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학교는 원래 위기였다. 입시 위주의 교육활동, 분절된 행정 체계, 학교 내 구성원 간 소통 부재, 차별과 소외…. 갈등이 번지고 삐걱대던 와중에 더 큰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다.

 

이 위기 속에서 주로 나오는 것은 교육부, 교육청, 정규직 교원들의 목소리다. 드러나진 않지만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해온 교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잘 들리지 않는다. 조리사, 돌봄전담사, 교무실무사, 방과후 강사, 교육복지사, 사서, 시설관리사, 통학차량 운전사, 전산행정사…. 학교 내 직군은 80개 이상이라는데, 우리는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이외의 사람들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 위기 앞에서 학습, 배움, 돌봄과 방역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는 정규직 교사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급식 노동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아이들에게 양질의 밥을 먹일 수 있을까’를, 돌봄전담사는 ‘어떻게 하면 감염 위험을 줄이며 한 아이 한 아이 살뜰하게 보살필 수 있을까’를, 방과후 강사는 ‘어떻게 하면 방역을 유지하면서 좀 더 다양한 특기적성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6월9일 늦은 오후, 학교에서 퇴근하거나 출근하지 못한 5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사IN〉 편집국에 모여 ‘교육 주체’로서 갖는 고민을 함께 나눴다.

각자 학교에서 맡은 일과 최근 상황을 알려달라.

임종혜:경기도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돌봄교실을 맡고 있는 초등 돌봄전담사다. 오후 1시 출근해서 5시 퇴근하는 시간제 근무인데, 코로나19 이후 돌봄 수요가 급증해 그 시간 안에 업무를 모두 처리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 이 일을 시작한 이래 출근하기 싫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월요일 아침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너무 힘들다.

김경희:15년째 경기도, 서울 등 초등학교에 역사·독서논술 수업을 나가던 방과후 강사다. 전국방과후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이 올스톱되면서 강사들은 3~4개월간 수입이 0원을 기록하고 있다. 개학이 다섯 번 미뤄지는 동안 다른 일도 못하고 ‘스탠바이’ 해야 했다. 그래서 강사들이 제일 많이 했던 일이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였다.

한정희:서울 노원구의 초등학교에서 ‘지역사회 교육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보통 ‘교육복지사’로 불리는 우리 직군은 교육 취약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은 유·초·중학교에 배치돼 학교, 가정, 지역과 협력한 학생 맞춤형 교육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코로나19로 학기 초 학생 면담 등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전화 상담 및 ‘맞춤형 꾸러미 지원’ 사업에 집중했다.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아이가 건강한지, 집에 소독제와 마스크가 있는지, 아이는 누가 돌보는지 등을 묻고 부족한 물품을 꾸러미로 꾸려 전달한다.

유혜진:급식실 조리사로 일한다. 사립고등학교, 공립중학교를 거쳐 지금은 서울 관악구 공립유치원에서 근무한다. 한동안 개학이 연기되면서 ‘방중 비근무자(방학 중 근무하지 않고 임금도 나오지 않는 무기계약직)’인 조리사 직군은 계속 출근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출근투쟁’ 끝에 학교에 나간 조리사들은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풀을 뽑기도 하고 강당 청소도 하고 커튼도 빨고 천장도 닦았다. 그러다가 등교 개학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갑자기 많이 오면서 또 정신이 없어졌다. 고유 업무인 조리, 설거지, 급식실 청소 외에 방역업무도 더해졌다. 가림막부터 식탁, 바닥 등 아이들 손과 발이 닿는 데는 모두 닦고 소독하고 있다.

윤미애:서울 관악구 한 중학교에서 13년째 교무실무사로 일하고 있다. 교무실무사는 학교의 모든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사람이다. 학교가 돌아가는 전반을 다 꿰고 앉아 있어야 한다. 학교 대표전화가 제 자리로 걸려온다. 모든 문의, 항의, 요청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은 정말 어려웠다. 개학이 연기될지 말지 학교에 교육부 지침이 내려오기 전에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소식이 먼저 나갔다. 그럼 학부모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우리 애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직 지침이 안 나와서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시사IN 조남진6월9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5명이 〈시사IN〉 편집국에 모였다. 맨 왼쪽부터 김경희 방과후 강사, 임종혜 초등 돌봄전담사, 유혜진 조리사, 윤미애 교무실무사, 한정희 교육복지사.

