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지난 1월 취임한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 윤혜미 원장.

달력을 되넘겨 보자. 속절없이 지나간 봄날 사이에 어린이날(5월5일)이 있었다. 입양의 날(5월11일), 가정위탁의 날(5월22일), 실종아동의 날(5월25일)도 있었다. 실종아동의 날은 장기 실종 아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올해 첫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1년 중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몇 안 되는 기념일이 5월에 모여 있었다. 이 귀한 날들에 오프라인 기념식 한번 못 치르고 2020년 봄은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코로나19는 모두에게 고난이지만 따지고 보면 어린이들이 가장 억울하다. 태어나 보니 인류 역사의 한 장을 넘기는 감염병이 창궐해 있었고, 학교 갈 나이에 학교가 문을 닫아 배움을 잃었다. 공원도 금지, 놀이터도 금지, 마스크 벗은 채 친구 손잡고 한껏 달려보는 일조차 눈치를 살피며 자라나야 하는 시절이다. 그 나이에 해보아야 하고 그때 해야 재미있을 것들을 누릴 기회를 상당 부분 빼앗겼고, 어린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때 태어난 세대처럼 지금 아이들은 악조건 하나를 유년기에 짊어지고 인생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새로운 악조건이 생겼다고 오래된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아이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워낼 책임은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전가된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주어져 있던 그 울타리가 애초 따스하고 안전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일어날 것이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건들이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날 때에야 사람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비로소 기자도 기사를 쓰고 독자도 그 기사를 선택해 읽는 수고를 한다.

늘 그랬지만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관심은 잠시 반짝이다가 아동의 삶 전체에 관한 관심과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이가 어떻게 학대를 당했고 그 끔찍한 일을 행한 가해자가 어떻게 처벌받는지를 알고 분노하는 일은 사회가 한 아이의 삶을 구해내는 과정 중 초반부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영화관 속 관객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더 중요한 중반부와 후반부가 남았다. 살아남은 아이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우리 사회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이야기다.

아동보호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엮고 발전시켜나갈 책무를 안고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출범했다. 위기 아동의 삶을 연속적이고 거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아동보호 체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설립위원회를 꾸리고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는 반년여 과정을 거쳤다. 출범 이후 중앙입양원, 아동자립지원단, 드림스타트사업지원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지역아동센터중앙지원단,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디딤씨앗지원사업단 등 분절되고 동떨어져 있던 8개 위기아동 지원기관들이 차례차례 하나의 체계 아래 통합됐다.

학대, 실종, 입양 같은 위기 아동 지원을 넘어, 우리나라 모든 어린이의 삶을 ‘아동권리’라는 가치 아래 재구성하기 위한 긴 여정 앞에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도 던져졌다. 그 험난하고 난해한 길에 임하는 각오를 지난 1월 취임한 아동권리보장원 윤혜미 원장(61)에게 들어봤다. 인터뷰는 6월16일 서울 수송동 아동권리보장원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연합뉴스5월12일 서울 용산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광동 새마을협의회’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출범 이후 어떤 일에 주력해왔나?

기존 8개 기관에서 나뉘어 제공되던 아동권리 정책들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한 아동이 커가는 동안 필요한 서비스들로 연결해나가는 일을 해오고 있다. 가장 큰 일은 서비스의 누락과 중복을 방지하기 위한 ‘클리닝’ 작업이다. 아동 관련 여러 분야에서 제각각 흩어져 있던 데이터베이스를 한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 종사자들 재교육도 중요한 부분이다. 취합할 것과 심화할 것을 나눠서 다양한 수준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올해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아동 서비스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대면 서비스, 가정방문 서비스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가장 조명받는 ‘돌봄’, 그리고 요즘 많은 아이들이 물리적·시간적·정서적으로 기회를 빼앗긴 ‘놀이’ 문제에도 집중해나갈 계획이다. 2022년 어린이날 100주년을 앞두고 〈아동권리 100년사〉 편찬 작업도 시작했다.

