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a pen.’

얼마 전 일본 TBS 방송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했다. 한 여성이 휴지 한 장을 얼굴 가까이 댄 뒤 ‘코레와 펜데스(これは ペンです:이것은 펜이다)’와 ‘디스 이즈 어 펜 (This is a pen)’을 각각 발음했다. 영어를 말할 때 더 크게 휴지가 흔들렸다. 일본어 발음 특성상 영어보다 침이 덜 튀어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이 적다는 의미였다. 영상을 본 패널 일부는 ‘스고이(すごい·멋지다)’를 외쳤다. 전 세계인들이 패러디할 ‘밈’의 탄생 순간이었다.

배명훈 작가는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이 ‘This is a pen’ 소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아니라고 전해왔다. 청탁 시점부터 앞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종식을 예언했던 4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하루 1만명 넘는 확진자가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10명대로 줄어들고 있었다. 등교가 미뤄지는 동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달고나 커피’를 휘저었다. 비대면 시대, 특수를 누리던 쿠팡 물류센터도 아직 활기를 띠고 있었다.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이 어디서나 들렸다. BC와 AC(코로나19 전과 후)의 약자도 달라졌다. 전과 같지 않은, 새로운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문학적 상상력에 기대 가늠해보기로 했다. ‘코로나 시대’를 주제로 SF 작가 3인에게 소설을 부탁했다. 배명훈 작가는 먼 미래 시점에서 2020년을 돌아본다. 그 세계엔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없다. ‘코레와 펜데스’가 ‘고레와 벤데스’가 되는 세상이다. 비말이 멀리 날아가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는 데뷔작 〈Smart D〉에서도 ‘ㄷ’ 없이 단편소설을 완성했는데 키보드 자판 ㄷ에 저작권이 있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데뷔작에 대한 글을 쓸 일이 있었고 그때 마침 〈시사IN〉의 청탁을 받았다.

정소연 작가는 올해 초 다녀온 해외 크루즈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지도 위의 지희에게〉를 완성했다. 역시 배명훈 작가의 추천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크루즈가 될 것 같다.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는 배 안에서 코로나19 소식을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신종 폐렴이 발생했다는 정도였다. 지난 2월 일본 정부가 본토 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대형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요코하마항 앞바다에 정박시키고 탑승 인원의 하선을 금지했다. 705명이 감염됐고 6명이 사망했다.

정 작가는 그 뉴스를 보며 자신의 크루즈 여행을 떠올렸다. 당시 선내의 엔지니어실, 주방 등을 돌아보는 투어에 참가했다. 창문 없는 방에 머물고 있는 선원도 만났다. 80여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밤에 정박하기 때문에 여행지를 둘러볼 기회도 거의 없다고 했다. 격리된 배를 보며 그들을 생각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선원들은 승객들이 하선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내렸다. 〈지도 위의 지희에게〉는 코로나19로 격리된 배에 사랑하는 연인을 둔 이의 이야기다.

이산화 작가의 〈홈스틸〉은 사람들로 꽉 찬 야구장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 야구장의 주인이 박쥐로 바뀐다. 인간이 아니라 박쥐의 처지에서 생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이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었다. 왜 인간이 박쥐를 먹는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이 작가는 박쥐가 다양한 감염병 바이러스를 보유했으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도록 진화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간의 생활반경이 박쥐의 생활반경을 침해해 접촉이 빈번해지고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활동이 줄어드는 게 지구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진단도 들렸다. 환경과 생태 이슈를, 무관중 시대를 맞은 프로스포츠 시장과 연결했다.

세 편의 SF를 소개한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풍경과 끝내 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행하는 밈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스 이즈 어 픽션(This is a fiction:이것은 소설이다)’. 강세는 물론 ‘픽’에 있다.

 

ⓒ한성원 그림

 

다들 별로 안 믿는 모양이지만, 우리 학교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은 학생들을 감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다. 역사학 연구자로서 선입견 없이 한 시대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격리실습실의 유일한 목적이다. 격리되는 것은 연구자가 아니라 시간이다. 연구자가 감금되는 것은 단지 부수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각자의 시간이 묻어 있는 법이어서 연구자를 격리하지 않으면 시간도 제대로 격리할 수 없다.

