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최종희의 〈대구경북의 사회학〉(오월의봄, 2020)은 ‘문화적 섬’ 또는 ‘고담 시’라고 불리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의식을 연구한 책이다. 지은이는 50세가 넘은 대구·경북 출생 남녀를 각각 5명씩 선정해 그들의 가치를 형성하는 중요한 습속과 상징(언어)을 분석한다. 한 지역민의 가치관을 분석하는 데 고작 10명이라는 숫자는 표본집단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하지만 지은이가 사용한 질적 연구는 심층 면담이라는 ‘질(質)’을 통해 ‘양(量)’의 열세를 보완한다.

2018년 6월13일 제7회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대구·경북은 한 소설가(이외수)로부터 “북한도 변했는데 여긴 아직 안 변했네요”라는 조롱을 받았고, 2020년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서는 한 시인(김정란)으로부터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라는 험담을 들었다. 해방 전후의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데다가, 1960년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이처럼 진보색이 뚜렷했던 대구·경북은 박정희 정권이 날조한 제2차 인혁당 사건을 끝으로 폐쇄적인 ‘보수꼴통’ 도시가 됐다. 1974년 제2차 인혁당 사건의 공식 명칭은 ‘인혁당재건위 (날조) 사건’이지만, 대구의 진보 지식인들이 떼죽음을 당한 ‘대구 사화(士禍)’라는 용어가 더 그럴듯하다. 박정희는 영구 집권을 위해 자신의 근거지(후방)를 청소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은이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유독 향우회, 동창회, 친족회 등 유사 가족관계에 매달리며 시민사회를 외면하는 데서 대구·경북의 보수성을 찾는다. 대한민국 전체가 끈끈한 친밀성으로 얽혀 있는데, 대구만 유독 다른 이유가 있다. 광주의 경우, 5·18의 경험은 광주 시민을 친밀성 너머의 보편적 시민사회로 연결해주었다. 반면 박정희·전두환 등의 권력자를 배출한 대구는 끈끈한 사회자본으로 얽힌 친밀성의 세계를 벗어나 시민 영역으로 열려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구미공단과 포항제철 등 박정희 시대의 수혜자였던 대구·경북은 지난 시대의 절대 이념이었던 ‘반공’의 파수꾼임을 자처하면서, 진보적 시민사회나 전라도를 ‘빨갱이’에게 오염된 집단으로 본다.

한성안의 〈진보 집권 경제학〉 (생각의길, 2020)은 경제학 박사의 경제 이론서이면서, 경제학은 인문학, 특히 철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경제학은 숫자와 합리성으로 이루어진 학문이고, 인문학과 철학은 문화와 불합리성마저 존중하는 학문인데 어쩌자고 지은이는 인문학 타령일까. 그 이유는 경제도 경제학도 인간에 대한 이해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우파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완벽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런 원리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바탕 위에 생겨난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사회 전체가 좋아진다’는 원리로 발전하게 되는 이런 신념은 ‘개인’과 ‘성장’을 앞세우고 ‘사회’와 ‘분배’를 무시한다. 반면 인간의 본성을 이타적이라고 보는 비주류·좌파의 경제학은 상호 호혜가 역사와 사회발전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주류·우파의 경제 이론가들이 신봉하는 낙수효과 이론은 국가나 사회의 개입을 차단하는데, 지은이가 옹호하는 제도경제학은 경제적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행위자(인간)의 몫이 크다고 주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낙수효과 이론을 적절히 묘파했듯이, 경제에 인간의 주체적인 행위(제도)가 개입하지 않으면, 부자들의 윗접시에 물이 찰 때마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윗접시만 더 커져버린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경제 영역과 본능·정치·문화 등 비경제 영역을 분리해왔다. 이런 일원론을 비과학적이라고 질타하는 지은이는, 경제와 비경제를 상호작용으로 보는 총체론의 시각에서 경제와 경제학에 새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이 경제만 순수하게 다룰 수 있다는 만용을 부릴 때마다, 경제 영역에서 인간은 사라지거나 효용(쾌락)만 추구하는 짐승이 된다.

‘적군’도 ‘홍군’도 아닌 ‘인민군’

김선호의 〈조선인민군:북한 무력의 형성과 유일체제의 기원〉(한양대학교 출판부, 2020)은 북한 인민군의 창군 과정을 연구한 저자의 박사논문으로, 전공자들이나 읽고 소장할 학술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은 대중적인 잡지를 통해 주요 내용이 널리 노출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부터 인민군 창설 과정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의 연구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인민군 창설에서 소련 군사고문단이 수행한 역할을 러시아 자료를 통해 정리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 이후 중국의 조선인 부대가 인민군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해명하려 한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인민군 창설이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암시를 깔고 있다. 특히 전자는 김일성을 스탈린의 ‘꼬붕’으로, 북한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격하시킨다.

지은이가 표명한 이 책의 핵심은 북한 건국과 인민군 창건이 중국 만주에서 활동한 동북항일연군의 혁명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김일성이 소속한 동북항일연군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의 동맹관계’를 뜻하는 통일전선론(=인민민주주의)을 혁명론으로 삼았다. 이 노선은 노동자·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삼은 계급투쟁론과 사뭇 다르며, 소련 건국 과정과도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상징은 노동자와 농민을 뜻하는 낫과 망치인 데 비해, 조선노동당의 상징에는 지식인층 또는 사무원을 뜻하는 붓이 더해져 있다.

소련군이 ‘적군(赤軍)’으로, 중국군이 ‘홍군(紅軍)’으로 명명된 이유도 두 나라가 계급에 기반한 국가이며, 그 군대 또한 “계급적 군대”로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애초부터 통일전선론에 입각한 건국을 했던 까닭에 군대의 이름도 ‘인민군’이 되었다. 지은이의 자평과 달리, 내가 보기에는 여기서 생겨난 역설이, 이 책의 핵심이다. 계급투쟁으로 건설된 소련은 계급적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 안에 공산당 이론을 학습시키고 당성을 감시할 전문 장교(정치위원)를 두었으나, 건국 과정이 다른 북한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인민군을 당의 군대로 만드는 ‘당군화(黨軍化)’ 사업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김일성이 활약했던 동북항일연군이 요직을 차지했던 인민군은 ‘공산당화(化)’가 아니라 ‘김일성화(化)’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하여 “인민군에 구축된 김일성의 영도사상과 ‘혁명전통(항일무장투쟁)’은 북한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유일 체제가 출현할 수 있는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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