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6월14일 정의당이 국회에서 ‘21대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6월29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년 전에도 한국 사회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당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국회의원들은 보수 진영의 반발이 거세지자 스스로 그 법안을 거둬들였다. 재난과 불평등의 시대, 우리는 왜 혐오와 차별을 말해야 할까?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가 차별이 왜 문제인지부터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까지, 꼼꼼하게 따져 묻는다. 격주로 연재한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6월29일 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안에 서명하여 7년 만에 차별금지법이 다시 발의되었고, 바로 다음 날 국가인권위원회는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평등법(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2006년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민주당도 더 이상 침묵하고 방관하지만은 않을 분위기다. 혁신에 목마른 미래통합당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언급했을 정도다.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출범이라는 역사적인 일이 있었지만, 정작 인권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법률은 부재했다. 특히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와 달리 ‘차별행위’는 그 개념과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사회가 제대로 맞닥뜨려보지 못한 낯선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10줄도 안 되는 차별행위 개념으로 모든 차별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권위는 차별 판단 지침을 만드는 등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보려 노력했고 수차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차별이 무엇인지 법률로 정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시민들에게 무엇이 차별인지 알리고 평등을 위한 국가적 책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법률 제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 법률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라면 거의 예외 없이 보유하고 있는 바로 그 법 말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대통령 공약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고, 취임 직후인 2003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성안에 착수하여 2006년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차별로 고통받던 시민들과 일찌감치 차별 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지만,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2007년 법무부는 기존 인권위 안에서 크게 후퇴한 차별금지법안을 내놓게 된다. 이마저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되면서, 최초의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잘 알려진 얘기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차별금지법 논의는 희미하게나마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보수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법무부에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설치했고, ‘동등대우법’이라는 법안을 성안했다.

