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7월1일 홍콩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가 양손이 묶인 채 경찰 무릎에 짓눌려 제압당하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내용은 예상을 넘어섰다. 말로는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미사여구를 빼놓지 않았지만, 사실상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회의(4중 전회) 보름 전 시진핑 주석이 했다는 말을 충실히 실행에 옮긴 듯하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의 분열을 시도하면 뼛가루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6월30일 밤 11시 공표된 홍콩보안법의 내용을 읽어보면 시 주석의 섬뜩한 결기가 느껴진다.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이른바 4대 중요 범죄를 빌미로 결국 중국 공안세력이 홍콩을 직할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4대 범죄가 아닌 통상적인 사안에서도 행정권과 사법권의 분리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홍콩 거주 외국인이나 홍콩에 등록한 외국계 기업에게도 이 법을 적용하겠다는 데 이르러서는 중국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헷갈릴 정도다. 이 법대로라면 글로벌 기업 중 홍콩에 남을 기업이 얼마나 될까.

위에서 든 4대 범죄의 최고 형량은 무기징역이다. 마카오 보안법의 최고 형량이 30년이기 때문에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많았는데 오산이었다. 4대 범죄 형량만 놓고 보면 중국 본토와 똑같다고 한다. 더욱이 범죄 혐의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홍콩 독립’이라는 구호만 내걸어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7월1일 시위에서 홍콩 독립 팻말을 들고 있던 사람이 보안법 처벌 1호가 되었다. 시위 중 과격한 행동은 테러행위로 규정되고 외국에 홍콩의 사정을 호소해도 외세 결탁에 해당될 수 있다.

ⓒXinhua지난해 10월31일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참석한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 전회).

홍콩 거주 외국인과 외국계 기업도 적용

중국 본토 출신 공안 담당자가 국가보안처(홍콩 주재 국가보안공서)의 장이 돼 안보 관련 범죄를 총괄한다. 또 국가보안수호위원회를 홍콩 행정청 산하에 둔다. 행정청이 산하 조직의 관리·감독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경찰 내에도 보안업무 담당조직이 만들어진다. 이 같은 이중 삼중의 감독체계로도 모자라 주요 사건은 중국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길도 열어놓았다.

홍콩 행정장관이 일부 재판에 대해 판사를 지명할 수 있게 한 희한한 조항도 있다. 공직선거 출마자나 공무원 임용자는 반드시 중국에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올해 9월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의 선거를 친중파 일색으로 치르려 한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홍콩 거주 외국인도 이 법의 대상인데, 홍콩 영주권자나 홍콩에 등록한 기업이 홍콩 이외 지역에서 보안법을 위반해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식 통제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바깥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례를 찾기 힘든 폭압 체제다. 로이터 통신이 ‘홍콩에서 권위주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논평했지만 권위주의라는 표현이 점잖게 느껴질 정도다.

홍콩 내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강경한 내용으로 일부 단체들이 해산하고 일부 민주파 인사들이 단체의 직을 내려놓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반면 대중들 차원의 저항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첫날인 7월1일 하루에만 시민 370여 명이 시위 도중 체포됐다. 국제사회의 항의 의사도 표출됐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서방 27개국이 홍콩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6월3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사흘간의 심의를 마치고 보안법 표결에 들어가기 몇 시간 전,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며 중국을 압박하려 했다. 그동안 미국은 홍콩에 대해 ‘중국과 다른 지역’이라는 특별지위를 부여해왔다. 그 덕분에 홍콩은 중국과 달리 군사적 용도로 전용 가능한 물품이나 첨단기술 제품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있었다. 미국 상무부는 홍콩보안법 통과를 계기로 이 같은 ‘특혜’를 홍콩으로부터 회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6월30일(현지 시각) “베이징은 이제 홍콩을 ‘한 국가 한 체제’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 미국은 홍콩의 자유와 자치를 질식시킨 사람들에 대해 계속해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홍콩보안법이 거론될 때부터 미국의 입장은 일관되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켜 1984년의 중·영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를 철회하면, 미국 역시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에 따라 고도의 자치가 보장되는 것을 조건으로 비자 발급이나 관세, 금융, 민감한 기술제품의 수출 등에서 홍콩에 중국 본토와는 다른 특별대우를 해왔다.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무비자 혜택과 최혜국대우(MFN)에 준하는 낮은 관세, 홍콩 달러와 미국 달러의 자유로운 교환 보증 등의 특별대우 덕분에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글로벌 무역·금융 허브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미국은 최근까지 특혜를 박탈하겠다는 원칙적인 선언만 할 뿐 과감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해 홍콩 시위로 인해 ‘범죄인을 홍콩에서 중국으로 인도하는 법안(범죄인 인도법안)’이 철회된 뒤부터 홍콩보안법 준비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0월 말 4중 전회에서 “홍콩과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국가안보 수호 관련 법률제도를 완비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이 홍콩보안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중국 내의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홍콩보안법을 밀어붙여도 미국이 할 수 있는 조치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미국의 국익도 크게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홍콩에 8만5000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어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미국의 이익도 해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홍콩엔 미국인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미국 기업도 약 1400개 진출해 있다. 이 중 300여 개 법인은 해당 기업의 아시아본부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도 2018년 미국의 홍콩 직접투자(FDI) 액수가 825억 달러라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이 홍콩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면 홍콩에 투자한 글로벌 금융사와 외국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의 특별지위 박탈 조치 이후 홍콩 내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달러 페그제(홍콩 달러와 미국 달러 간 교환비율을 1달러=7.8홍콩 달러로 고정해놓은 제도)’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면, 중국이 ‘위안화 페그제(홍콩 달러와 위안화를 일정 환율로 고정)’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선전과 상하이가 홍콩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 측 예상대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는 미국의 얘기는 아직 말뿐이다. 그렇다고 아무 조치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6월25일 미국 상원은 홍콩자치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홍콩자치법은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중국의 개인, 단체(기업)를 미국 정부가 제재하는 법안이다. 중국공산당 간부, 정부관리, 홍콩 경찰에 대한 비자발급 중단은 물론 미국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 신용거래, 외환거래 등을 금지한다. 이들에겐 미국 국채나 미국 기업에 대한 투자, 미국 내 부동산 취득까지 금지하는 등 제재 조치가 광범위하다. 특히 이 인사들은 물론 그들이 거래하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기관까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홍콩보안법과 관련해 미국 측이 꼽는 예상 제재 대상 인물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서열 4위 왕양, 서열 7위 한정 등과 샤바오룽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주임, 뤄후이닝 홍콩 연락판공실 주임 등이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에 막대한 은닉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차후 재산 동결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또한 앞으로 공산당 관련자들이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되는 경우 이들과 거래하는 HSBC 같은 금융기관들까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기관들이 이해득실을 따져 중국공산당 간부들과 거래를 중단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홍콩보안법이 홍콩의 민주파를 겨냥한 법이라면 미국의 홍콩자치법은 홍콩 자치를 위협하는 중국 인사들을 겨냥한 법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지난 6월30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홍콩피난처법이다. 마르크 루비오 상원의원 등 공화·민주당의 의원 10여 명이 발의한 이 법은 홍콩보안법 통과로 인해 정치적 박해에 처한 홍콩 시민들이 자국 내나 제3국에서 서류 작업을 통해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한 법이다. 이 법에 대해서는 보도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홍콩피난처법이야말로 현 단계 미국 대응의 핵심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핵심은 홍콩 주민들에게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5월28일 중국 전인대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자마자 영국은 홍콩 시민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영국 해외 시민권(BNO)을 영국 시민권으로 바꿔주겠다며 치고 나왔다. 현재는 약 35만명이 BNO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1997년 홍콩 반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290만명까지 대상이 늘어난다. 영국 측은 홍콩 시민 740만명 중 최소한 290만명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들의 홍콩 내 활동에 따라 영국 시민권 발급을 통해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었다.