학교가 문을 닫았다고 알려진 기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윤미애:우리 직군은 원래 방학 때도 출근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안전을 위해 대다수 교사들에게 재택근무 권고가 내려졌을 때도 계속 학교에 나가야 했다. 예전 포항에서 지진 났을 때도 교무실무사들은 금이 간 학교 건물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비상연락 문자를 돌려야 하는 임무를 받았다. 무서워서 ‘같이 들어가주면 안 되느냐’ 하니까 혼자 들어가라고 했단다. 교무실무사들은 이런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임종혜:뉴스에서 학교 긴급돌봄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그 정책에 대해 우리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알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도 어떻게 하라는 지침과 공문이 온 게 없었다. 나중에 나온 가이드라인을 보니 현실과 너무나 맞지 않았다. 돌봄전담사 수와 근무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전교생을 대상으로 원하는 만큼 받아주라고 했다. 아침부터 최소 오후 5~6시까지 돌봄교실을 열어야 하는데 기존 시간제 근무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학교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아서 결국 돌봄전담사들끼리 하루하루 교대하고 초과근무를 하면서 버텨나갔다.

김경희: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다. 우리는 일하고 싶어도 아예 일을 못했다. 방과후 강사들이 4월이 넘어가니 카드 돌려막기도 안 되니까 대출이라도 받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은행에 가서 대출 상담을 해도 방과후 강사 신용으로는 불가능하다더라. 사정사정을 해서 서울시교육청과 부산시교육청이 한도 300만원이나 500만원짜리 대출 상품을 하나씩 만들어줬다. 근데 학교장 직인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자존심이 상했다. 300만원 때문에 방과후 수업 계약을 맺은 학교에 가서 대출할 수 있게 도장 찍어달라고 서류를 내미는 일이 쉽지 않다.

어떤 직군은 일이 없어서 문제, 어떤 곳은 일이 많아서 문제였다. 특히 학교에서 수요가 가장 폭증한 곳이 돌봄이었다. 학교 돌봄은 잘 굴러갔나?

임종혜:계속 ‘땜빵’이었다. 원격 수업이 시작되면서 오전엔 원격 학습 지원, 점심은 급식 지도, 오후엔 기존 돌봄교실을 운영할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 단위마다 지원 인력이 계속 바뀌고 서로 소통도 되지 않아 중간중간 공백이 자주 발생했다. 저는 오후 1시 출근이다.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안정될 때까지 1시간 일찍 출근하겠다’고 하니, 그건 안 된다고 하더라. 돌봄전담사들이 근무시간 연장을 요구해왔던 것 때문에 선례를 안 남기려고 한 건지…. 결국 그 시간에 돌봄 인력으로 구한 사람이 특수반 (교무)실무사 선생님이었다.

윤미애:실제로 수많은 학교 사무직 선생님들을 향해 ‘한 시간만 돌봄을 때워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당연히 도와드리면 좋지만 사실 우리 직군이 그동안 학생들과 직접 대면해서 일해온 것이 아니라서 부담이 컸다. ‘그냥 하시면 돼요’라고 하는데, 막상 한 시간이라도 아이들을 맡은 사무직들은 너무 걱정이 되는 거다.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고.

임종혜:돌봄교실에선 거리두기도 잘 지켜지지 못했다. 우리도 오늘에서야 분반을 했다. 그간 많은 아이들이 좁은 교실에 모여 지냈다. 정규수업은 한 학급 학생을 앞 번호 뒤 번호로 나누어서 하루에 10~11명씩 나오게 한다는데, 돌봄에는 한 공간에 20명이 우글거렸다. 학부모들도 이걸 알지만 맡길 데가 없으니 맡긴다. 너무 불안했다. 지난주에야 10명 내외로 분반하라고 공문이 왔다. 음악실 하나를 더 배정했다. 분반했으니 돌봄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자격요건이 너무 허술하더라. 새로 오신 분들도 학교에서 아이들 돌본 경험이 없으니 뭘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냥 자리에 앉혀놓고만 있다. 동영상을 틀어주거나.
정말 돌봄이 절실한 학부모님들이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보내주신다. 처음에는 하루에 몇 번이고 소독하며 방역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요즘에는 일에 치이다 보니 솔직히 이전만큼 못한다.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제 스스로도 찔리고 애들에게도 괜히 미안하다.

