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3월30일 민중당 당원들이 ‘n번방’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의 교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는 임기가 만료되기 직전에야 온라인 성착취 근절을 위해 발의된 개정안들을 속속 통과시켰다. 이로써 2018년 12월 개정으로 한 차례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미비점이 있던 불법촬영 처벌법제가 일부 보완됐다. 특히 불법촬영물 소지·구입·저장·시청 등과 유포 협박·강요, 강간·유사강간 예비 음모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되었다. 직접 제작하지 않았지만 성착취물의 제작과 유통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왔던 온라인상 ‘소비 행위’나, 성착취·성폭력을 부추겨온 댓글 등 ‘수요 행위’가 단지 음란물 시청이나 자유로운 성적 표현이 아니라 ‘범죄’라는 점도 어느 정도 명백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무더기 법개정에서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법적·체계적으로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방향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성착취 피해가 어떤 성격의 피해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성착취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공포와 낙인에서 비롯된다.

‘사법체계가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사회의 신뢰는 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하는 데 핵심 구실을 한다. 그런 신뢰가 없다면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절차 중 발생하는 2차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성폭력·가정폭력 등 젠더 폭력의 경우, 피해를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고 적극적으로 처벌하지 않거나 여성 피해자들을 오히려 비난하는 등 2차 피해가 무수히 일어나곤 했다. 이 같은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 결과가 바로 성폭력 피해자의 비공개 재판이나 피고인과 분리된 환경에서 진술 기회 제공, 반복 진술을 피하기 위한 진술의 영상 녹화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2차 피해 예방과 피해자 보호정책이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의 2차 피해도 방지할 수 있을까? 특히 성착취물이나 불법촬영물의 피해자가 경험하는 2차 피해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

2019년 말, 한 연예인에 대한 데이트 폭력과 불법촬영, 유포 협박 등의 1심 재판에서 판사가 유포 협박 대상이 된 동영상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1심 판사는 재판정에서 비공개로 영상의 내용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피해자 변호인이 2차 가해로 반발하면서 법정이 아닌 판사실에서 해당 영상을 확인했다. 당시 1심 판사가 동영상을 확인한 이유는, 피고인이 ‘해당 동영상 내용상 유포할 수도 없는 영상’이라며 협박 의사를 전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증거 내용에 대해 다툰다면 판사는 이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여론은 해당 판사가 2차 가해를 했다고 비판했으며, 이 판사가 n번방 사건을 담당하게 되자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국민청원이 42만명 이상 동의를 얻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이른바 ‘레깅스 판결’로 유명해진 판결문 역시 문제가 되었다. 2019년 10월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해당 판결문에 피해자 동의 없이 촬영된 사진을 함께 실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공분을 일으켰다. 피해자가 불법촬영된 자신의 사진을 피고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문제시하여 재판을 했으나, 공적 기록물에 자신의 사진이 남아 더 큰 피해를 당한 셈이다.

불법촬영물 및 성착취물로 인한 온라인 성착취 사건에서 피해 촬영물은 사법절차에서 증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거에 대한 다툼이 있을 경우 사법기관 담당자들은 이를 열람하여 판단하고, 그렇게 분석한 내용을 판결문에 담는 데에 증거물을 함께 첨부하기도 한다. 일견 당연한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바로 그 촬영물의 시청이나 소지가 가해행위이자 피해 사실이라는 점이다.

ⓒ연합뉴스5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할 의무 등을 부과하는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는 모습.

일견 당연한 듯한 과정이지만···

피해자들이 피해자의 이미지를 이용한 온라인 성착취 피해를 ‘사회적인 죽음’으로까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피해 촬영물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수많은 제3자가 소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 촬영물을 시청하고 소지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피해인 셈이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개입하여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자신이 입은 피해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하는 것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자신의 피해 촬영물을 반복적으로 전시하며, 심지어 판결문에까지 적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당한 피해를 중단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 자신의 피해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2차 피해는 다른 성폭력 사건에서 발생하는 추가 피해와 다르다. 제3자가 반복적으로 시청하고 소지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반복 피해’ ‘재피해’인 셈이다.

실제로 많은 온라인 성착취 피해자가 이러한 2차 피해 때문에 사법처리 과정을 포기하고 있다. 2018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온라인 성폭력 실태조사(‘온라인 성폭력 범죄의 변화에 따른 처벌 및 규제 방안’) 결과에 따르면, 이미지를 이용한 온라인 성폭력 피해자 중 28.7%가 사법처리를 포기했는데, 이는 수사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유포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한 피해자국선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비공개로 자신의 피해 촬영물을 재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고소를 중단해버린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2차 피해가 방치된다면 20대 국회에서 마련한 처벌 법률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사법절차 그 자체가 가해행위인 상황에서 누가 이것을 통해 피해를 호소하겠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이용한 성착취 피해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피해 촬영물을 증거의 일반원칙에 따라 다룰 때에 적어도 그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나 인격권 침해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 촬영물을 반복 재생함으로써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성착취물 및 불법촬영물에 대한 수사보고서 및 평가서 작성이나 수사 과정에서 증거에 대해 미리 심사할 수 있는 증거보전 절차의 활용 등을 통해 반복적인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화가 절실하다.

기자명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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