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다 - 행복한 방구석  다시 볼만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켄 로치
출연:데이브 존스·헤일리 스콰이어·딜런 매키어넌·브리아나 샨

 

대략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난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가세가 기울어 반지하 셋방으로 밀려난 가족의 막내였다. 한번은 구청인지 어딘가에서 쌀을 준다기에 갔다. 기념사진을 찍더니 정부미 한 포대를 내게 안겼다. 그 사진은 뭘 기념하는 것이었을까? 자신의 빈궁을 증명한 대가로 쌀을 얻은 청소년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기념?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열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던 기억. 정갈하고 세련된 친구들의 반찬 앞에서 마냥 촌스러워 보이던 나의 콩자반. ‘게스(GUESS)’ 점퍼가 유행하기에 몇 날 며칠 엄마를 조른 기억.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당신이 사오신 점퍼 등짝에 ‘GEUSS’라고 적힌 줄도 모르고 입었다가 망신당한 나의 오후. 가난의 기억은 그렇게 디테일하다. 그리고 집요하다.

다행히 내가 겪은 가난은 짧았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내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과 또 다른 누군가에겐 끝까지 내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두 개의 돌덩이 밑에서 기어 나오니 겨우 좀 살 것 같았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나는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안 울 줄 알았는데 두 번째도 펑펑 울어버렸다. 특히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가 푸드뱅크에서 허겁지겁 통조림을 따는 장면. 배고픔과 수치심으로 울먹이는 엄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딸 데이지. 그리고 밑창 떨어진 신발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받았다고 데이지가 말하는 또 다른 장면. 딸을 품에 꼭 안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해줄 게 없는 엄마.

가난의 기억은 데이지에게도 디테일할 것이다. 수시로 떠오르는 사소한 열패감들이 아이를 자꾸 주눅 들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내 빈곤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과 또 다른 누군가에겐 끝까지 내 곤궁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두 개의 돌덩이에 짓눌린 아이의 꿈은 점점 납작해질 것이다. 불행히도 데이지의 가난은 짧지도 않을 것 같다. 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이미 영화 안에 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연민을 자아내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대사도 기억에 남지만, “우릴 도와주셨죠? 저도 돕고 싶어요”라는, 연대를 실천하는 데이지의 한마디가 나는 더 좋았다. 연민이 ‘선별적 복지’의 언어라면, 연대는 ‘보편적 복지’의 언어. 나의 실패와 비참을 쉼 없이 입증하도록 강요하는 현 제도는, 이 영화의 강력한 라스트신 앞에서 그만 무용해지고 만다. 그리하여 생텍쥐페리가 〈야간비행〉에서 던진 이 질문이 곧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질문이 된다. “우리는 항상 마치 무언가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는 듯이 행동하지. 그런데 그게 무엇인가?”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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