ⓒ연합뉴스5월25일 경기도 수원시 매여울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소독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모두가 힘드니 학교 구성원들끼리 서로 상처 주는 일도 생길 것 같다.

윤미애:아침에 발열 체크, 점심시간엔 수저와 식판 나눠주기 등을 교사와 공무직(교사와 행정직 공무원을 제외한 학교 내 근로자)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런데 어떻게 순번을 짜는지, 공무직이 열 번 돌 때 교사는 다섯 번을 도는 식이다. 수업 준비 등으로 힘든 것도 이해하지만 공무직들도 기존 일이 줄어든 건 아니라서 다소 섭섭한 게 사실이다.

유혜진:방역을 도와주는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조리사들끼리 “잘됐다, 가림막이라도 닦아달라 부탁하자”라고 했는데 첫날 정장을 입고 출근하신 거다. 전직 간호사라고 하셨다. 발열 체크만 하시더라. 유치원에 만 3세 아이들 간식 먹이고 뒷정리 등을 도와주는 보조 선생님들이 계신다.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어서 아이들이 ‘하모니 하모니’라고 부르는 바람에 ‘하모니 선생님’이란 명칭을 갖게 되셨다. 결국 추가 방역업무가 그 하모니 선생님께 가게 됐다. 조리사들이 일을 끝내고 앉아서 밥을 먹는데 하모니 선생님이 오셔서 가림막을 닦더라. 마음이 불편했다. 일어나서 도와드리고 싶지만 한번 그렇게 되면 또 영영 우리 일이 될 것 같았다. 꾹 참고 밥을 먹었다. 며칠 지난 후 이분이 마음이 상하셔서 출근을 안 했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영양사가 그 일을 맡았다. 서로가 미안하면서 또 상처를 주고 그런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임종혜:돌봄교실 안에서도 시간제 선생님, 전일제 선생님들끼리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서로 일을 떠넘기고 배려가 부족하다며 싸우는 것이다.

김경희:한마디로 ‘을들의 전쟁’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학교 안에서 겪는 소외감과 긴장이 컸을 것 같다.

윤미애:그래도 아이들과 직접 연관된 돌봄, 급식 같은 직군에는 그나마 사회가 관심을 가져준다. 우리는 관심 밖의 사람들이다. 학교 사무직이 느끼는 박탈감이 있다. 학생 전출입 관리, 학생 생활기록부 관리 등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학교에 우리 같은 사람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알더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임종혜:돌봄도 중요하다고 말은 하는데 우리끼리 표현으로 ‘외딴섬’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도 관심이 없다. 원래 돌봄업무를 관리하는 정규직 교원에게 승진 가산점이 부여됐는데 그게 폐지됐다고 한다. 골치 아프고 민원도 많으니 서로 안 맡으려 한다. 담당 관리자 선생님이 이번에 “솔직히 나도 이 돌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 돌봄전담사들 근무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지도 늘 헷갈려하신다. 담당자조차 이럴진대 나머지 선생님들은 오죽할까.

김경희:방과후 강사들은 ‘복도를 서성대는 유령’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수업 30분 전에 미리 학교에 가 있어야 하는데 따로 대기할 공간이 없으니 각종 준비물을 들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아이들 말고는 아는 체도 안 한다. 저는 방과후 과목이 논술이라 복사를 할 일이 많다. 학교 시설사용료 등을 빼고 강사비를 받기 때문에 당연히 교무실에서 복사할 자격이 된다. 그러나 정작 교무실에선 너무 눈치가 보이더라고. 종이는 왜 자꾸 걸리고 오류가 나던지. 학교 프린터 사용을 못하게 하는 곳도 많다. 어떤 학교에서는 방과후 강사들에게 아예 쓰레기봉투나 보드 마커를 사오라고 하기도 한다. 방과후 강사는 외부인이니 주차도 하지 마라, 엘리베이터도 타지 마라는 곳도 있다. 방과후 학생이 사용한 화장실은 방과후 강사가 청소하라고 해서 수업 끝날 때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사진으로 인증샷을 보내야 하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모아 3월에 언론에 터뜨리려고 했는데 그만 코로나가 먼저 터져버렸다(웃음).