복잡하게 이야기했지만, 격리실습실이란 사실 도서관저럼 생긴 문서고다. 2020년 5월 어느 날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정보만 모아놓은 근대사 아가이브다. 날자를 일괄적으로 득정할 수 없는 것은 분야마다 수집 기준일이 다르기 대문이다. 예를 들어 영상자료 수집 기준일은 5월6일이고, 정기간행물은 5월 말일이다. 인더넷은 다시 세부 분야별로 정보수집 마감 날자가 다른데, 대중 5월28일 밤에서 29일 새벽 사이에 귿난다고 보면 된다.

격리실습은 한 학기 고스로, 실습을 마지지 않으면 논문 자격시험을 볼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동과해봐야 논문을 슬 자격이 주어지는 것 말고는 아무 혜댁도 없다는 말이다. 한 학기라고 하면 엄정 길어 보이지만, 실제 격리는 닥 4주고 이 기간 동안 외부와 연락을 자단한 재 실습실에서 기거하면서 아무 주제나 정해서 소논문 한 변을 완성하면 된다. 다만 아가이브 안에 있는 정보와 지적 수단만을 활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는데, 막상 해보면 그다지 가다로운 조건은 아니다. 병가도 별로 엄격하지 않아서 배스(bass) 아니면 베일(vail)이다. 잠여만 하면 거의 다 동과한다는 의미다.

내 주제는 2020년에 한국에서 저음 열린 걸링리그였다. 걸링 중계를 보는 것은 격리실습 기간 동안 내 유일한 낙이었다. 아무도 몸사움을 하지 않고, 단 한 번의 반정 시비도 일어나지 않으며,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별져지는 지열한 승부의 세계! 리그는 블레이오브를 고압에 두고 중단되고 말았다. 그 유명한 2019년 감염병의 여바였다.

그게 내 격리실습 젓 주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왜 하빌 이걸 보기 시작했을가. 궁금해 미질 것 갇았다. 그래서 준전시정 딤은 도대제 어디까지 올라갔단 말인가! 결과를 알아내는 것즘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해답은 실습실 밖에만 있었다. 나는 3주나 더 실습실에 갇여 있어야 했다.

시간이 격리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2020년 5월의 근대 한국인저럼 2020년 6월을 가맣게 모르는 상대에 놓이는 것. 그래서 내 소논문 주제는, 그해 걸링리그 여자부에서 준전시정 딤이 우승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가 되었다. 2113년의 나는 걸링이라는 스보즈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므로 2020년의 인류가 가진 지식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했다. 분석은 아무 말이었지만 그거면 중분했다.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의 설립 쥐지를 그보다 더 잘 살리는 연구는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가 너무너무 궁금했다. 너무너무 궁금해서 격리만 해제되면 곧바로 그 일부터 잦아볼 것 갇았다. 실제로는 아직도 안 잦아보고 있지만, 아무든 이론상 그러다는 말이다.

학과장 선생님은, 다임머신이 개발돼서 대학원생을 2020년으로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시간여행을 위한 전문 훈련장으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 전망하지만, 물론 농담이다. 실습실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수감자저럼 보이는 것은 역사학과 대학원생분이지만, 아가이브 자제는 내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역사학자 말고도 종종 우리 실습실을 잦는 부류가 여럿 있었는데, 제일 흔한 게 고전 연구자였다. 문학이든 절학이든 고전 연구자가 작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작붐이 인류의 죄전선에 있었던 시대의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후대에 나온 더 나은 해법을 아는 사람은 은연중에 고전을 무시하는 대도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브론디어에 놓여 있지 않은 지식은, 미래인의 눈에는 어전지 구닥다리로 보이기 마련이다. 실제로도 그러다. 그런 작붐은 십중발구 정복되어 있다. 모두가 주구해야 할 기준점이 되었다가, 극복해야 할 낡고 고루한 습관으로 바귄 다음, 마짐내 대부분 극복되고 마는 배던이다. 그러므로 고전이 다시 빚을 발하게 하려면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야 한다. 그러다. 바로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의 주요 기능이다.

고전 연구자가 거의 직장 동료 느김이라면, 시나리오 작가는 줄석율 낮은 동네 헬스장 고정멤버 정도의 느김이다. 역사학과 격리실습실에는 스고 직고 그리고 하는 온갖 역사물 장작자들의 발길이 귾이지 않는다. 자주 온다는 의미는 아니고, 잊을 만하면 하나식 듸엄듸엄 나다난다는 듯이다.