아동의 놀이 환경은 원래도 열악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더 제약이 많아졌다.

유아기부터 놀이는 사설 놀이학교에 가서 예약된 시간 동안 선생님을 통해 하는 걸로 배운 아이들은 바닷가에 풀어놓아도 조금 있다가 “할 일 없으니 빨리 집에 가자”라고 한다. 비극적인 일이다.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의 놀이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게 먼저 필요하다. 창의력 계발, 지능 발달 등의 과업을 위해 놀이를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로 밖에 못 나가는 상황에서는 온라인으로 혹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하고 전달하는 일이 시급하다.

놀이뿐 아니라 아동 삶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코로나19는 아동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동기는 사회관계를 발달시키는 중요한 시기다. 친구를 만들고 타협, 협동, 양보도 배워야 할 때다. 코로나19 이후 석 달 반 동안 이런 기회가 차단됐다. 학교에 가더라도 띄엄띄엄 앉고 가림막으로 가리고 점심시간엔 벽 보고 밥을 먹어야 한다. 팀 스포츠도 어렵다. 한창 친구들과 몸으로 부대끼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시기에 그것이 어렵게 됐다.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삶의 한 뭉텅이를 뺏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협동, 양보, 리더십 이런 것들을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격차 문제도 걱정된다. 공공도서관, 박물관, 복지관 등 방과후 아동이 이용하던 많은 공공기관이 문을 닫았다. 문화적·사회적 자본이 더 벌어질 것이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학습 격차가 발생한다. 급식 지원이 되지 않아 건강 격차도 우려된다. 공평한 출발선을 만들기 위해 보육 등 여러 장치를 간신히 갖춰놓았는데 사회가 변하는 걸 제도가 따라가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시사IN 이명익서울 용산구 ‘용산 꿈나무종합타운’ 내 장난감 대여소가 사전예약제로 재개장했다.

발생할 여러 문제 가운데 특히 우리 사회가 집중해서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일단 아동의 안전보장이 가장 중요하다. 감염병으로부터의 안전과 폭력으로부터의 안전. 방임되지 않도록 살피기도 해야 한다. 정서적 안전도 중요하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정신보건 리터러시(literacy)가 좀 낮았다. 코로나19가 많은 사람들에게 경미한 형태의 정신보건 위기 상황들을 많이 가져왔다. 지금 어른들도 지쳐가지 않나. 아이들도 장기간의 고립 상태로 정서가 위협받고 있다. 앞으로 아동의 심리정서적 안전 문제가 굉장히 큰 이슈가 될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 정서나 심리 안정 관련 프로그램이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점점 비중이 커질 것이다.

아이들의 학습, 문화, 사회관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찾아나가야 한다. 그간 비대면 방식으로만 활동할 수 있던 여러 아동 지원 기관들이 차츰 조심스럽게 대면 서비스를 재개하고 있다. 이런 곳들은 대개 인구밀도가 높아서 감염병 예방에 어려움이 많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좀 더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기관들을 정비하고 인프라 투자도 해야 한다.

‘집에서 머무르기’가 권장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위기 아동들에게 특히 더 가혹한 시간일 것 같다.

5월 초 아동복지시설 현장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어떤 서비스를 해왔고 어려움은 무엇인지 들어봤는데, 우리가 모두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시설이 커서 마당도 있고 놀이터도 있으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 그야말로 아이들이 온종일 시설에 갇혀 지내야 했다. 한 보육원 종사자는 학교도 못 보내고 외부 활동도 못 나간 채 25명 정도의 아이들을 갇힌 공간에서 장기간 데리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러 아동보호시설 중 공동생활 가정 형태도 있다. 7명까지 보호할 수 있는데 사실 가장 지원이 열악한 곳이다. 여기 센터장은 아이들의 급식 어려움을 토로했다. 원래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에서 해결돼오던 아이들 식사를 몇 달 동안 온전히 이 시설에서 감당해내야 했다는 것이다. 기존 지원금이 늘어난 건 아닌데 아이들 끼니 수는 늘어나고, 후원이나 기부 들어온 것으로 어떻게 때우기는 했으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어서 애가 탔다고 한다.

