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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심각한 불황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계획에 ‘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그리고 ‘고용안전망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보수파는 나랏빚이 늘어날 것이라 우려하지만, 불황에 대응하여 적자를 감수하고 재정지출과 공공투자를 늘림으로써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에서 아쉬운 점은 취약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나 특수고용직 등 전체 취업자의 약 절반이나 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는 방향은 의미가 크지만 예산이나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뉴딜의 핵심은 재정지출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을 강화하여 사회의 역관계를 바꾼 전면적인 사회개혁이었다. 1935년 와그너법은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고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또한 루스벨트는 최고소득세를 인상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임금상승과 수요 증가의 기반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의 높은 성장과 낮은 불평등의 선순환은 이러한 제도개혁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과 노동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만 평등한 번영을 구가했다.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이후 보수파의 득세를 배경으로 노동자의 힘이 약해지면서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성장도 정체되었다. 이는 진보적 좌파만의 시각이 아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주류 거시경제학자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 대학 교수도 최근 논문에서 이러한 주장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 하락, 실질 최저임금 하락, 주주행동주의와 아웃소싱 등으로 인한 노동자의 협상력 약화가 임금상승 정체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주류경제학은 흔히 기술변화와 세계화를 불평등 심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들고 최근에는 산업의 독점 심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서머스는 독점 심화 주장에 비해 노동자의 협상력 약화가 미국의 거시경제 변화를 더 잘 설명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노동조합, 대기업 그리고 고임금 산업 노동자들이 얻는 임금 프리미엄이 비금융 기업의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12%에서 2010년대 6%대로 하락했다. 그의 실증분석은 노동자가 가져가는 지대의 감소가 독점 심화보다 임금 몫의 하락을 더욱 잘 설명한다고 보고한다. 또한 노동자의 협상력 약화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NAIRU)의 하락 현상과도 잘 들어맞는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는 부자들에게 소득을 집중시키고, 수요를 둔화시키며 저축을 증가시켜 장기 정체의 한 배경이 되었다. 결국 그는 노동자의 힘이 미국 경제 불평등에 핵심적 요인이니 공정과 평등을 위해 노동자의 대항력을 높이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루스벨트도 와그너법에 서명한 이후 “내가 공장에 일하러 간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

문재인 정부도 초심은 다르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과 가계소득 증가를 통해 불평등을 개선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오랫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해 소비와 총수요가 정체되었던 문제를 역전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취약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일 텐데, 그것을 위해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는 의문스럽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 여전히 노조가 없는 88%의 노동자들, 그리고 플랫폼 노동같이 새롭게 증가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보호와 조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노조가입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크게 높여서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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