2012년 수립된 2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아예 국정 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포함했다. 법무부에 차별금지법 TF가 설치되었고 동등대우법안을 성안하기도 했다. 진정성이 의심될 만한 형식적인 조치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보수 정부에서조차 논의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국회에서도 제17대, 18대, 19대 국회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꾸준히 의원입법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렇게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차별금지법 논의가 자취를 감춘 것은 2013년 이후다. 2013년 민주통합당 소속의 최원식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각각 12명, 51명 의원의 서명을 받아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지만, 보수세력의 항의로 법안을 철회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국회의원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법안이 철회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최악의 메시지를 전달한 꼴이 되었다. 차별금지법 반대 세력에게는 ‘우리가 법안도 철회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정치인들에게는 차별금지법 추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2013년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2008년 정동영 대선 후보와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2017년 문재인 후보 공약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빠졌고 국정 과제로도 채택되지 못했다. 제17대, 18대, 19대 국회에서 여섯 번이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정작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20대 국회(2016~2020)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도 추진했으며, 정동영 대선 후보와 문재인 대선 후보(2012년)도 약속했던 차별금지법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6월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영애 위원장이 제10차 전원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좌절은 다른 인권·평등 관련 입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차별금지법안 철회 성공으로 기세가 오른 보수세력은 인권·성평등·차별 등이 언급된 모든 종류의 법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2014년에는 인권교육지원법안이 철회되었고, 2016년에는 증오범죄통계법안이 철회되었다. 2016년과 2018년, 2019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다섯 건이 모두 철회되었다. 이 중에는 유승민·조원진·조경태 등 보수정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도 있었으나, 보수세력은 인권이나 차별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내용이 있으면 막무가내로 반대했고 법안 철회를 압박했다. 2018년에는 인권교육지원법안과 혐오표현규제법안, 정보통신망법안이, 2019년 성차별금지법안 두 건이 비슷한 이유에서 각각 철회되었다. 2016년에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고, 2017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으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중앙정치가 이렇게 헤매는 사이에 지방정치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이쯤 되면 ‘역사의 퇴행’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가정을 파괴하며,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근거 없는 얘기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그것도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과 공급, 행정서비스 등 일부 영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모든 영역에서 모든 종류의 차별을 일소하겠다는 법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공동의 삶의 영역에서만은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법이다. 일례로 광화문 한복판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것은 차별적인 혐오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차별금지법의 규율 영역은 아니다. 다만 그 동성애 반대를 외치던 사람이 자기 회사에서 누군가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했다면 그것은 차별금지법 위반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종교를 이유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인종을 이유로, 장애를 이유로, 성별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것에 찬성하느냐고. 아마 국민 절대다수는 ‘그건 안 된다’고 답할 것이다. 반대운동에 힘을 보태던 사람들도 이 질문에는 멈칫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고, 이러한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차별행위를 금지함으로써 공존의 조건을 만들려고 하는 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고 충분한 토론을 거친다면 이러한 취지의 법률에 반대하는 사람이 다수일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차별금지법 여론조사를 할 때, ‘차별금지법 찬반’을 묻는 대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입학시험에서 감점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를 물어야 하고, ‘동성애 찬반’을 묻는 대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을 허용할지’를 물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래야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복잡한 고려를 할 필요도 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020년 인권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8.5%가 나왔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87.7%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담백하게 차별금지법 찬반을 물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쯤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룰 때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던 ‘사회적 합의의 부재’에 대해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다수결로 운영되는 국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라면 문제가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열렬히 옹호해왔던 나 역시도 차별금지법이 국회 다수의 지지를 얻어 통과되길 바란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멈춘다면 국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 국회는 논의를 하여 공론을 형성하는 곳이지, 수동적으로 여론을 반영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 법이 소수자의 권리와 평등에 관한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반대 목소리가 높다고 법안 추진이 불가하다면 세상에 통과될 수 있는 법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왜 유독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할 수 없는가? 차별금지법이야말로 가장 심하게 ‘차별’받아온 법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사이에 오히려 국민 여론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압도적 찬성으로 기울게 되었다. 국회는, 정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차별금지법은 간단한 법이 아니다. 지금은 일부 보수 개신교의 목소리가 높아서 그렇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뒤로 물리고 안개가 걷히고 나면 새로운 쟁점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실제로 종교의 자유보다는 ‘영업의 자유’와의 충돌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논쟁을 야기할 것이다. 쉽지 않지만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문제다. 지금부터 단단히 마음먹고 논의에 부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당장 법안을 발의하고 공론장에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연합뉴스2013년 8월22일 국회 앞에서 ‘동성애·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및 군형법 92조 폐지 반대 기자회견’이 열렸다.

“나중은 없다. 우리가 있다”

정의당은 물론 미래통합당까지 나선 이상 이제 공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 넘어갔다. 2013년 이후 중단된 인권과 평등에 관한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이 정부 임기 내에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남겨야 한다. 한국의 인권과 평등에 대해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일이고,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정부와 그 열망으로 탄생한 다수당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한 단계 진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그 중심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고 싶다. 다행히 언론 환경은 나쁘지 않다. 유튜브와 포털에는 가짜 뉴스가 난무하지만, 전통적인 미디어에서는 꾸준히 ‘팩트체크’를 하며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조금만 수고를 하면 차별금지법이 무얼 하려는 법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나의 존엄한 삶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데 차별금지법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셔야 한다.

막연한 관심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 발의할 의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그동안 반대 세력이 집요하게 의원 한 명 한 명을 압박해나갈 때, 정치인들이 믿고 의지할 버팀목이 마땅치 않았다. 버티지 못하는 의원들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나중은 없다. 우리가 있다”를 기치로 내걸고 발의 의원 10명을 지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 의원들을 지켜서 더 많은 의원들이 안심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의원실에 전화도 걸고, SNS에 지지 글도 올리고, 후원금도 보내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자. 10명이 100명이 되고, 200명, 300명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2020년은 당분간 다시 오기 힘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년부터는 대선 정국이 시작되고, 줄줄이 공직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정의당이 선봉에 섰으며, 미래통합당조차도 차별금지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로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기자명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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