월은 백신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타임라인이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그 예상마저 뛰어넘는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전 인류가 공통으로 바라는 염원이다. 그러나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다 자칫 놓치고 가는 부분은 없을까. 송만기 과학 사무차장과 인터뷰를 통해 이를 짚어봤다.

놀라운 속도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백신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빠르게 개발된 백신은 지카 백신이다. 4년이 걸렸다. 개발에 착수하고 6개월 뒤에 임상시험(사람 대상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미국 모더나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이 2개월 만에 임상을 시작했다. 스타트는 미국과 중국에서 제일 먼저 끊었는데 지금 선두에 있는 건 영국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개발하고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생산하는,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한 코로나19 백신이다. 이 추세라면 오는 10월에는 안전성과 효능이 증명된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10월이 되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그런 의미는 아니다. ‘이 정도까지 증명된 백신이 나왔네’ 하는 시점이 이르면 10월이라는 뜻이다. 그때 ‘이제 빨리 대량생산 들어가자’ 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백신 하나가 완성되었다고 뒤따르던 백신 개발이 끝나는 건 아니다. 첫 번째 백신보다 더 나은 백신이 계속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AP Photo7월6일 미국 텍사스주 유나이티드 메모리얼 메디컬센터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에 백신 개발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긴급하게 백신이 필요한 상황이 속도를 내게 만들었다. 한국은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지만 영국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정말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나. 과학자들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접근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백신 개발은 동물시험을 마친 뒤 임상 1상· 2상·3상을 해야 하는데, 단계마다 필요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런데 코로나19 백신은 임상시험에 들어가자마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면서 1상과 2상을 같이 진행하고 있다. 보통 임상 1상은 수십 명 단위로 테스트를 하고, 임상 2상에서 몇백 명 단위, 임상 3상에서 수천 명 단위로 하기 마련이다. 규제 당국에서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승인 요건을 간소화해 임상시험 허가를 신속하게 해주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백신을 개발한 이후, 대량생산까지도 긴 시간이 걸린다. 백신을 제조할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처음엔 코로나19 백신도 한 회사에서 한 제품을 생산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가능성 있는 백신을 전 세계에서 나누어 제조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 방식이면 시간도 줄이고 물량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모더나, 그리고 중국 시노팜과 시노백이 임상 3단계에 들어갔거나 곧 들어갈 예정이다. 성공이 그만큼 가까워진 것인가?

임상 1상·2상에서 접종자들에게 중화항체가 나오는지 보고 면역성을 어느 정도 확인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을 때 정말 막을 수 있는지는 3상을 해봐야 안다. 임상 3상에 들어가는 코로나19 백신들은 1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시험으로 예정돼 있다. 대상자들을 백신을 맞은 그룹과 위약 그룹으로 나누어서 접종 이후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비교한다. 위약 그룹에서는 500명이 걸렸는데, 백신을 맞은 그룹은 감염자가 그보다 적고 걸렸다 해도 중증으로 가지 않으면 효과가 입증되는 것이다. 미국이나 브라질처럼 현재 코로나19 환자가 많이 나오는 곳에서 3상을 하면 서너 달 안에 백신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백신 개발에서 3상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1상, 2상에 비해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무엇보다도 백신을 개발하던 도중에 감염병 유행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스와 지카가 그랬다. 대형 제약사들은 이번에 코로나19 백신에 비교적 늦게 뛰어들었는데 사스와 지카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사스·지카와) 양상이 달랐다. 이제 대형 제약회사들도 모두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Reuter6월24일 윌리엄 케임브리지 영국 왕세손이 옥스퍼드 백신그룹 연구실을 방문하고 있다.

효능 못지않게 안전한 백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백신은 안전성이 최우선이다. 그 점에서 치료제와 다르다. 치료제는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어도 사용한다.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말기 암환자에게 독한 약도 쓴다. 그러나 백신은 병을 예방하기 위해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접종하는 의약품이다. 백신 개발이 까다로운 건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백신 접종으로 감염을 막아서 100명을 살렸어도 백신 부작용으로 3명이 사망하면 그 백신은 승인을 받기 어렵다.

백신의 안전성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장기간 관찰해야 한다. 2018년 필리핀에서 뎅기열 백신의 승인이 철회된 적이 있다(뎅기열은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급성 바이러스 질환이다). 프랑스 대형 제약회사 사노피가 개발한 백신인데, 백신 접종자 중에서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증상이 더 심해지는 어린이들이 나타났다. 부작용이 생긴 환자는 소수이고, 이 백신으로 뎅기열 피해는 훨씬 줄었지만 필리핀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그 이후 WHO는, 뎅기열 유행이 심한 곳에서는 이 백신을 쓰되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한다.

