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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이들은 누구일까? 비대면 접촉이 불가능하고 작업장 밀도가 높은 직종은 대부분 흑인과 히스패닉이 차지하고 있다. 인구 대비 가장 높은 사망률도 이 집단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봉쇄령이 경제적인 불만을 키웠다. 경찰의 폭력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조지 플로이드 살해로 귀결되었다.

현재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플로이드 사건을 인종차별에 의한 살해로 규정하고 시위에 나선 사람들로 달아오르고 있다. 시위 대부분은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일부 도시에서는 약탈과 방화가 마치 뒤풀이처럼 반복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사태를 정치적 기회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연일 초강경 대응을 주문한다. 다수 언론은 이에 조응하듯 약탈과 방화에 초점을 맞춘 사진들로 도배한다. 미국 주요 신문사와 통신사가 출고한 시위 관련 사진의 70% 이상이 부정적 인상을 주는 이미지들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플로이드 살해의 원인은 묻히고 저항은 범죄로 규정되는 모양새다.

미국은 사진 한 장으로 권력의 위기를 맞는 사태를 여러 차례 겪었다. 베트남전쟁의 ‘네이팜탄 소녀’나 ‘베트콩 즉결처분’ 사진이 그런 사례다. 미국에 불리한 사진의 촬영과 출고를 결사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주 업무이기도 하다.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도 그랬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는 1954년부터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나섰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드골은 잔인한 진압으로 맞섰다. 언론사의 사진 취재도 무차별적으로 통제했다. 자유언론을 표방한 사진 집단 ‘매그넘’도 같은 꼴을 당했다. 드골과 막역한 매그넘 대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프랑스 국익을 강조하며 후배들의 알제리 취재를 막았다. 그러나 매그넘 멤버인 네덜란드 출신 크린 타코니스가 회사와 정부의 방해를 뚫고 알제리 반군을 취재하는 데 성공한다. 알제리 독립전쟁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특종 사진이었다. 하지만 매그넘의 경영진과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 사진을 3년간이나 비공개로 묶어두고 외부로 배포하지 않았다. 절망한 타코니스는 매그넘을 탈퇴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린다.

변화에 대한 믿음이 사진의 윤리다

거대 신문사와 통신사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언론을 추구했던 매그넘이 이 지경이었다. 대다수 프랑스 언론사의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권력은 언제나 국익을 내세워 제도권 언론들을 회유한다. 언론사들 역시 수익의 유불리를 따져 국익에 협조한다. 그 때문에 많은 양심적인 사진가들이 언론사라는 방패막이 없이 홀로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과 대면하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페이스북 같은 SNS에는 언론사 소속이지만 출고하지 못한 사진을 올리거나, 독립적으로 현장에서 취재한 사진들을 업로드하는 프리랜서들이 있다. 사진이 더 이상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매체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변화의 믿음을 갖고 활동하는 사진가들은 이것이 바로 사진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사진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의 투쟁에서 나온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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