ⓒ연합뉴스3월5일 ‘교육공무직원 복무차별 중단 및 돌봄 안전대책 마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코로나19가 아이들의 격차도 더 벌인다고 한다. 실제 학교에서 체감하나?

한정희:학생들의 학습 격차가 심각하다. 어느 학부모는 아이가 느린 편이라 원래도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했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는 도저히 학습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아이 능력에 맞춘 개별지도가 되기 힘든 환경을 이해하면서도 어떻게 좀 방법이 없을까 묻더라. 경계성으로 지능이 낮은 아이 어머니는 아이와 온라인 수업이니 학습 꾸러미니 함께 해보려다 아이가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분노를 표출해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왔다. 원래 교육복지 프로그램으로 학생 집으로 방문하던 국어, 수학, 멘토링 선생님이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가정방문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한 어머니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아예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아이가 알레르기, 비염, 천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는데, 예전처럼 주 5일 정상 등교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학교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 아이가 학교에서 감염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옮길까 봐 걱정되어 등교시키지 않는다는 가정도 있다. 불안한 건 이해되지만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다양하고 풍성한 배움과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정희:6학년부터 설문 면담과 간식 이벤트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등교하는 날 아침 9시 수업 전 10분, 1·2교시와 3·4교시 사이 쉬는 시간 10분을 활용하면 하루 2명은 만날 수 있다. 아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판단하기 위해 간단한 설문 문항을 토대로 마스크를 끼고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한다.

유혜진:한 아이가 “조리사님 감사합니다”라고 편지를 써서 줬다. 너무 예쁘고 기특해서 선물이라도 주고 싶어 어린이날에 케이크라도 좀 구워서 줄까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요즘 같을 때 혹시라도 탈이 나면 문제가 커진다는 거다. 많이 아쉬웠다.

김경희:전국 대부분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없앴지만 광주광역시에서는 조심스럽게 재개를 하고 있다. 광주는 원래 방과후 강사 처지에서 가장 수업하기 좋은 지역이었다. 모든 학교가 위탁이 아닌 직영으로 강사들과 계약을 맺어 30%씩 떼어가는 위탁수수료도 없다. 어떻게 가능하냐면, 방과후 수업을 담당하는 행정실무 전담사가 학교마다 다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전담 인력이 없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업무가 ‘학교폭력’과 ‘방과후 수업’인데 광주에는 그런 갈등이 없다. 제가 느끼는 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돈이 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예산 투입, 혹은 제도 개선인 것 같다.

임종혜:일단 ‘긴급돌봄’이라는 명칭이라도 ‘긴급학교’ 같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돌봄 두 글자가 들어가니 학교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나 모두 기존의 돌봄전담사들이 맡아야 하는 일로 잘못 인식하는 듯하다.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는 학교 공동체가 같이 해결해나가야 할 일이다.

그리고 원래 학교 내 돌봄에 관해서는 법적 근거나 체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학교 돌봄교실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돌봄전담사의 근무 형태도 전일제로 바뀌면 혼란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김경희: 초등 돌봄과 방과후 교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돌봄이 시급한데 법적 기준이 없다 보니 뭘 하려고 해도 막혀서, 교육부가 자기들 필요에 따라 개정안을 만들어 제출한 것이다. 다만 교사들과의 설득과 소통 과정 없이 급하게 만들다 보니 충돌이 생겨 무산됐다.

