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6월24일 오후 계원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1학기 등록금 납입증명서에 합계 407만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입학금 46만원, 수업료 375만원, 학생회비 12만원, 장학금 25만원. 올해 계원예술대학교에 입학한 김진영씨(19·가명)의 등록금 영수증이지만, 다른 대학의 영수증 명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캠퍼스 생활을 즐기느라 등록금 납입증명서를 유심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전례 없던 ‘비대면 학기’가 끝나고 김씨는 납입증명서를 한 부 출력했다. 대학생 등록금 반환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럴 거면 왜 대학에 왔나’라는 김씨의 의문은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이럴 거면 반수를 하지, 이럴 거면 9만원 내고 ‘유니스터디(이공계열 전공 인터넷 강의 업체)’를 듣지, 이럴 거면 휴학하고 자격증을 따지…. 온라인 비대면 강의로 대체된 첫 대학 생활이 김씨를 비롯한 20학번들에게 남긴 한탄이다.

4년제 대학의 85.5%가 1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했다. 학교 교정도 제대로 밟지 못한 데다 강의 출석을 확인하기 위한 과제만 급격히 늘어나 집과 카페에서 “또다시 수험생처럼” 보내는 시간만 늘었다. 시험 기간에는 서버 다운부터 부정행위 적발에 이르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터졌다. 기대했던 동아리와 학회 활동도 모두 중단되었다. 엉겁결에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 결국 15주를 채우고 종강했다.

실습수업마저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김씨는 집에서 석고와 페인팅 작업을 했다. 학교 실습실에서는 무료로 쓸 수 있는 레이저 커팅기, 철사, 톱 등을 새로 구입해야 했다. 작품에 대한 피드백도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지다 보니 아쉬웠다. 기대했던 대학 공부는 아니었다. 주변 동기 중에는 학교 앞 자취방을 계약했다가 파기하면서 금전적인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강의 질에 비해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었다는 ‘오래된 사실’이 비대면 학기로 선명해졌다. 문제는 한 학기의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 30여 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교육부를 상대로 등록금 반환 소송에 나섰다. 6월24일 기준으로 전국 72개 대학 2600여 명이 참여했다. 소송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질 낮은 온라인 강의로 인해 수업권이 침해되었고,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등록금을 반환해달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던 3월 중순과 하순, 대학은 교육기관 중 가장 먼저 운영을 재개했다. 대학이 수익자 부담 원칙을 따른다는 점은 초·중·고등학교와 다른 점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대학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이고 학생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된다. 등록금은 교육 서비스에 대한 비용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낸 돈만큼 수업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돌려달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온라인 강의를 내세운 사이버대학과 방송통신대학의 저렴한 학비가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2019년 발표된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2018년도 기준 국내 국공립대학의 연평균 등록금은 4886달러(약 589만원), 사립대학은 8760달러(약 1056만원)다. 사립대학 등록금의 경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70%에 이르는 대학 진학률을 고려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액의 등록금을 납부하고 대학에 다니는 셈이다.

교수들에게도 지난 1학기는 대학 교육의 방향을 묻는 시간이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과)는 지난 학기 수업 세 과목을 모두 비대면 강의로 진행했다. 고화질 카메라, 마이크, 태블릿 등 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구입했다. 그는 “이렇게 길게 갈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엉뚱한 질문도 나오고, 학생들이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말하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그런 공감각적인 정보들이 교육에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댓글로 피드백하는 비대면 수업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의견이 다른 학생들끼리 토론하다 집단지성이 모아져서 대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가 종종 있었다. 관용성을 배우는 기회는 대학 교육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었을까.”

비대면 강의는 열등하고, 대면 강의는 우등하다고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온라인은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다. 이미 이전부터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 등 비대면 강의가 있었는데, 강의의 질과 상관없이 열기만 하면 200명씩 들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학생들은 통학 부담이 사라지니 ‘윈윈’이었다.