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도시락을 싸서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배달해줬다. 문 앞에 두고 나오면서 톡으로 “도시락 놓고 왔다” 하면 “선생님 너무 보고 싶어요. 얘기 좀 하다 가시면 안 돼요?” 이런 답장들이 온다고 했다. 그만큼 아이들이 사회적 관계에 목말라 있었던 거다. 종사자의 안전은 아동 안전과도 이어지는데 방역물품 지원도 잘 안 됐다. 최근에는 마스크 기부 등이 꽤 들어오는데 정말 마스크가 귀했던 시절에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런 네트워크에서조차 제외된 아이들도 있다. 다문화·이주민 가정 아동, 미등록 아동 등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파악조차 불가해서 걱정이 많이 된다. 이들에겐 긴급아동수당조차 지급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아동권리협약 가입국으로서 모든 아동에 대한 비차별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차별하게 됐다.

ⓒ연합뉴스한 장애 아동 공동생활 가정. 코로나19 방역물품이 비치되어 있다.

최근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또다시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예전의 사건들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엇에 집중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까?

무슨 대책을 낸들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 항상 사후 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길을 찾자면, 천안 아동 사건에서는 연계 체계의 문제를 좀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현이 사건 이후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을 도입하면서 경찰·검찰·법원이 들어와 좀 더 엄격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고, 협조 체계와 관련해 세부적 개선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이것들이 연계돼 서비스하는 과정에서 정작 아동에 대한 연결은 실종되었던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병원은 병원 나름대로, 경찰은 경찰 나름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아보전대로 자기들 프로토콜을 지켰다. 병원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관할 경찰서도 출동을 결정하려고 전화했다. 경찰은 출동 조건이 현장성과 긴급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아이는 현장에 없었고 병원을 떠났다. 그래서 출동하지 않았고 지역 아보전은 경찰로부터 그런 정보를 받고 응급할 것이라 생각을 덜했던 것 같다. 아보전이 경찰에 동행 조사 신청을 했지만 똑같은 이유인 현장성, 지금 아이를 때리고 있다고 하면 나가겠는데 이미 신고가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난 상태에서 나가는 건 규칙에 어긋난다며 거절당했다. 결국 아보전 단독으로 나갔는데 상담원들이 민간인이다 보니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없는 형편에서 “집에 영아가 있고 코로나19로 외부인 출입이 어렵다. 다음에 와라”라는 부모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4~ 5일이 흘러 아이를 만났을 땐 이미 부모와 말을 맞추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처는 다 아물었다.

이때 “집에 있을래? 딴 곳으로 갈래?” 물어봤다고 비난을 많이 받는데, 사실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다. 아이를 억지로 떼놓을 순 없는 일이다. 물론 아이 뜻대로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 여러 가지 심리적 트라우마도 고려해야 한다. 부모가 “잘못했다, 잘하겠다, 상담받겠다”라고 하고 아이도 “엄마 아빠 좋다, 딴 데 안 가겠다” 하는 정황을 그때 당시 종합적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가장 아쉬운 게 현장성이다. 아이가 병원에 있을 때 만약 보게 되었더라면, 경찰이 아보전에 연락했을 때 바로 아이를 볼 수 있었더라면 다른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한 시간 혹은 하루를 지체하는 게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들이 긴밀하게 업무 프로세스를 조정해야 할 것 같다.