윤미애:우리 같은 교무실무사를 포함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체로 교육공무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실 교육공무직이라는 직군은 어떤 법률에도 나오지 않는다. 법률 체계상 정체성이 불명확하다 보니, 업무도 딱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학교 측이 교무실무사의 업무를 제멋대로 확장할 수 있다. 부당한 업무가 오거나 해도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우리 모두가 학교 구성원’이라는 인식 개선이 정규직에게도, 비정규직에게도 필요할 듯하다.

임종혜:교사들이 몇십 명 모여서 회의를 하는 걸 보면 좀 부럽다. 우리는 회의 결과를 그냥 메신저로 통보받는다. 돌봄 관련 이슈는 회의 안건에도 거의 없더라.

윤미애:돌봄전담사도 학교 구성원이니까 학교 전반을 논하는 회의에는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게 맞고 발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 그렇게 하는 편이다. 다만 교장이나 학교별로 차이가 심하다.

유혜진:전에 근무했던 중학교에서는 조리사도 구성원으로 봐주셨다. 지금 있는 곳은 좀 폐쇄적이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학교 공동체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벽을 실감했다. 이제까지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이 아니지, 사실상 정규직이지” 이런 말을 듣고 ‘그런가?’ 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너흰 방학 중 비근무자니까 출근하지 마” 하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 나는 여기 일원이 아니구나, 그냥 비정규직이었구나.’

윤미애: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인데 그런 공간에서 차별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경희:어떻게 보면 작은 배려의 차이다. 어떤 학교는 중간중간 방과후 강사들에게 “미안하다. 개학이 자꾸 연기되는 바람에 방과후도 계속 밀리고 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어떤 곳은 단 한마디도 없다. 지금의 상황이 지구가 생긴 이래 처음 겪는 일이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고 완벽할 수 없지만, 이런 문제 앞에서 함께 논의하면 해결 방법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고 어려움을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다.

ⓒ연합뉴스6월10일 민주노총 방과후강사노조 조합원들이 노조설립신고 필증 교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정희:학교 내 소통과 배려를 기다리지만 말고 먼저 시도하고 요청해보는 일도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학생 교육복지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학교 측에 “브리핑을 할까요?” 하고 먼저 물어봤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앞에서 2시간 동안 발표하고 의견을 나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힘들다. 얘기를 해야 한다. 아니면 모른다. 그래야 구조를 바꿔나갈 수 있다.

코로나19는 이제 학교에 상수가 됐다. 학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어떤 미래여야 하나?

임종혜:앞으로 학교의 돌봄 기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회 전반에서도 돌봄 노동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 학교 돌봄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한정희:앞으로 원격 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초등학생, 특히 사회적 약자의 교육엔 꼭 대면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마트로그’라는 말이 있더라.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는 교육이다. 온라인을 하면서도 대면 교육, 대면 소통을 해야 하고 그 역량을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김경희:방과후 강사들은 이제껏 스스로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없었다. 자신을 ‘우아한 프리랜서’ 정도로 생각해오다가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닫는 중이다. 최근 3개월 사이 방과후강사노조 조합원 수가 2배로 늘었다.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 우리 직군끼리만 연대해서 될 일도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구성원들 사이 신뢰가 더 많이 필요하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이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학교 안에서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

유혜진:학교 비정규직의 일들이 주로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하시던 일이다. 아이들 돌봐주고 밥 해주고…. 이런 일들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 이번 기회에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다. 학교 비정규직 위상이 높아지고 처우도 개선되면 좋겠지만, 동시에 우리 개개인이 학교 안 구성원이고 교육 주체라는 자존감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런 에너지가 아이들에게도 가고 결국 사회도 바꿀 것이다.

윤미애:한편으로 교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교사들도 정말 고생하는 게 보인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필수가 아닌데도 줌(Zoom)으로 학생들과 쌍방향 소통을 많이 하신다. 과제를 잘 안 내는 학생과 어떤 선생님이 통화하고 있으면 옆에서 다른 선생님이 “끝나면 나도 좀 바꿔줘” 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우리도 힘들지만 교사들도 힘들고 관리자들도 사고가 안 나게 하려고 발을 동동거리며 애를 태우고 있다. ‘너도 고생하고 있구나’ 다독여주고 ‘같이 힘을 내자’고 북돋아주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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