다만 이번 학기의 경우 서로 보완이 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대체된 게 문제였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법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수업의 질이 나빠진 게 문제가 아니라 비교과 활동, 즉 공간으로서 대학의 의미가 ‘제로’가 된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인데, 그것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대학이 단순히 좁은 의미의 수업만 제공했던 건 아닌데, 이번 학기에는 그것을 완전히 놓쳤다. 이것은 사이버, 온라인, 비대면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대학으로서는 비대면 강의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였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국내 학생이 해외 대학 교환학생으로 수강하거나 반대로 중국인 유학생이 중국 현지에서 한국 대학의 강의를 수강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 시간을 조율할 수 있고, 다시 듣기가 가능한 점도 수강생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학가에서는 이번을 계기로 온라인 강의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당장 학생들은 다음 학기 휴학을 고려 중이다. 용인대 연극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손은정씨(23·가명)는 전공 여섯 과목 모두 비대면 수업으로 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젊은 연극제’에 올릴 무대 소품을 디자인하느라 바빴을 테지만 모든 학교 행사가 취소되면서 취업 계획도 어그러졌다. “자기소개서에 한 줄 쓸 스펙이고 포트폴리오 한 장 채울 기회거든요.” 남은 시간을 빼곡히 과제만 하면서 보냈음에도 오고 가는 피드백이 없다 보니 배운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취업을 앞두고 고뇌가 깊어졌다. 당장 다음 학기도 이렇게 다닐 바에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더 이득인 것 같아서 휴학할 예정이다.

문제의 해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교육부는 지난 6월17일 등록금 문제는 대학이 학생들과 협의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대학 측은 코로나19 방역과 온라인 강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재정 지출을 투입한 상황이라 반환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울 소재 4년제 사립대에서 근무하는 교직원 신영일씨(가명)는 “학생들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학교도 흑자가 난 게 아니다. 오히려 투입 비용이 더 커졌다”라고 말한다. 전기세나 시설관리비는 줄어들었지만 교내 식당, 카페, 숙박시설 등이 문을 닫아 수입이 줄었다. 고정비인 교수와 교직원 인건비도 그대로 든다.

정치권은 등록금 반환 이슈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6월16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대학의 원격수업 관련 쟁점과 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대학이 부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도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17일 “정부가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는 창구가 있고 이런 틀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등록금 반환을 정부의 재정으로 커버하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신 학생에게 등록금을 환불해주는 대학에 기존 예산의 용도 제한을 완화해주는 등 간접 지원을 통해 반환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건국대와 한성대 등이 전교생에 대한 ‘일부 반환’(건국대는 2학기 감면, 한성대는 장학금 형식) 절차를 거쳤다.

ⓒ연합뉴스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6월18일 등록금 반환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사립대학은 구조조정에 나설 것

전문가들은 등록금 반환 책임을 대학에게만 묻게 되었을 때 사립대학의 구조조정을 앞당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은 평균 50~60%이다. 불안한 재정 구조를 만든 데는 등록금 동결, 재정지원 사업, 대학 구조조정 등 여러 형태로 정부가 개입해온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에 비해 고등교육에 투자된 공적 자금은 크지 않다.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고등교육 단계에서 정부 재원 비율은 0.7%로 OECD 평균(0.9%)보다 낮았고, 민간 재원 비율은 1.1%로 OECD 평균(0.5%)보다 높았다.

강명숙 배재대 교수(교육학과)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왜곡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금 사립대 재정 구조에서 반환 책임을 물게 되면 정작 다른 곳에서 피해를 보는 구성원들이 생긴다. 실제로 대학 내 비정규직 등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내몰리는 등 사회의 약한 고리들이 부러지고 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가능하다.

모두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 반환이 국가 재정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가? 대학생의 고통을 분담하는 순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이 생길 우려는 없는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 교육이 담당했던 기능을 개개인의 인적 자본을 늘리는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사회적 자산을 늘리는 일로 볼 것인가?

어떤 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해결 방식도 달라진다. 대학은 사유재인가, 공공재인가? 대학 등록금 반환 요구를 풀기 위해 특히 세심하게 논의해야 할 의제다.

계원예대 신입생 김씨가 지난 학기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실습실에서 야간 작업을 했던 날이다. 서로의 작품을 ‘실제로’ 보며 의견을 나눴다. 평범하지만 낯선 순간이었다. 비대면 학기를 지낸 교수들은 대학 교육에 대해 ‘오답할 자유가 있는 공간’ ‘마지막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라고 말했다. 비대면 학기가 불러온 여러 논란들은 곧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건드린다. 대학이 ‘지식 전달’ 외에 사회에서 담당했던 역할은 무엇이었나. 공간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중단되었을 때 존재 이유를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에 담겨 있는 또 다른 질문이기도 하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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