ⓒ연합뉴스6월5일 충남 천안 시민들이 추모 공간에서 여행용 가방에 감금되었다가 숨진 아이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올 10월부터 지자체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맡으면서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민간인 신분인 아보전 상담원 대신 공무원이 조사를 나가게 되면 ‘공공성이 회복될 것이다’ ‘공권력이 생길 것이다’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사실 부모들이 문을 안 열어주면 도리가 없다. 사회와 부모들의 근본적 태도 변화 없이는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공권력도 남이 인정해줘야 공권력이 된다. 밑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아동학대를 보는 전문가와 경찰의 시각도 아직 많이 다르다. 경찰은 늘 범죄를 다루다 보니 피해자와 범죄자가 분명히 있고 피해 사실이 분명해야 한다. 아버지한테 뺨 한두 대를 맞아 자국이 났을 때 이걸 범죄로 볼 것인가 경찰은 늘 고민한다. 아보전 상담원에게는 아동학대가 분명하다. 이런 부분에 동의와 협조가 안 되면 매우 어렵다.

또한 현장에 오는 경찰은 주로 지구대에 근무하면서 3교대 근무를 많이 한다. 연락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 경찰과의 협업체계 구축 등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이제 변하겠네’ 기대했지만 실제 현장에 가서 보면 “3교대라 근무시간 지났다, 8시간 뒤에 전화해라” 이런 답답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식 수사가 시작되면 또 현장 출동한 분이 아니라 수사계가 맡는다. 거기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아보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한계가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세밀한 불협화음인데, 이것들이 결과적으로는 쌓여서 문제를 일으킨다.

아동학대 발생 이후의 사후 관리, 지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저조하다.

대중의 관심은 비극적 사건의 세세한 부분, 그리고 ‘가해자가 얼마나 정의롭게 제대로 처벌을 받느냐’ 여기까지다. 그 이후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관심이 적다.

가정 내 학대 피해 아동을 부모와 분리하면 대개 보낼 수 있는 곳이 7명씩 보호하는 피해아동쉼터이다. 최대 6개월, 한 번 연장하면 1년까지만 머무를 수 있다. 뒤에 또 신규 발생하는 피해 아동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이후에도 원가정 복귀가 어려우면 결국 보육원 같은 아동 생활시설로 가게 된다.

피해 아동이 2~3세 미만의 영아일 경우는 가정형 보호가 필요하다. 학대 피해 탓에 행동, 심리적 증상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적절한 교육을 받은 전문 위탁가정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전문 위탁가정이 정말 별로 없다. 자기 아이도 기르기 힘든 시절에 사회적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 훈련받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대가를 받으면서 좋은 서비스를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학대 피해 아동이 쉼터를 거쳐 보육원 같은 아동보호시설로 가는 순간 규정상 아보전은 사례를 종결하게 된다. “감옥에 들어간 가해 부모가 갑자기 모범수로 일찍 나오거나 해서 아이를 데리러 오면 꼭 연락해달라” 정도 부탁을 해놓지만 아이의 전반적 생활에 대해 관여할 권한은 없다. 결국 아이의 이력을 추적하면서 도와주는 일은 지자체의 몫이다. 지역의 사회복지 자원을 활용해 추적하고 서비스들을 연결해야 한다.

학대 피해 아동의 ‘원가정 복귀’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정 내 학대 피해 아동을 왜 부모와 즉각 분리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많이 듣는다. 물론 위험하면 다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판단이 어려운 경우 또 한편 드는 생각은 이거다. ‘이 아이를 어디로 보내야 하지?’ 많은 전문가들이 부모와의 분리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사건 발생 당시 분리 보호된 아이들의 원가정 복귀 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10명 중 7명이 결국 집에 못 돌아간다. 사회적 보호라고 말은 좋게 하지만, 18세까지 여러 시설과 위탁가정을 떠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마음을 많이 다친다. 사회적으로 보호받는 아이들 삶이 어떤지 좀 더 살펴봐야 한다. 가정을 치유하고 다시 데려다 잘 키울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언론의 보도 태도에는 문제가 없나?

