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그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서점가에서 순위 역주행을 기록 중이다. 이번에 〈페스트〉를 완독한 사람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 중반에 출간된 전염병 이야기가 2020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신천지, 이태원 클럽 사태의 복사판 같은 소설 속 사건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페스트로 인해 오랑시가 봉쇄되자 시민들은 처음에는 일상이 유지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개인 불만을 표출하거나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것이 개인적 불편함의 차원이 아니며 장기간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하는 공동체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지난 1월 중순 중국 우한에서 심각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만 해도 우리는 그저 강렬한 해외 토픽 대하듯 반짝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놀라기 무섭게 대구에서 신천지 사태가 터지더니 대한민국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가 급속도로 늘어나기에 이르렀다.

3개월에 이르는 그 기간에 학교는 전대미문의 혼란에 휩싸였다. 온라인 수업을 위한 각종 플랫폼과 그 사용법을 안내하는 공문 및 연수 자료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또한 교육부의 잇따른 수정 발표에 따라 학사일정과 평가 계획이 거의 주 단위로 재조정되었다. 교사들이 ‘온라인 개학’이라는 말뜻을 겨우 이해할 무렵 “학교 현장은 온라인 클래스 시스템을 완비하였으니 학부모들은 걱정하지 마시라”는 교육부 입장이 보도되었다. 그 뒤로도 교육부의 결정 사항이 미처 학교에 전달되기도 전에 인터넷 뉴스를 통해 먼저 일반 대중에게 보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교사들 사이에서는 ‘네이버 공문’이라는 은어까지 생겼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온라인 개학 초기에는 냉소적 반응과 회의적 태도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교 분위기는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페스트〉의 기자 랑베르처럼 뭐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페스트〉의 의사와 지금 교사들의 공통점

물론 소설 속 의사 리유가 그랬듯 교사들 대부분이 무기력감과 피로감에 휩싸였던 게 사실이다. 리유는 의사 본연의 업무인 환자 치료는 거의 못한 채 종일 페스트 감염 여부를 진단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허탈함과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교사들도 비슷했다. 온라인 클래스 개설을 위해 급히 동영상 제작 방법을 익혀서 강의를 찍어 올리는 교사든, EBS 강사의 강좌를 끌어오는 교사든 마찬가지였다. 교사 본연의 업무라 여겨왔던 것들, 즉 교재 연구나 학생들과의 수업이 아닌 생소한 일들에 전념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단시간에 재빨리 각종 툴을 익히고 온라인 플랫폼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안내하는 데에 매달리다 보면 문득 현기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교사가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페스트〉의 리유나 랑베르처럼 이 당황스럽고 낯선 전염병의 강을 건너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오프라인 등교를 하는 시점이 되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상황이 새로이 펼쳐질 것이다. 그동안 고등학교에서 가장 중시해온 것은 입시였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오프라인 등교를 앞두고 전국의 학교들은 교실 방역을 마쳤다. 이제부터는 물리적 방역 유지와 함께 심리적 방역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섣부른 판단과 혐오라는 심리적 바이러스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시간이 왔다.

기자명 정지은 (서울 신서고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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