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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잠시 산 적이 있다. 2015년에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체험 기사를 쓸 때였다.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일하며 신림동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가난을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고시원을 고른 건 아니었다. 목돈에 해당하는 보증금 없이 구할 수 있는 주거 형태가 고시원밖에 없었다.

으리으리한 건축물을 보며 위압감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고시원은 그와 정반대되는 의미로 위압감을 주었다. 신림동에서 그나마 가격이 높은 축에 속하는 방이었는데도 정말 좁았다. 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면 두 팔을 양쪽으로 다 펼 수 없었다. 바닥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한이라도 눌어붙었는지 아무리 닦아도 눅진눅진했다. 방 안에 있으면 자꾸 불길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최근 한 기사를 읽다 5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60대 남성이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외출했다가 걸려서 재판받는 내용이었다. 이 남성은 어머니를 만나러 지난해 미국에 갔으며 그전까지는 고시원에서 살았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후 원래 살던 고시원에서 자신을 받아주지 않아 바깥을 돌아다니게 됐다고 지침을 어긴 이유를 댔다. 검찰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구형)했다.

선처받기 위해 얘기를 꾸몄을지도 모른다. 미국을 왕래하는 사람이 안정적인 거주지가 없었다는 게 미심쩍기는 하다. 그런데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실제로 방역 수칙을 따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시원에서 산다는 건 그 이외의 주거지를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설령 원래 살던 고시원에서 이 남성을 받아줬다 해도 마찬가지다. 맨손체조조차 하기 어려운 비좁은 방에서 꼬박 2주를 보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공간에 갇혀 2주를 버텨도 괜찮은 걸까. 내가 기억하는 고시원은 하루치 노동의 고단함을 수면제 삼아야 겨우 잠들 수 있는 곳이었다.

코로나19 시대의 시민이라면 방역 지침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동일한 수칙이 요구된다고 해서 의무의 무게까지 공평하지는 않다.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하루 벌이에 생계를 의존하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들에게 이 의무는 더더욱 무거워 보인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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