요즘 며칠 뉴스들을 보며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프라이팬, 쇠꼬챙이를 어떻게 했다, 어떻게 묶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왜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왜 자꾸 내보내는가. 시청률 혹은 구독률 때문에 선정적이고 흥미를 자아내는 보도 방식을 택하는 것 같다. 대신 ‘어디에서 잘될 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못 되었을까’ 이런 것들은 보도하지 않는다. 같이 개선 방법을 찾아보는 게 아니라 비난만 한다. 비난만 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면, 누군가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 처벌받는 사람은 꼬리, 가장 약한 사람이다. 그러면 시스템은 안 변한다. 냉정한 보도, 분석 보도로 시스템이 변할 수 있게 제안해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학에서 쓴 박사논문을 심사할 기회가 있었다. 5년간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 및 그것을 보도하는 각 나라의 보도 태도를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은 사건 중심이었다. 사건의 상세 묘사, 숫자 이런 것들을 보도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사건은 간략하게 보도하고 시스템 어디에서 이게 걸렸을지 분석하고 개선책을 자꾸 내놓았다.

언론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듯 조망하며 비판만 하면 결국 아이에게 해롭다.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너무 조명받다 보니 아보전 업무가 마비됐다. 사방에서 ‘내가 입양해주마’ 연락이 온다고 한다는데, 아이가 아홉 살이라 스스로 의견이 있을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조용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시사IN 신선영6월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포스트 코로나와 아동의 삶:도전과 대응’ 토론회가 열렸다.

아동권리보장원이 맡고 있는 다른 아동권리 사업들, 특히 실종·입양 아동에 관한 프로그램들은 코로나19 이후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나?

입양의 경우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줄었을 가능성은 있다. 현장에서 당장 어려움에 부닥친 건 입양 부모의 예비교육이다. 이제껏 미뤄오다가 ‘결국은 온라인으로 대체해야 하나’ 고심 중이다. 대면 교육이 상당히 중요하고 서로 물어볼 것도 많은데, 아쉬운 부분이다. 또 친부모를 찾으러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성인 입양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이분들의 입국이 모두 막혔다. 이미 들어와 있던 입양인 가운데 그래도 두 분은 이런 가운데에서도 친부모를 찾았다. 해외에서 입양인 부모 찾기 지원 사업을 알리는 홍보도 계속하고 있고 가끔 연락이 오기도 한다. 해외 입양인 단체에 마스크를 보내기도 했다.

실종 아동을 찾는 활동도 주춤했다. 특히 아이를 잃어버린 지 20년, 30년이 된 가정이 다 아프다. 정신적·신체적·경제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현수막 제작 등 비용을 지원하는 한편 가족들 심리상담을 진행해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참여가 제한됐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장기 실종 아동의 현재 모습을 재현해내는 작업은 카이스트와 계속 해나가고 있다. 현수막으로도 걸고 버스 배너에도 붙였다. 실제 한 홈쇼핑 간행물에 실린 홍보물을 보고 ‘어? 이거 내 얼굴인데?’ 하며 부모를 찾은 경우도 있었다.

드디어 민법에서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

이번 두 아동학대 사건도 가해 부모가 자녀를 훈육 목적으로 체벌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고, 실제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민법상 징계권 때문에 형량이 낮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다’는 말을 ‘훈육=체벌’로 오해한다. 체벌은 훈육이 아니라 학대다. 몸에 고통을 가해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군대와 학교에서도 없애자고 하는 문화를 가정에서 어린아이에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게 도움이 될 거야’라며 매를 들지만, 사실은 손쉬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아동을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권리를 온전히 지닌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대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아동을 존중해야 한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 의견을 물어보고, 항복을 받아내는 대신 설득하고, 복종을 요구하지 말고 설명하고, 그래서 이해를 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늘 자기 경험에 비춰 이야기하지만 세상은 광속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돼 강요하는 것이 실제 최선이 아닐 수 있다.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 아이가 어리고 연약하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들이 주체로서 존중받으며 자기 가능성을 더 생각해보고, 제한이 없는 사고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줄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다. 작게는 소풍 장소를 투표하거나 교복 디자인을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일처럼, 스스로 의사결정하고 그게 일으키는 변화와 영향을 배워야 성인이 되어서도 주도적인 사회 구성원이 된다. 어릴 때부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받는 경험이 결국 책임 있는 시민을 만들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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