실습실에 영상업계 사람이 앉아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바갇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갈 일이 없어도 왠지 마음이 들드는 것과 갇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비가 내린다는 거니가. 시나리오 작가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 사람은 연예인을 실제로 봤을 게 아닌가.

실습실은 장문이 다 막여 있다. 너무나 22세기스러운 바갇 붕경 닷이다. 나에게 비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외부인들이 가지고 온 우산이다. 단 한 볌 그기만 한 장문이라도 진자 비가 들이지는 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던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났다. 비가 들이졌다는 게 아니라, 배우가 실습실에 나다났다는 소리다. 격리 3주재였다. 나는 그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검색을 못애서 이름은 나중에 더올랐다. 재미난 이름, 한지, 서한지였다. 주로 여자 역을 맏기는 했지만 어느 족을 연기하든 기억에 남는 개릭더를 선보이던 젊은 배우였다.

 

ⓒ시사IN 이명익

 

나는 거의 숨도 쉬지 안고 서한지를 구경했다. 대놓고 반히 져다보지는 않았다. 흘금흘금 몆 번 보고 나서는 시선을 그족으로 돌리지도 안고, 그가 있는 공간을 조용히 느기기만 했다. 돌이겨보니 소름 돋는 행동이지만, 공기부더 확 달라진 걸 난들 어저란 말인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서한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밤에는 동이 들 대가지 잠이 오지 않았다. 서한지가 앉아 있던 곳 근저에 남아 있는 좋은 기운 대문이었다. 아아아! 이 누주한 곳에 진자 영화배우가 앉아 있었어!

놀랍게도 서한지는 다음 날 오후에도 실습실에 나다났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주말에는 쉬었다. 나는 점점 궹해지고 조줴해졌다. 그럴 리 없게지만, 말하자면 건강한 조줴함이었다. 매일매일 서한지를 볼 수 있다니!

말을 걸어볼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기리는 다 되지만 나만은 금기였다. 실습실 곳곳에는 실습생에게 말을 걸거나 먹을 것을 주지 말라는 안내문이 붇어 있었다. 늘 그러듯 시간을 격리하기 위해서였다. 젯.

먼저 금기를 갠 족은 서한지였다. 나는 잦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서가를 헤매고 있었다. 군사학 서가였다. 잭에 정신이 발려 경계를 분 사이 누군가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괜잖으세요?”

바로 엽이었다. 다가오는 기적을 전혀 느기지 못앴던 나는 그만 소스라지게 놀라고 말았다. 서한지가 말을 이었다.

“지나가다가 절조망을 봤어요. 숙직실인지 기숙사인지 둘레에 져져 있는 거. 자발적으로 갇여 있는 게 확실한가요? 혹시 강압이 있었거나, 아니면 구다 같은?”

나는 바보저럼 고개만 가로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뭐라고 답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지나 바보 갇았는지 내 얼굴을 본 서한지의 뵤정이 한증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하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저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서한지가 말했다. 글로벌 스다도 못 알아볼 만금 비잠한 격리 생활일 거라 짐작안 모양이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안고 서한지가 말했다.

“흘금흘금 져다보는 거 눈지 재고 있었어요. 아무 말도 못 아고 있는 거. 그런데 점점 상황이 안 좋아 보여서. 그족 얼굴이요. 도와드릴게요. 뭐든!”

이 정의롭고 선량한 배우는, 자조지종을 듣고도 완전히 믿지는 않는 눈지였다. 실습실 사서 선생님이 그러게 전했다. 정말로 그런 거면 절조망은 왜 빌요하냐고 되물었다고. 우리기리 하는 농담일 분이었지만, 사서 선생님은 이제 그런 장난도 그만둬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서한지에게 아무 해명도 할 수 없었다. 그게 규직이었다. 대신 나는 서한지의 목소리를 더올렸다. 정확이 말하면 목소리보다는 발성에 관해 아주 오래 생각앴다. 입안에 머금은 듯 부드럽고 우아하게 울리는 소리. 서한지에게서 나오는 모든 말은 조금도 박으로 벋어 나오지 않았다. 바로 압에 서 있던 나에게조자 전혀 다지 안던, 부드럽고 고운 날숨에 실린 소리.

‘와, 배우는 정말로 저러게 말하는구나.’