ⓒAFP PHOTO6월2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스콘신주 조선소를 시찰하고 있다.

제2의 홍콩, 한국이 적합?

영국 혼자 이들을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벅차다. 홍콩피난처법은 미국이 영국과 같이 뛰어들겠다는 이야기다. 홍콩보안법의 탄압 아래서 저항에 나서는 홍콩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도 시민권 발급 등을 통해 정치적 뒷배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정 시점이 지나면 홍콩 시민의 상당수를 홍콩 밖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도 있다. 수십만 명 규모의 홍콩 대탈출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영국과 미국이 움직이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인도 같은 영연방 국가들과 타이완 역시 홍콩 시민 이주 계획에 합류할 것이다.

주민들의 ‘홍콩 탈출’이 본격화되면 홍콩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 역시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 정부는 이미 완곡한 형태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7월1일(현지 시각) 방송 인터뷰에서 “홍콩에 아시아본부를 둔 기업들이 본부 이전을 검토할 수 있다. 홍콩이 중국에 특별하지 않다면 우리에게도 특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장관이 이 정도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홍콩을 위해 특혜를 계속 줄 수 없으니 기업들이 알아서 빨리 빠져나오라’는 신호와 다를 바 없다. 중국 측이 비웃었던 특혜 폐지가 대단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홍콩 주변의 싱가포르, 타이완, 필리핀, 일본 사이에는 제2의 홍콩이 되기 위한 신경전이 한창이다. 상대적으로 한국만 조용하다. 중국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어정쩡한 태도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흘려버리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제2의 홍콩이 한국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단적으로 지난 6월1일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왜 직접 전화를 해서 한국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와 함께 G11 회의에 초대한다고 했을까? 이에 대해 일본은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대하고 나섰을까. 단순히 아시아 유일의 G7 국가라는 독점적 지위가 흔들려서일까?  일본은 도쿄가 제2의 홍콩이 돼야 한다고 미국을 조르고 있지만, 미국은 일본에 그 지위를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무리 미·일 동맹 운운하지만 과거 전쟁을 치른 상대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싱가포르가 떼어놓은 당상인 듯 거론되긴 하지만, 중국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행정부가 화교의 온상인 싱가포르를 선뜻 선택할지도 의문이다.

돌고 돌다 보면 한국이 가장 좋은 입지라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의 속마음일 수 있다. 한국은 경제규모, 첨단산업 수준, 금융 인프라, 인재 풀 등 10개 이상의 항목에서 ‘최고 적합’ 판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홍콩에 진출했던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이 인천 송도가 됐든 제주도가 됐든 밀려 들어오면 청년 취업난부터 시작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K방역으로 세계의 신뢰를 얻은 여세를 몰아 정부가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대선 전에 북·미 대화를 주선하겠다는 계획인 듯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차라리 미국을 설득해 홍콩 지위를 한국으로 가져오고 여세를 몰아 북한을 설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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