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뱃속에 있다가 세상으로 밀려나온 개구리알 하나. 벌써부터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는 어디일까. 올챙이로 크고 개구리로 변하는 중에도 바글바글 형제들 틈에서 녀석의 질문은 계속된다.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누구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까’ 등등. 제일 먼저 뒷다리가 나와 다른 형제들의 앞장을 서는 즈음에, 이 철학자는 ‘나는 언제쯤 날 수 있을까’ 질문한다. 물속에서 포식자 물고기의 입을 피해 도망 다니는 올챙이 형편에. 꿈이 큰 건지, 뭘 모르는 건지.

앞다리까지 갖추고 완전한 개구리 형상이 된 우리 주인공은 펄쩍 뛰어오르면서 “나는 개구리”라고 외친다. ‘(하늘을) 나는 개구리’라는 중의적 의도가 들어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천명하며 녀석은 그야말로 의기양양하겠지만, 다음 순간 나오는 소리는 비명 같고 한탄 같은 ‘그래봤자 개구리’이다. 새 부리에 찍히고 뱀 입속으로 사라지는 형제를 보고, 고양이 이빨 앞에서 웅크리며 ‘나는 개구리’는 번번이 ‘그래봤자 개구리’에 눌리고 만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 나 개구리다!”라는 선언

‘그래봤자 개구리’ 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공포에 질린 채 깜깜한 풀 속에 숨어 한없이 쪼그라든 개구리. 개구리 주제에 나는 누구인지를 묻고 하늘을 날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꿈을 꾼 결과는 어떨까. 어떤 판타지로 하늘을 날게 될까? 언제 이빨이나 부리도 뚫을 수 없는 철통같은 껍데기를 갖추게 될까? 아니면, 그래봤자 개구리니 잘 숨고 잘 도망가는 게 최선이라는 깨우침을 얻을까?

통쾌하고 유쾌하게도 결론은 “그래! 나 개구리다!”라는 선언이다. 녀석은 개굴개굴 천지가 흔들리도록 울어댄다. ‘나는 개구리’를 다시 천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하늘을’이 들어 있지 않다. 펄쩍 뛰어서 공중에 머무르는 자세가 아니라 네 다리를 굳건히 땅에 붙이고 앉은 자세다. 마지막 장면은 우리의 주인공이 남기는 숱한 개구리알. 꽁무니에서 알을 뿜어내며 화면 오른쪽 위로 자그맣게 사라져가는 개구리는 마치 쏘아져 올라가는 로켓처럼 보인다. 하늘을 날겠다는 그의 꿈이 이렇게 실현된 거라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을까?

인간의 삶도 이 개구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모르는 어린 시절에 우리는 하늘을 날겠다고 꿈꾼다. 옆에서도 부추긴다. 실제로 나는 듯한 순간도 있겠지. 하지만 세상에 나가보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날카로운 부리, 이빨, 삼키는 입들이다. 옆 사람들이 속절없이 찍히고 찢긴다. 그 공포에 떨면서 살지 않는 자는 단번에 당하는 개구리뿐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은 “그래! 나 개구리다!”이다. 그래봤자 개구리임을 자각하고, 개구리 최대의 힘으로 개굴개굴 울며 알을 낳는 일이다. 출산 장려 캠페인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를! ‘그래봤자 개구리’임을 깨닫지 못한 개구리는 개구리로 살아남을 힘이 없으니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래 봬도 개구리’가 아니어서 참 좋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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