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인천공항 보안검색 요원이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업무 교대를 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다. 공기업이라 고용이 안정적이다. 평균 근속연수가 11.5년으로 전체 노동시장 평균(6.7년, 2019년 기준)보다 길다. 무엇보다 연봉이 높다. 2019년 결산 기준 인천공항 정규직의 1인당 평균 연봉은 9129만8000원이다. 이 가운데 경영평가 성과급이 880만4000원이다. 신입사원 초임은 4507만9000원으로 공기업 중 11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인천공항 정규직은 대략 1500명이다. 주로 사무직이나 현장 관리감독직이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을 거치는 동안 만나는, ‘인천공항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 약 1만명은 인천공항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용역업체 소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12일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았고, 정일영 당시 인천공항 사장은 “공항 가족 1만명 모두를 금년 내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3년여 뒤인 지난 6월22일, 인천공항은 정규직 전환이 6월 말로 완료된다고 밝혔다. 인천공항에 필요한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9785명 중 대부분(7642명, 78.1%)은 공항 운영, 시설/시스템 관리, 보안경비 등 3개 자회사로 고용된다.

자회사가 아니라 인천공항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이들도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시·지속 업무이면서 생명·안전에 밀접한 업무는 자회사가 아니라 해당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항 소방대 211명, 야생동물 통제인력 30명, 보안검색 인력 1902명 등 2143명(21.9%)을 상시·지속 업무이자 생명·안전 업무로 보고 인천공항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자회사 형태의 정규직 전환은 별 논란이 되지 않았다. 직접 고용은 달랐다. 인천공항의 발표 직후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에 27만명 넘는 이들이 동의했다. 청원문 중 한 대목이다. “사무 직렬의 경우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고작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서, 비슷한 스펙을 갖기는커녕 시험도 없이 그냥 다 전환이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우선 시험 없이 다 전환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직접 고용으로 전환되는 이들 중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2017년 5월12일 이후 입사자는 공개경쟁 채용을 거치기로 했다. 이들은 입사할 때, 추후 정규직화 정책이 추진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해서다. 문 대통령 방문 전에 입사한 이들은 적격심사 방식으로 채용한다. 가장 인원이 많은 보안검색 직군의 경우, 1902명 중 약 800명(42.1%)은 공개채용을 거쳐야 한다.

ⓒ연합뉴스6월25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조합이 청와대 인근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합원들이 ‘불공정한 전환 과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2017년 5월12일 전 입사한 보안검색 요원 1100여 명이 ‘공개채용’을 거치지 않고 인천공항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공정한가? 인천공항 정규직의 지난해 입사 경쟁률은 156대 1로 알려졌다. 서류-필기-AI 면접-1차 면접-2차 면접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어야 인천공항 정규직이 되는데, (필기) 시험도 치르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자격 없는 이들이 받는 과도한 보상, 곧 무임승차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논란이 커지자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6월2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일단 이 직종은 기존에 보안검색 직원, 소위 비정규직이죠. 일하시던 분들의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공사에 취업 준비를 하는 분들의 일자리와는 첫 번째로 관련이…(없다).”

취업준비생과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세 가지로 따져볼 수 있다. 첫째, 취업준비생 대다수가 희망하는 인천공항 정규직은 사무직이다. 보안검색은 사무직이 아니므로 직접적 경쟁 대상이 아니라는 가정이다. 이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다만, 보안검색 직군의 경우 기존에는 ‘특수경비직’ 신분이었다가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되는데, 공공기관의 청원경찰을 선호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있을 수 있다.

둘째, 보안검색 직군은 인천공항 정규직이 되더라도 기존 정규직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므로 청년들이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인천공항은 직접 고용될 보안검색 요원들의 평균 연봉을 약 3850만원 수준으로 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들이 받게 될 구체적 임금수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기존 정규직 임금을 따라 오를 수 있다. 울타리 밖에 있을 때보다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임금 격차가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균 연봉 3850만원을 넘어서는 좋은 일자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직접 고용 정규직화로 신규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냐다. 공기업 인건비는 기획재정부가 총액인건비제로 엄격히 통제하지만, 지침상으로는 기존 정규직과 새로 전환된 정규직 인건비가 따로 관리된다. 다만 공기업은 신규 채용 등 증원 시 기재부와 협의하게 되어 있고, 그간 기재부가 각 기관의 정원(TO) 확대에 깐깐하게 굴어온 역사를 감안하면, 줄어들 여지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연합뉴스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동일노동·동일임금’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질문을 조금 더 밀어붙여 보자. 청년들이 선호할 만한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2017년 5월12일 전 입사자라도 공개채용을 거쳐야 할까? 이러면 기존 근무자도 떨어질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기존 비정규직에게 이익이 되고자 추진하는 정책인 점을 감안하면, 이렇게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것은 모순이다. 황덕순 일자리수석은 앞서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점을 지적하며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채용 과정의 공정성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더 커다란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성을 지향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성은 뭘까?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내가 어느 직장에 가든 하는 일이 비슷하면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는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상시·지속 업무는 가급적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비정규직 정규직화’ 원칙이라고 부르자.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할까?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더 상위에 있는 보편 원칙이다. 비정규직이라도, 고용이 불안한 점을 감안해 임금을 더 준다고 하면 이는 나쁘지 않다. 많은 나라에서 비정규직을 용인하되 임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 ‘균등’하게 대우하자는 주장이 동의를 얻고 있는 이유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현재 진행되는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두 원칙을 충돌하게 만든다. 다시 정이환 교수의 설명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관철된다는 전제하에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추진되어야 좋은 노동시장 정책이다. 정규직화를 추진하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깨진다면, 좋은 노동시장 정책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어서 고용이 안정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특히 공공부문이라는 이유로 고용안정이 될 뿐 아니라 임금이 가파르게 오른다면, 정규직이 된 사람들은 좋지만 전체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깨지고 새로이 격차가 벌어진다.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노동시장 공정성의 어떤 면에선 기여하지만(공공부문 안에서 기존 정규직과 새 정규직의 격차 축소), 다른 면에선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 격차 확대).”

