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크로 베이비파우더를 만들 때에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위는 전북 완주군 한 폐광 창고에 방치된 탤크.
‘정성’이 ‘독’이었다. 짓무르지 말고 예쁘게 자라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베이비파우더로 아기 엉덩이를 두드려주던 엄마들은 경악했다. 국산 베이비파우더에 석면이 함유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국제암연구소(IARC) 보고서에는 “회음부에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한 것이 원인이 되어 난소암에 걸린 여성이 있다”라고 쓰여 있다. 아기 엄마 얼굴이 석면가루처럼 하얗게 질릴 일이다.

‘몰라서’ 일어난 일일까? 베이비파우더의 주원료 탤크(talc:활석)는 분명히 석면과 다른 물질이다. IARC는 각종 물질의 발암 가능성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인 반면 탤크는 3급으로 유해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분류에는 ‘석면이 들어간 탤크’에 대한 설명도 별도로 명시되어 있다. 폐암·폐기종 등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다. 유해성을 따지면 ‘석면이 포함된 탤크’는 탤크라기보다 석면에 가깝다.

문제는 ‘석면이 들어간 탤크’를 석면이 아닌 탤크로만 여기면서 발생했다. 국내에서는 석면이 0.1% 이상 포함된 탤크에 대해서만 수입과 사용을 규제한다. 석면이 소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석면 파우더’ 논란을 일으킨 업체에 탤크를 공급한 덕산약품공업은 자체 제작한 〈물질안전보건자료〉 발암성 항목에 ‘ IARC:없음’이라고 써놓았다(덕산약품공업 측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이렇게 표기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석면이 들어간 탤크로 만든 것은 베이비파우더만이 아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4월9일 ‘석면이 들어간 탤크’를 원료로 사용한 제약회사와 제품명을 발표하고 시판을 중단시켰다. 이 목록에 오른 약품이 1122개다. 로세앙에서 제조한 화장품 5개 품목에도 덕산약품공업이 공급한 탤크가 원료로 쓰였다. 성분분석 결과 이 5개 화장품에서도 석면이 검출됐다. 식약청 조사 결과 석면이 함유된 탤크 원료를 판매한 업체는 국내 탤크 판매업체 38곳 중 8군데이다. 이들이 원료를 공급한 사업장을 전부 조사하면 석면에 오염된 상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석면탤크 파동’은 이미 1987년 일본을 휩쓸고 지나갔다. 일본에서 시판되는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되자 후생성은 “탤크를 베이비파우더의 원료로 사용할 경우 실험을 통해 불순물이 없다고 확인된 것을 사용한다”라는 지침을 마련했다. 일본 정부는 2005년 12월 일본 화장품공업연합회 조사를 근거로 “현재 일본 내에서 유통되는 베이비파우더 중 석면이 검출된 것은 없다”라고 발표했다.

“석면에 노출만 돼도 암 걸릴 수 있다”

2005년 아이를 낳은 김 아무개씨는 “당시 산후조리원에서 선진국에서는 베이비파우더를 쓰지 않는다며 아기에게 로션을 발라줬다”라고 말했다. 일반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베이비파우더의 유해성을 정부는 여태껏 몰랐을까? 4월3일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공개한 식약청의 연구 보고서 〈기능성 화장품의 안전성 평가 연구(화장품 원료의 안전성 재평가 연구)〉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되거나 문제시된 원료에 대한 안전성 재평가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료된다”라는 연구 결과와 함께 지적된 원료 목록에는 ‘탤크(14807-96-6/Mㅎ4(SiH203)3/연마제, 흡수제, 부형제, 피부보호제)’가 포함됐다.

엄마가 뿔났다. 4월8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는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자 집단소송 예비모임(위)’이 있었다.

이 보고서는 5년 전인 2004년 작성된 것이다. ‘석면 파우더’ 논란이 일자 애초에 식약청은 “인체 위해성에 대한 연구 결과가 없다”라며 사안을 축소하려고 했다. 베이비파우더에 함유된 석면의 양이 미미해 인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일부 전문가는 “석면은 호흡기 계통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먹거나 피부에 접촉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석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석면은 발암물질이고 암은 역치(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 자극의 세기를 나타내는 수치)가 없는 병이다. 얼마만큼 노출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암에 걸릴 가능성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2년 전 지나간 석면탤크 파동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포털 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 ‘베이비파우더 피해자 모임’ 카페를 만들고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4월8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자 집단소송 예비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식약청은 뒤늦게 방침을 바꿔 문제가 된 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판매 중지 조처를 내렸다.

소비자의 분노에 밀려 석면이 포함된 탤크 제품을 만드는 작업장 근로자의 건강 문제는 수면 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석면추방운동을 벌였던 스즈키 아키라 씨는 “일본에서는 탤크 관리자의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가 7건 있다”라고 말했다. 고무타이어 제조업체에서 탤크를 다루던 노동자가 폐 질환 중 하나인 흉막중피종으로 사망한 1990년 이후 일본은 노동성 차원에서 ‘탤크가 들어간 석면의 위험성’에 관련된 지침을 마련했다.

석면특별법 제정을 추진한 박영만 변호사는 “사업장에서 석면 재해가 줄어든 것은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주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석면은 소량으로도 암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탤크를 다루는 노동자도 석면을 다루는 사람에 준하는 보호를 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노동부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석면 취급 근로자에 대해 정기적으로 특수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석면 취급 업무에 3년 이상 근무한 이직·재직 근로자에게 건강관리 수첩을 발급해 매년 무료로 건강진단을 받도록 한다. 최예용 부소장은 “석면 취급 업무에만 적용한 규정을 석면이 불순물로 포함되는 물질 등을 다루는 업무까지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석면이 들어가지 않은 탤크’에 대해서도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다. IARC에 따르면 발암성이 낮다지만 다른 질병을 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순수 탤크도 호흡이나 피부 접촉으로 기계적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눈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석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에도 바쁜 한국에서 탤크의 위험성을 점검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