백신 개발사에 이처럼 아픈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다. 전문가들이 백신의 안전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임상을 마치고 출시된 백신에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나 확률이 0.1%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임상 3상을 원래보다 큰 규모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규모로 하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시험용 백신을 맞게 되고 그만큼 케이스가 많아진다. 희귀한 경우도 테스트 망에 걸리고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정식으로 접종할 때도 계속해서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백신 개발 과정에서는 전 임상(동물시험)과 임상 1·2·3단계마다 시험 결과를 논문으로 낸다. 지금까지 나온 데이터를 보면 어떤가?

영국의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한) 백신, 중국의 아데노바이러스 타입5(를 활용한) 백신, 또 다른 중국팀의 사백신, 그리고 미국 대형 제약사 화이자(Pfizer)에서 개발 중인 RNA 백신에 대한 결과가 논문으로 나와 있다. 미국 모더나(RNA 백신)와 이노비오(DNA 백신)는 아직까지 언론을 통해 임상시험 데이터를 일부만 공개해서 정확한 시험 결과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터뷰 이후인 7월15일 모더나는 임상 1단계 결과를 의학저널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백신을 두 차례 투여한 사람은 코로나19 회복자에게서 볼 수 있는 중화항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전반적인 데이터를 보면 현재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이 감염을 100% 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중화항체(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항체)를 유도하긴 하지만 그 수준이 아주 높지는 않다. 현재로서는 증상을 완화해 중증으로 가는 환자와 사망자 수를 줄이고, 감염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 효능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나?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 완벽하게 틀어막지는 못해도 바이러스 배출량이 줄어들고 감염 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코로나19를 덜 옮기게 된다. 이런 콘셉트의 백신도 많이 쓰인다. 독감 백신을 생각하면 쉽다. 독감 백신을 맞은 뒤 독감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증상을 약하게 앓는다. 각국 정부에서도 아주 높은 효능을 요구하는 대신,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면 사용승인을 내줄 것으로 보인다(6월3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승인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는데,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 사이에서 대조군에 비해 감염률이나 중증도가 최소한 50% 이상 낮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사IN 이명익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가는 모습.

한국인들은 언제쯤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해외에서 성공한 백신을 수입해 그걸 그대로 사용하는 전략으로 간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접종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무 급하게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말했다시피 선두 그룹에 있는 백신들의 효능이 아주 높아 보이진 않는다. 나이가 들면 면역반응이 떨어지기 때문에 코로나19의 고위험군인 노인들에게서는 효과가 더 낮을 것이다. 지금 앞서가는 백신에서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국내 연구팀에서 이를 보완하는 전략으로 갈 수 있다. ‘프라임-부스트(prime-boost)’ 접종이라는 게 있는데 서로 다른 백신을 1차 접종(프라임), 2차 접종(부스트)으로 맞혀서 면역반응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에도 한 팀이 6월 임상 1/2상에 들어갔고 2~3개월 내로 몇 팀이 더 임상을 시작할 것 같다. 내년 초까지는 1상·2상을 마치고 중순에는 3상에 들어가야 한다. 한국은 코로나19 환자 발생 수가 적기 때문에 3상은 해외에서 해야 한다. 내년 중후반에는 국내에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한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지고 대중의 관심도 크다. 관련 정보를 접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

초기에는 백신 후보 물질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백신이 완성된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백신 후보 물질을 발굴했다는 건 ‘개발 시작했어요’ 정도의 의미다(백신은 후보 물질 발굴-동물시험-임상 1·2·3단계를 거쳐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개발이 완료된다). 이제는 백신업계에서 진짜 선수들이 뛰고 있어 그런 어설픈 기사가 나오던 시기는 지났다. 백신의 공급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앞으로 나오는 뉴스를 가려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승인받은 코로나19 백신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접종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백신을 제조해 보급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코로나19는 돌연변이가 많이 생겨서 백신을 개발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맞지만 크게 동의하지 않는 주장이다. 코로나19는 독감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만큼 변이가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과학자들이 백신의 방어 범위를 벗어나는 변이가 발생하는지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가짜 바이러스인 슈도바이러스(pseudovirus)를 돌연변이 형태로 만들어서 백신의 방어능력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있다. 백신을 접종했을 때 나오는 중화항체가 이 슈도바이러스를 잘 막아내는지 보는 것이다. 아직까지 백신 개발에 방해가 되는 돌연변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제백신연구소에서는 백신의 주요 구성물인 스파이크 단백질의 변이에 따른 백신의 효능 변화를 보기 위해 코로나19 슈도바이러스를 10개 정도 만들고 있다. 향후 변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슈도바이러스를 만들어 백신의 효능이 변종에도 유효한지 모니터링하려 한다.

코로나19 유행이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보나? 독감처럼 계절마다 돌아오는 감염병이 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특정한 스토리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최악부터 최상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놓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여름이 되면 수그러들 거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독감처럼 될지는 미지수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종류 자체가 굉장히 많다. 독감은 변이도 더 많이 생기고 여러 종의 동물 사이에서 잘 퍼진다. 코로나19는 독감의 특성과 조금 거리가 있다. 이런 바이러스는 백신을 통해 집단면역이 자리 잡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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