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6월3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악관 근처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 시위가 아닌 ‘시민 항쟁’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지난 5월25일, 20달러짜리 위조화폐를 담배 가게에서 사용한 혐의로 체포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46)가 “숨을 쉴 수 없다”는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사망한 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두고 한 말이다. 열흘 가까이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사건이 터진 미국 중북부 미네소타주를 포함해 최소 29개 주에 주 방위군 1만8000명이 배치됐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폭동과 약탈 방지를 이유로 야간통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심지어 수도 워싱턴 DC에는 시위대의 머리 위로 전투용 공격헬기인 블랙호크가 날아다녔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에는 장갑차가 진주했다.

6월3일 현재 미국 전역에서 최소 6000명 이상 시위자가 체포된 이번 소요는 1968년 흑백 차별에 따른 인종 폭동 이후 최악의 사태다. 특히 끊이지 않는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오랜 세월 불만을 품어온 흑인들이 이번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감염과 그에 따른 경제난으로 미국이 휘청대는 상황에서 또다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로 미국 사회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 사태를 촉발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 경찰서 소속의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44)은 유죄판결을 받으면 최대 40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2급 살인죄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당초 3급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다소 가벼운 형량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2급 살인죄가 추가됐다. 기소 대상에서 빠졌던 동료 경찰관 3명도 살인 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3급 살인죄의 경우 쇼빈이 플로이드의 인명을 명백히 경시했음을 입증하기만 하면 배심원들로부터 유죄판결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1급, 2급 살인죄의 경우 검사가 용의자의 ‘살인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 검찰의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미국에선 경찰의 과잉진압 행동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적 기준이 모호하다. 쇼빈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형량을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다.

미국 경찰의 진압 매뉴얼에 따르면, 상대방의 기도를 막는 행위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쇼빈은 동료 경찰관이 3명이나 포진해 있고, 플로이드가 이미 바닥에 엎드려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목을 무려 9분 가까이 짓눌러 질식사를 불렀다.

ⓒAFP PHOTO6월3일 보스턴의 코먼 공원에서 시위대 수백 명이 경찰 체포 당시 조지 플로이드의 자세를 취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는 광경.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고질적 과잉진압  

쇼빈이 “숨을 쉴 수 없다”라는 플로이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을 잔인하게 짓누르는 동영상이 퍼져 있다. 동영상을 보면 명백한 살인 행위다. 하지만 검사가 쇼빈의 살인죄를 입증하려면 그의 행위가 ‘명백한 인명 경시’ 태도를 내포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미네소타 법대 리처드 프레이즈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문제의 비디오만으론 이런 정황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쇼빈이 목을 짓누르면 플로이드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을,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쇼빈에게 2급 살인죄가 추가된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고의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입증하기 어려울 경우 3급 살인죄로 전략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검찰은 기소장에 플로이드의 사인에 대해 “목을 짓누른 것 외에도 기존 심장병과 고혈압, 약물복용 등이 죽음의 원인일 수도 있다”라고 썼다. ‘질식’이 직접적 사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발한 플로이드의 가족들은 의대 교수가 포함된 외부의 독립적인 검시 전문가들에게 의뢰했다. 이 전문가들은 “플로이드의 사인과 직결된 건강 문제는 없었으며 질식이 직접적 사인이다”라고 검찰과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결국 플로이드의 사인에 대한 판단이 향후 재판 과정에서 쇼빈의 유죄 여부를 확정짓는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경찰의 고질적인 과잉진압 행위가 벌어져도 해당 경관을 기소해 유죄판결을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실제로 각 주의 검사들이나 연방 법무부는 과잉진압에 가담한 경찰관들을 여럿 기소해왔다. 그러나 경찰관들이 실제로 기소되거나 중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USA데이터에 나와 있는 ‘경찰폭력지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총격 살인에 연루된 경찰 가운데 99%가 기소되지 않았다. 2019년 한 해 경찰의 총격으로 미국에서 사망한 사람은 1099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24%가 흑인이었다.

실제 사례를 보자. 메릴랜드주 검찰은 2015년 4월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자 경찰관 6명을 기소했지만 3명은 무혐의로 풀려나고 나머지는 불기소 처분되었다. 2014년 7월에는 뉴욕의 한 경찰관이 불법 담배 판매 혐의로 흑인 에릭 가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잔인하게 목을 졸라 살해했다. 뉴욕주 검찰은 당시 문제의 경찰관을 기소했지만 그해 12월 배심원단은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와 별도로 해당 경관의 민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온 법무부도 지난해 여름 불기소를 결정했다.