나는 몆 번이고 그 대화를 더올렸다. 대화라기에는 다소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그 뒤로도 서한지는 구준히 실습실에 나왔다. 다음 작붐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알아서는 안 되는 2113년의 정보였지만, 그걸 알게 된 게 내 잘못은 아니었다. 시간을 격리하는 일은 엄연히 사서의 임무였다.

배우답게 서한지는 영상자료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옛날 영상은 거의 보지 않았다. 옛날 사람들의 두박안 모습을 보기가 불변했기 대문이다. 화질 문제가 아니었다. 화면에 담긴 사람들이 문제였다. 2020년 사람들의 발성은 너무 이상했다. 곡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전지 오래 듣고 있기가 거북앴다. 근대 한국어는 글로만 접아는 변이 나았다. 진자 다임머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2020년으로 날아가 그 시대 사람들과 대화를 할 것도 아니니가.

정말 중격적인 것은 스보즈 중계방송이었다. 나는 며질 전에 본 장면을 더올렸다. 2020년 봄이 되자 전 세계 스보즈가 전부 중단되었다. 유럽이나 미국이 더 심하고 한국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한국에도 근대야구 리그가 있었는데 경기 룰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전 세계 야구 리그가 다 중단되고 한국 리그만 무관중으로 열리는 바람에 온 세상 야구 밴들이 전부 한국 야구를 봤다. 그 기록과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근대야구의 룰이 궁금해서 잠시 2008년 경기 영상을 들어놓았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모격아고 말았다. 세상에, 누군가가 짐을 밷었던 것이다! 그것도 선수가! 경기 중에!

감작 놀라 화면을 다른 부분으로 넘겼지만 어지나 운이 없던지 잠시 후에 도 비슷한 장면과 마주졌다. 다른 장면에도, 도 다른 장면에도, 얼굴이 글로즈업된다 십으면 선수들은 희한하게도 짐을 밷었다. 마지 가메라가 자기 얼굴을 비주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저럼.

서가를 뒤졌다. 곧 놀라운 자료를 발견했다. 2020년 5월에 리그가 시작될 대 나온 지짐이었다. 바로 짐을 밷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조항이었다. 아니, 그 말은, 2020년 이전에는 선수가 경기 중에 짐을 밷는 일이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야말로 격음의 시대였다. 만나면 악수로 인사를 하고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남의 술잔으로 술을 마시는 붕습은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했다. 더지스그린이 미래의 디스블레이로 주목받는 시대였고, 자동문에조자 손으로 누르는 스위지가 달려 있던 대였다. 그럴 거면 왜 굳이 자동문을 만든단 말인가.

솔직이 나는 그 시대가 혐오스러웠다. 근대사는 영영 내 적성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는 부지런히 바열음을 만들어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입이 거슬렸다. 그래서 아무리 중요한 연설도 오래 지겨보기가 힘들었다. 내용이 어더든 상관없었다. 그것이 격음으로 이루어진 연설이라면 다 마잔가지였다.

 

ⓒAFP PHOTO

 

서한지는 연기 변신을 굼구고 있었다. 작가나 감독이 아닌 배우가 역사학과 대학원생만금이나 열심히 실습실을 잦는다면 이유는 하나다. 다음 작붐에서 연기바 배우로 도약아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서한지의 다음 작붐은 2020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 될 모양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생각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무조건 싫었다.

그것은 역사학도의 감이었다. 나는 2020년이, 그 유명한 대감염병의 시대가, 근대사의 변곡점으로 다뤄지는 것 자제가 싫었다. 우리 실습실의 자료수집 기준점이 2020년 5월인 것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2020년은 문명사의 전환점이 아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인류는 그 병을 극복앴다. 삶은 회복되었고 사람들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시기는 세계대전이나 냉전 갇은 게 아니었다. 2020년 봄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한지가 영상자료를 보고 있는 광경을 훔져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서한지는 같은 화면을 반복해서 재생해가며 옛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라 하고 있었다.

“동족아여 주시옵소서.”

사극이었다. 근대에 만든 조선시대 배경 역사물이었다. 나는 화면 압에 앉은 서한지가 그러게 말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동족아여 주시옵소서.” 마음이 죽 늘어졌다. 그러면서도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더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대사가 아닌 서한지의 발성이 머릿속을 자구 맴돌았다. 내 검뷰더로는 뵤기조자 할 수 없는 말.

