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코로나19 재난을 계기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뜨거운 의제로 등장했다.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취업자들이 사회안전망에서도 배제되어 있는 우리 현실이 여실히 알려진 결과이다. 사실 알고 있었음에도 생색내기 조치에 안주해왔던 안이함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실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실업안전망’을 가지려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게 접근하고 실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라고 선언했다. 우선 예술인·특수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의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단계론이다. 보통 사회정책 논의에서 ‘단계적’이 합리적 방식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다르다. 여기서 단계론은 기존 안이함을 다시 드러낼 뿐이다. 진정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말하려면 ‘전면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약 2700만명 중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무려 약 1200만명이다. 이들은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학습지 교사와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 고용 노동자, 근래 빠르게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고용보험은 노사가 절반씩 보험료를 내는 제도이건만 이들에게는 법적으로 사용자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다.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계적 추진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다양한 불안정 취업자들에게 사용자 짝을 정하는 일이다. 이는 사회보험 영역뿐만 아니라 노사관계에서 노동자성, 사용자성을 다투는 무거운 사안이다. 결국 단계론은 고용보험 확대를 위해 노사관계의 전통적 과제까지 함께 풀어야 한다. 전속 사용자가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힘겹게 고용보험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다음엔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플랫폼 노동자가 숙제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실현하려면 고용보험에서 사용자 요건을 없애야 한다. 임금, 고용관계를 넘어서자는 이야기이다. 임금이든 수당이든 노동자가 얻은 ‘소득’을 기반으로 가입하면 된다. 누구든 국세청에 신고된 소득의 일정 몫을 고용보험 기여금으로 납부하면 가입이 완료되는 방식이다. 사용자 역시 고용보험에서 자신이 몇 명을 고용했는지 따지지 말자. 자신의 소득, 즉 법인 매출이나 이윤 혹은 사업소득의 일정 몫을 고용보험 기여금으로 내면 된다. 이러면 굳이 사회보험 기여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고용을 회피할 이유도 사라진다. 버는 만큼 고용보험 재정에 기여하므로 사회보험의 연대 가치에도 더 부합한다.

자영업자 가입 확대를 위해 국가의 사용자 역할이 필요하다

자영업자 가입도 후순위 과제로 미룰 일이 아니다. 종합소득세 과세체계에서 사업소득이 실제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건 과세 행정이 낳은 문제이다. 근로자 연말정산 공제와 형평성을 맞추고, 영세 자영업자의 납세 절차를 간편하게 한다는 이유에서 필요경비 공제를 후하게 인정한 결과이다. 반면 실제 소득이 근거가 되어야 하는 근로장려금 제도에서는 과세체계의 사업소득과 달리 총수입에서 업종별 조정률을 적용한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소득기준 역시 현행 근로장려금 제도를 활용하거나 보완하면 마련될 수 있다.

2012년부터 자영업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허용되었다. 그런데 임의 가입이고,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현재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가 거의 없는 이유이다. 자영업자 가입 확대를 위해 정작 필요한 건 국가의 사용자 역할이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제안하려면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용자 몫을 지원하겠다고 천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이야기한다. 첫 관문이 전 국민 고용보험제다. 단계론에 안주하지 말자.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