연방 검사를 지낸 폴 버틀러 조지타운 법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미국에서는 경찰관의 책임을 묻는 게 지극히 어렵다”라면서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진단한다. 먼저, 사고 현장에 있던 동료 경찰관들이 피해자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하지 않는다. 담당 수사관이나 검사는 해당 경관이 ‘살인 의도’를 가졌다고 100% 입증할 만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선 가급적 기소하지 않으려 한다. 과잉진압 경관을 기소한다고 해도 배심원단에서 만장일치의 유죄 판단이 나오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쇼빈처럼 잔학 행위에 가담한 경찰을 징계해야 할 일선 경찰서장이나 동료 경찰들의 미온적 태도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쇼빈은 미네소타 경찰서에서 19년 동안 근무했다. 그동안 쇼빈의 과잉진압에 대해 최소 17건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쇼빈은 두 차례의 시말서 빼고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미네소타에 소재한 ‘경찰잔학행위 반대 지역연합회’ 이사인 데이브 비킹은 〈뉴욕타임스〉에 “쇼빈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만 이뤄졌어도 플로이드가 질식사했을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쇼빈의 잔학 행위를 보고도 묵인한 동료 경찰관들도 문제다. 당시 쇼빈과 함께 현장에 있던 동료 경찰 세 명 중 한 명은 바로 앞에서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라며 호소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전직 경찰관으로 지금은 대학에서 형사학을 가르치는 필립 스틴슨 박사는 “플로이드가 질식당하는 동영상을 보면 동료 경찰관들은 뻔히 자신들이 비디오에 찍히는 줄 알면서도 쇼빈의 행위를 제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묵인했다”라면서 “미니애폴리스시 경찰이 흑인들을 일상적으로 거칠게 다뤄왔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개탄했다.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경찰의 고질적인 과잉진압이 근절되지 않는 주된 이유로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연방 대법원은 미국 사회에 인종 갈등이 한창이던 1967년 미시시피주에서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과잉대응과 관련한 소송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경찰관들이 선의를 갖고 타당한 명분 아래 법을 집행한 경우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문구만으로는 ‘선의’가 뭔지, ‘타당한 명분’이 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런 경우, 이전의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참고해야 하는데 그 역시 매우 모호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결정적 증거가 없는 한 경찰관에 대한 기소 자체를 꺼렸다. 기소된다 해도, 법원 역시 경찰관의 명백한 과오가 검찰에 의해 입증되지 않으면 대부분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연방 대법원이 경찰에 사실상 무제한의 면책특권을 준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끈질기게 제기돼왔다. 경찰의 과잉진압을 원천봉쇄하려면 무엇보다 문제의 대법원 판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까닭도 그래서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연방 대법관 가운데 이념적 지향이 양극에 놓인 흑인 클래런스 토머스 판사(보수)와 히스패닉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진보)가 함께 경찰의 무제한 면책특권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는 점을 들면서 연방 대법관들이 경찰의 면책 범위 축소에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라가 불타는데 호통만 치는 트럼프

사태 수습에 앞장서야 할 트럼프 대통령은 지도력 공백으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그는 심지어 평화 시위자들까지 ‘테러 집단’이라고 매도했으며 주지사들에겐 강경진압을 요구했다. 특히 ‘시위 진압에 현역 군인을 투입할 수 있다’고 사실상 대국민 선전포고를 하는 등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트럼프를 ‘분열 대통령’이라 지칭하며 “생명을 위협받는 흑인들의 분노의 뿌리와 이유를 인정하기는커녕 미국 국민의 단합을 호소하지도 않고, 절제할 줄도 모른다. 나라가 불타고 있는데 호통만 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으로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자 평생 유지해온 공화당 당적을 버린 조지 F. 윌은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트럼프는 물론 그를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도 즉각 물러나야 한다”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심 악화는 여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6월2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인 대다수가 이번 ‘5·25 항쟁’에 대해 공감하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시위 대처 방식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64%가 ‘시위 중인 사람들에게 동정적’이라고 응답했는데, “이는 시위자들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문하고, 현역 군인까지 투입하겠다고 위협하는 트럼프의 강경 노선이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같은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지속할 경우 트럼프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 후보에게 패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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