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4월7일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한 유전에서 오일펌프가 가동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유례를 찾기 힘든 불황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우려되고 있는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도래할 위험이다. 경제 여건이 어려워질 때 디플레 위험이 높아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먼저 살펴보자.

상품시장이 가장 큰 타격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상품(commodity:원자재), 그 가운데에서도 원유시장이었다. 연초 이란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부각되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2월 말부터 급락세로 돌아섰다. 급기야 배럴당 10달러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원유 가격의 급락에는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것은 중국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다. 지난 4월17일 발표된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은 -6.8%였다. 중국에서 경제통계를 시작한 이후 첫 번째 마이너스 성장이다. 물론 원유 가격의 폭락을 유발한 것은 중국의 수요 위축만이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으로 석유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원유 가격 폭락을 유발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참고로 셰일이란 오랜 세월 진흙이 쌓여서 이루어진 퇴적암층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석유는 지하의 고온·고압 환경에서 유기물이 풍부한 셰일 암석층에서 생성되어 지표면 가까이로 점점 이동한 다음 단단한 암석층 아래에 고이게 된다. 석유 기업들이 기름을 채취하는 주된 지층이다. 대표적인 곳이 중동과 카스피해 연안이다.

셰일 암석층은 이보다 훨씬 깊은 곳에 존재한다. 기존 석유 기업들은 이곳까지 시추 파이프를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석유 기업들이 예전에는 석유를 뽑아내지 못하던 셰일 암석층에서 손쉽게,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셰일오일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석유시장의 판도가 달라졌다.

셰일오일의 생산단가는 계속 떨어져왔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미국 셰일 기업이 1배럴을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단가가 8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며 60달러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바로 지속적인 생산량 증가 때문이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노동자들의 숙련 수준이 높아지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며 나날이 셰일오일의 생산단가가 떨어진 것이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은 미국이 2020년을 전후해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전환되리라 전망한다.

중국 수요 위축, 셰일오일 등의 요인으로 인해 낮은 유가 수준이 지속된다면 물가는 상당한 하락을 경험할 것이다. 정부 관련 연구소의 추정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 상승할 때 그해 소비자물가는 0.1% 오른다. 물론 유가 상승과 하락의 효과가 동일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거의 50% 이상 하락한 것은 우리 경제에 매우 큰 디플레 압력을 가한다고 볼 수 있다.

과잉 재고 문제도 디플레 위험을 높여

국제유가 폭락만 디플레 위험을 높이는 게 아니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목표 수준(2%)을 밑돌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위 〈그림 1〉은 한국의 ‘GDP 갭(실제 GDP-잠재 GDP)’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흐름을 보여준다. GDP 갭이 2012년 이후 마이너스로 전환하고 소비자물가도 내내 2%를 밑도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GDP 갭은 경제 내에 존재하는 과잉 재고를 보여주는 척도다. 실제 GDP가 잠재 GDP(경제가 달성 가능한 수준)보다 높으면 GDP 갭은 양(陽)의 값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경기가 과열되었고 재고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의 경우는 경기침체와 재고 증가를 가리킨다. GDP 갭과 물가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자동차회사 B를 예로 들어보자. B사는 연간 생산능력이 100만 대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신형 모델의 인기가 좋아서 연 120만 대의 주문이 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재고가 동나고 또 몰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하루도 쉬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공장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은 몰라도 이런 일이 1년 혹은 2년 이상 지속된다면 결국 가격을 인상해, 과다한 수요를 진정시키려 들 것이다. 텔레비전에 소개된 맛집들이 ‘밥값’을 차츰차츰 인상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본 바 있다. 이처럼 기업의 생산능력 이상으로 주문이 밀려들어 올 때 GDP 갭은 양의 값으로 나타나고 물가는 인상된다.

반대로 연간 주문량이 고작 80만 대에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 GDP 갭이 음(陰)의 값으로 나타나는 경우에 유비할 수 있다. 20만 대에 이르는 재고를 어떻게든 처분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더 나아가 파트타임 노동자를 해고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판매 부진이 2년 혹은 3년간 이어지며 재고가 계속 쌓인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여건마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제품 가격도 인하할 것이다.

