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할머니가 집에 왔다. 일 때문에 서울로 향하는 어머니에게 불쑥 “나도 따라가겠다”며 짐을 챙기셨다고 한다. 누구도 권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서울에 가겠다고 선언하다니. 생전 처음 있는 일에 어머니도, 나도, 아버지도 내심 어리둥절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감히 머릿속을 맴돌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침구를 정리하다 문득, 코로나19로 인해 당신이 바깥에 나가지 못한 지 석 달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로나19 국내 발생 시점인 2월 말부터 전국의 노인복지관과 노인정은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에는 면회금지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바이러스 고위험군인 고령층에게 일어날 수 있는 집단감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의 전체 환자 수 대비 사망자 수 비율은 연령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였다. 고3부터 시작한 순차 등교 개학이 초등학교까지 내려오고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해제하는 동안에도 노인들을 위한 공간은 열리지 않았다. 6월15일 노인 학대 예방의 날에도 ‘서울시가 룸살롱, 단란주점 등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을 해제하고 집합 제한으로 완화한다’는 소식만 날아들었을 뿐이다.

코로나19 이전 매일 노인정에 가던 할머니는 그곳이 폐쇄되자 갈 곳을 잃었다. 곧 아흔인 당신이 갈 수 있고 가도 되는 곳이 노인정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로 만날 친구도 없다. 할머니의 그 많던 친구들은 몇 년 전 모두 세상을 떠났거나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이제 쉬지 않고는 스무 걸음을 채 옮기기 어려운 몸도, 당신을 주저하게 했다.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지하철을 타도 노약자석이 아닌 곳에는 앉지 않았다. 카페니 베이커리니 옷 가게니 하는 곳들 모두 젊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며 꺼렸고, 웬만한 음식점도 이렇게 늙은 사람 받길 싫어한다며 혼자서는 들어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오직 집에 있었다. 불쑥 나를 보러 오겠다고 결정하기 전까지 할머니는 4월달이면 풀린다던 잠정조치가 정말로 해제되길 하염없이 기다리며 〈미스터 트롯〉을 보고 또 봤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미스터 트롯〉은 봐도 봐도 좋았다.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알 턱도 없고, 컴퓨터로 파일을 다운받아 보는 법도 모르는 당신은 오직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대로 〈미스터 트롯〉이 나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이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OECD 1위인 나라

코로나 시대 고립된 노인들의 우울증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는 전혀 놀랍지 않다. 아들과 며느리가 출근한 뒤 12시간 동안 혼자 집에서 〈미스터 트롯〉을 보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노인정에 매일 갔던 할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매번 화가 났다. 고령 노인들의 사회적 관계를 모두 단절하는 방식으로 재난을 컨트롤했다면, 단절 이후의 삶은 왜 들여다보지 않는가. 고립된 노인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왜 〈미스터 트롯〉 하나 정도인가. 할머니에게 주어진 최선은 왜 항상 할머니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인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1위인 나라다.

한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 85.7세를 떠올린다. 최현숙 작가는 알츠하이머로 삶의 끝자락에 선 어머니를 기록한 책 〈작별 일기〉(후마니타스, 2019)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그녀가 너무 어렵지 않게 죽음에 닿는 것이다. 이미 많이 어려워졌지만 더는 어렵지 않기를,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끼며 존재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노인을, 나이 듦을 존중하지 않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끼며 살지 않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일 것이다. 노인의 삶이 살아 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자명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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