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제공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 군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지난 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감염병의 연대기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질병의 목록이 빼곡하다. 코로나 이전에 신종플루가 있었고, 그 이전에 메르스 (MERS)가, 사스(SARS)가, 에볼라가, 홍콩 독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서막에는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1918년 시작되어 1920년 그 기세가 수그러들 때까지, 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명을 감염시켰고 5000만~1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프랑스에 주둔하던 영국군의 야전병원을, 혹자는 미국의 군사기지를 지목한다(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은 상대적으로 보도 통제가 느슨했던 스페인에서 이 전염병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면서 붙은 이름일 뿐이다). 이 지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1차 세계대전에 대비해 군인들이 집결해 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주둔하던 병사들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 바다를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섬들 할 것 없이 환자가 속출했다. 근대적인 방역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에 기록된 최초의 팬데믹이었다. 당시의 방역 대책은 오늘날과 유사한 것도 많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일터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영화관·극장 같은 장소는 폐쇄되었다. 황당한 방역 지침도 많았다. 영국의 일부 공장은 담배가 전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근거해 금연 규칙을 완화하기도 했고, 한 하원의원은 의회에서 하루에 코코아를 석 잔 마시는 것이 스페인 독감에 대한 확실한 예방책인지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진 집단생활, 그리고 대륙에 걸친 장거리 병력 이동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전선을 맞대고 싸우고 있던 프랑스·독일·영국 같은 나라에선 수백만 명씩 환자가 쏟아졌고, 병사자 수는 곧 전투에서 죽은 사람 수를 뛰어넘었다. 스페인에선 아예 국왕을 필두로 공무원이 대거 감염되어 국가 체제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인도에서는 인구의 5%가 넘는 최소 1200만명이 사망했고, 남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에서는 인구의 90%가 감염되어 성인 남성의 30%, 여성의 22%가 목숨을 잃었다. 조선총독부 연감에 따르면 1918년 당시, 국내 인구 759만 명 중 약 38%인 288만4000명이 ‘서반아 감기(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14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신종플루는 스페인 독감의 후손

병원체의 정체는 최근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바이러스를 직접 관찰할 만한 수준의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것이 1933년의 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끈질긴 연구 끝에, 알래스카의 얼음 아래에 파묻혀 있던 희생자의 폐 조직에서 얻어낸 바이러스를 현대적인 기술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2005년에 와서야 그 바이러스가 H1N1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였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것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상호작용을 거쳐 치명적인 형태로 변이했던 것이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스페인 독감은 1920년에 접어들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2009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상황을 선언해야 했던 신종플루의 유행은 바로 이 바이러스의 후손에 의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감염병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이동한다. 우리가 20세기 초의 비참한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혁신적인 과학적 대응 수단과 함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후세는 21세기를 ‘감염병의 시대’로 기록하지 않을까.

기자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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