이 비유에서 보듯, 한국은 8년 넘게 재고가 쌓이고 있는 공장이나 진배없다. 이런 여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충격을 감안할 때,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의 물가성장률은 제로 수준 혹은 그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무역분쟁 심화, 물가 오를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미국이 코로나19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책임을 물으며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무역분쟁이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율을 높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지속적인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미 수출물가(위 〈그림 2〉의 파란 선)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중국이 미국의 대규모 관세 부과에 맞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5월25일에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달러에 대한 위안화 환율을 12년 만에 최고치(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12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는 의미)인 7.12위안으로 고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중국산 상품이 미국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인하되기 때문에 관세 부과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물가가 떨어진 두 번째 이유는 중국 정부가 수출을 주도하는 국영기업에 특혜를 제공한 데 있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주택 PIR(Price to Income Ratio: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배율)이 10배(집값이 연소득의 10배)로 일정하다고 가정해보자. 소득이 가파르게 늘어나면 주택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한 별다른 충격이 없으면, 1인당 소득 역시 명목 경제성장률만큼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장은 기업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므로 인력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따라서 임금도 인상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간 소득이 10% 가까이 늘어나는 나라(=중국)의 금리가 3.0%라면?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대박을 누릴 것이다. 왜냐하면 3%의 이자를 부담하고 돈을 빌려서 주택을 구입할 경우, 주택 가격이 연간 소득만큼 상승하는 데다 지렛대 효과(가진 돈이 적어도 빌린 돈으로 주택 등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효과)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금리가 1인당 소득 증가(혹은 명목 경제성장률)에 비해 지나치게 낮을 때에는 강력한 ‘대출 수요’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대출 수요가 늘어나면 금리가 올라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부가 금리를 낮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국영기업들이 저금리 대출의 혜택을 누린다. 그 덕분에 자금 사정이 넉넉해진 중국 국영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인상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공산이 크다.

물론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가 장기화한다면,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중국 기업들도 제품 가격을 올리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2~3년 내에는 중국이 수출제품 가격을 대대적으로 인상하며 글로벌 인플레 압력을 높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5월26일 서울 망원시장이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긴급재난지원금 등으로 다소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디플레가 뭐가 문제라고?

물론 생필품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소비자 처지에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로 보면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디플레이션은 결국 ‘장기 불황’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B 자동차회사 사례에서 본 것처럼, 물건이 안 팔려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또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상황이 경제에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는 소비와 투자가 연쇄적으로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앞으로 제품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누가 정가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려 할까? 소비자들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며 구입을 늦출 것이다. 이런 기대가 자리 잡으면, 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할 의욕을 가지기 어렵다. 열광적인 마니아층이 제품을 구입하고 이들이 입소문을 퍼트리면서 히트작으로 발돋움하는 선순환이 원천 봉쇄되는 셈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 경제에 지속적인 악순환이 발생한다. 기업들은 혁신을 게을리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가계는 소비를 미루고 저축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을 방치하면, 자칫 지난 30년 동안의 일본처럼 기나긴 불황에 접어들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책 당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단 가장 먼저 할 것은 금리를 인하하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이다. 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실질적 이자 부담이 높아질 때 정책금리를 인하하면 이로 인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통화정책만으로는 ‘악순환’을 저지하기 어려우리라 판단된다. 왜냐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재택근무를 유도하고, 또 쇼핑몰이나 백화점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면 경제 전체의 활력이 둔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매출이 줄고 파트타임 노동자의 생계 문제가 부각되는 지금 같은 시점에서는 금리 인하의 효과가 제약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정책이다. 즉,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소득층 가계에 ‘푸드 쿠폰’을 지급하는 일부터 공공의료 시스템에 대대적인 인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일, 더 나아가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에게 긴급자금 지원을 하는 일까지 재정이 투입될 곳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차 추가경정예산의 집행이 이뤄졌는데도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재정 투입 규모가 상대적으로 낮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코로나19 대응 주요국의 재정 및 통화금융 정책’, 2020년 4월20일).

경기하강 위험이 대두되고 있음에도 재정정책 시행이 지체되는 이유는 대규모 재정정책 시행으로 정부부채 규모가 높아질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크게 하향되는 등의 곤경에 처하리라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 등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대거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시행하고 있기에, 한국만 ‘유독’ 재정 여건이 악화되리라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오스트레일리아인데, 이 나라는 제로금리 정책을 펼친 데 이어 정부가 발행한 국채금리의 상한을 0.25%로 통제하는 등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물론 피치를 비롯한 세계적인 신용평가 회사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대한 경고라기보다 이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가 그만큼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주는 징후로 해석하는 편이 올바를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재정정책을 시행한다고 해서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대적인 유출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은 과거보다 낮아 보인다.

이뿐 아니라 최근 시장금리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재정정책의 악영향을 약화시킬 요인으로 보인다. 제로금리 수준으로 시장금리가 떨어졌기에, 정부가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하더라도(대규모로 돈을 빌려도), 빌린 자금에 대한 이자 부담이 매우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경제 내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워낙 강하므로 정부의 대규모 채권 발행이 시장금리의 급등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물론 이상과 같은 대규모 재정정책이 취해지더라도 2020년 한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내수경기가 무너진 데다, 수출마저 선진국 수요 위축의 영향으로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야말로 정부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일시적인 해고가 ‘장기 실업’으로 연결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기업이 ‘파산’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불황기에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홍춘욱 (EAR 리서치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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