한국에선 직무나 직종에 따른 임금 수준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바 없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는 어디에 다니느냐가 보상을 결정한다. 그 보상은 대개 첫 직장에 따라 결정되며,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공공부문은 독보적이다. 2019년 공기업 등 공공기관 직원의 평균 연봉은 6779만원이다. 노동자 평균 연봉의 약 2배 수준이다.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상위 10% 언저리다. 근속과 직급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갖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오랜 주장은, 노동시장 불평등의 핵심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것이 ‘선’이고,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집권세력에서 상당 부분 수용되었다. 이에 따라 2019년 말 기준 17만4000명이 직접 고용 또는 자회사 방식으로 공공부문의 정규직이 되었지만, 정권 초기 일부 민간 대기업의 정규직화 말고는 민간에 확산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공약은 기업이 하청 등 비정규직을 쓰는 사유를 아예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는 여러 이유로 추진되지 않고 있지만,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로또 취업’이라는 비아냥거림은 분명 과장되었지만, 공개채용 없는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특권’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개채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울타리를 승인하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 있는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한국노총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조합)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정규직 전환’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보안검색 직군의 직접 고용을 반대하지 않지만 자신들과 합의 없이 추진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당신의 자녀, 지인 또한 이렇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들은 청원경찰 신분을 주면서까지 직접 고용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것은 특혜이자 국민의 기회의 평등을 박탈한다며 헌법 소원을 검토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요즘것들연구소는 6월2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로또 취업 성토대회’를 열었다. 이른바 ‘부러진 펜 운동’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SNS상에서 제안한 한 공기업 취업준비생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발언한다. “열심히 노력해 인천국제공항공사 공채에 합격한 직원들 그리고 다른 취업준비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중략) 한 개인이 자신의 노력만큼 보상을 얻고 이에 따른 소득격차를 인정하는 게 건강한 사회의 표본이다.”

다른 경로는, 울타리 밖 사람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전선을 짜는 것이다.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연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의 슬로건 중 하나는 “결과적 평등 거절, 진정한 기회의 평등”이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의 수익은 효율적 경영뿐 아니라 독점권으로부터도 나온다는 점에서 ‘렌트(rent:지대)’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렌트’를 누릴 ‘자격 있는 소수’를 결정해온 것이 공개채용(시험)이다.

공기업 경영진은 정부를 대리하고, 정부는 시민을 대리한다. 인천공항 정규직이 시험 한 번으로 사실상 평생 얻고 있는 결과는 납세자의 이익에 충실한가? 시민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공채 시험으로 얻는 유무형의 이익이 100% ‘노력’ 또는 ‘재능’에 따른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채 시험과 해당 직무를 하는 능력의 연관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안검색 요원들은 평균 5년간 하루 12~14시간씩 12조 8교대로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208시간의 항공보안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1년에 한 번씩 별도 평가도 받는다. 입사 후 처음 1년 동안은 최저임금(8590원)을 시급으로 받는다. 10년 차 정도에 (처음 1년보다) 1263원 오른 시급 9853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용역업체와 3~5년 단위로 계약해 근속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대희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노동조합 공동위원장은 “시험을 보라고 하는데, 하루 14시간씩 근무하는 보안검색 요원들이 고시원 같은 곳에서 2~3년 준비한 이들과 대결하는 것이 공정한 구조인지 묻고 싶다. 공사 일반직이 성과급 많이 받을 때 우리는 5000원짜리 식권을 받아도 꿋꿋하게 버텼다. 공사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공항에서 우리 직원에게 ‘알바몬’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길 듣고 참담했다. 시험을 보는 노력만 노력이고, 공항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계속 일해온 것은 노력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시사IN 전혜원인천공항 동관 로비에 마련된 박스. 정규직 노조의 ‘부러진 펜 운동’ 모습이다.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이 정의로우려면?

인천공항 동관 1층 로비에는 박스가 놓여 있다. 직원들이 퇴근할 때 부러트린 연필을 넣는다고 한다. 박스 안 포스트잇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규직화 지지한다. 자회사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돌아온 건 역차별적 직고용?” 정규직 노조의 ‘부러진 펜 운동’ 모습이다.

정이환 교수는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추진하기는 쉽지만 노동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결국 개별 기업을 넘어서 비슷한 일을 하면 비슷한 대우를 받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고, 거기에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예컨대 공공부문은 민간보다 고용안정성이 높으니 임금은 전체 노동시장 평균보다 너무 높지 않게 균형을 맞추겠다고 정부가 약속해야 한다. 자회사의 경우 모회사보다 오히려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은 임금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임금을 안정화하는 대신 인력을 더 뽑아달라고 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민간부문 임금을 올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게 연대임금 정책이다. 이 방법이 공정하며, 결과적으로 정의롭다.”

인천공항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다. 왜 좋은 일자리인가? 왜 다른 일자리는 그럴 수 없는가? 공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펜으로 진입하는 안온한 세계와 나머지 허허벌판으로 구성된 이 체제는 지속 가능한가? 너무 많은 울타리 밖 동료 시민을 배제하지는 않는가? 정규직의 사전적 의미는 사측과 직접,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한 풀타임 노동자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파른 호봉상승과 후한 복리후생, 그리고 ‘간판’이자 ‘신분’이다. 이론상 모두에게 돌아가기 어렵다. 그러니까 문제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이 던진 질문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