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여행길이 닫힌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역마살을 친구 삼아 살아온 많은 여행자들은 팔자에 없던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세기 남짓한 자유여행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이처럼 통행이 뚝 끊긴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이럴 땐 책장 한구석에 꽂힌 여행기를 더듬어본다. 길 위에서 침묵을 벗 삼아 생각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혼자 떠나는 여행 속에서 느끼는 오만 가지 감정을 자유롭게 문장으로 옮긴다. 폴 서루는 이 분야에서 시조새 격이다. 50년 넘게 전 세계를 여행했고 수많은 여행작가의 북극성이 되어주었다.

〈여행자의 책〉은 그의 여러 저작 가운데에서도 꽤 독특한 작품이다.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기를 여행하는 책’이다. 다양한 여행작가의 텍스트를 자유롭게 부유하면서 여행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여러 여행기를 짧게 인용하면서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자의 환희란?’ ‘당신이 이방인일 때’ ‘얼마나 오래 여행하는가’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주제를 탐구한다. 그 덕분에 책 구성은 꽤 불친절하다. 정독에 적합하진 않다. 오히려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골라 읽기 좋다. 책장을 후루룩 훑다가 어느 페이지에 잠시 멈춰 텍스트를 응시해보길 권한다.

그렇게 한동안 이 책의 이곳저곳을 유영하다 보면 과거에 떠났던 여행을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충분히 사유하며 걸었을까?’ ‘우리는 낯선 풍경을 편견 없이 바라본 게 맞을까?’ ‘이방인으로 보낸 시간 속에서 충분히 겸손했을까?’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 내에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고 국경의 빗장도 가볍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언젠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날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스스로 어떤 여행자인지 돌이켜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이 그 시간을 함께 버틸 수 있게끔 돕는 훌륭한 ‘영양제’ 구실을 하리라 확신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