밤새 그 생각에 사로잡여 있다가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나 검뷰더 화면에 지금은 스지 않는 옛 한글 자음들을 나란히 그렸다. 격리실습실 서고에서 늘 보던 글자였지만 굳이 음가를 신경 스지 않았던 소리. 인간의 몸 안에 있던 무언가를, 아마도 볘 속에 들어 있던 유해한 공기를, 바갇족으로 강하게 밀어내는 발성. 금기가 된 소리. 불법은 아니지만 예의에는 어긋나는 거진 음운. 별 기능도 없는데 굳이 모았다 더드리는 복단 갇은 호흡. 바열음이었다.

나는 그 자음들을 이용해 낮에 서한지가 다라 읽은 말을 검뷰더에 옮겨 적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게 들리는 문장이었다. 말 그대로 내면의 억울함이 분줄하는 듯한 발성이었다.

물론 나 역시 2020년을 기점으로 세상이 바귀었다는 사실 자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실습실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사전지식이지만, 근대인들에게 2020년은 혐오를 재발견하는 시기였다. 죄조로 발명한 것은 아니고, 잠재해 있던 혐오를 하나하나 그집어내기 시작한 시대라는 듯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싫어했다. 원래도 싫어했지만 더는 숨기지도 않았다. 감염병이 빙계였다. 금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술 빙계를 대는 것과 갇았다. 그의 과거와 미래는 범죄행위로부더 분리될 수 있는가. 단지 쥐했다는 이유 대문에.

격리 마지막 주가 되자 흘금흘금 나를 져다보는 서한지의 시선이 유독 날가롭게 느겨졌다. 분명 나에게 말을 걸 것만 갇은 눈빚이었다. 무엇이 저 배우를 저러게 갈망하게 만들었을가. 영상에서도 실제로도 한결갇이 내성적이었던, 그래서 늘 신망이 두덥다는 병가를 듣언 사람이.

밝은 조명이 내리죄는 복도에서 서한지와 마주졌다. 서한지는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내 몰골을 아래위로 훌더보더니 결심한 듯 아주 조금 고개를 그덕였다. 그냥 아래덕에 힘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비장한 목소리로 서한지가 말했다.

“탈출할래요?”

그리고 내 족으로 손을 내밀었다. 먼지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밝은 조명 아래, 날아오는 비말이 도렷이 보였다. 짐이 뒤었다. 아니, 21세기식 뵤현으로, 침이 튀었다. 하.

한글은 뵤의문자가 아니지만, 어떤 말을 받아 적을 대는 그 말이 듯하는 바가 직관적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빽빽아다는 뵤현은 시각적으로도 이미 빽빽아다. 얼룩말이라는 단어는 스스로 얼룩무늬로 지장되어 있다. 마잔가지로 “침이 튄다”는 말에는 짐이 뒤는 현상이 반드시 수반된다. 그렇게 침이 튀었다. 서한지에게서 나에게로.

‘오해예요, 서한지 시.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몰라도 저는 달줄 갇은 거 빌요 없어요. 다음 주면 여기를 나간다고요.’

서한지는 연기 변신에 성공할 것이다. 이미 21세기 인간이 되어 있었으니가. 그의 변신은 단순히 21세기식 발성법을 익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21세기식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만약 서한지가 한 말이 “달줄할래요?”였다면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하지만 그가 나에게 “탈출”을 권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잡고 말았다.

얼굴에 서한지의 침이 튀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가다르시스를 느겼다. 그 순간 나는 개달았다. “가다르시스를 느겼다”는 말은 반드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발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침이 튀도록. 와, 정말 미진 문명, 아니 미친 문명이었다.

정의롭고 선량한 배우의 손에 이글려 실습실 박으로 나왔다. ‘거봐요, 감금된 거 아니잖아요. 그냥 걸어 나와도 아무도 뭐라 그러는 사람 없다고요.’ 하지만 그 생각을 입박에 내지는 않았다. 이러다가는 22세기 죄조로 격리실습 고스를 동과하지 못안 대학원생이 될 저지였지만, 격리야 다음 학기에 도 하면 그만 아닌가.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서한지의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비로소 2020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한다고 해서 좋아하게 될 것 갇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게 뭔지는 알 것 갇았다. 말하자면 그것은 차카타파의 진심 갇은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서한지 시, 저는 당신의 변신이 정말로 슬브답니다. 하지만 아무든 죽아해요. 흑윽.’

 

 

기자명 배명훈 (SF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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