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n번방’의 최초 개설자인 문형욱이 5월18일 경찰서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텔레그램 ‘n번방’의 최초 개설자로 알려진 문형욱이 검거되었다. 대화명 ‘갓갓’으로 활동한 문씨는 올해 초 조주빈이 운영하던 ‘박사방’에 들어가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검거된 후 신상이 공개된 조주빈(대화명 ‘박사’), 강훈(대화명 ‘부따’), 이원호(대화명 ‘이기야’), 문형욱(대화명 ‘갓갓’)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아직은 앳돼 보이는 청년들이 랜선 너머에서 피해자를 악랄하게 괴롭히던 가해자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의 범죄 행각은 향후 수사 및 공판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텔레그램이나 암호화폐를 이용함으로써 자신들은 발각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그들을 대담한 범죄로 나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고, 그 어떤 기관에도 이용자 및 통신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를 매개로 벌어지는 범죄를 수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암호화나 익명화 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수사 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범죄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토르(Tor)와 같은 특별한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oratory)는 가상의 오버레이 네트워크(Overlay Network)를 통해서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디 어니언 라우팅(The Onion Routing, TOR)’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다만 이 기술이 독점적으로 사용될 경우 특정 방문자의 익명성은 보장될 수 있으나 해당 기술을 보유한 미국 정부가 접속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미국 정부는 아예 무상으로 소스 코드를 공개해버렸다. 다크웹은 국가의 감시나 검열을 피해 표현의 자유나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암호화된 패킷을 보냄으로써 익명성이 담보된 다크웹은 범죄의 온상이 되기에도 적합했다. 이러한 실상은 2013년 마약 암거래 사이트인 ‘실크로드(Silk Road)’의 운영자가 체포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실크로드는 ‘공포의 해적 로버츠(Dread Pirate Robert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가 2011년 2월 개설한 다크웹이다. 토르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이 사이트에서는 마약이나 무기, 아동 성착취 영상, 위조 신분증, 불법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및 해킹 도구 등이 거래되었고, 살인청부까지 이루어졌다. 그 결제 수단으로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이용되었다. 실크로드가 마약 따위의 암거래 시장으로 활성화되자 미국에서는 이를 수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TF에는 연방 법무부와 검찰청,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 비밀경호국, 국세청 등이 참여했으며, TF 소속 비밀요원들은 수사를 위해 해당 사이트에 잠입했다.

잠입수사를 진행하던 요원들은 실크로드 계정 관리자인 커티스 클라크 그린을 체포했고, 그를 통해 실크로드 사용자들이 서로에게 보낸 사적 메시지는 물론이고 울브리히트를 포함한 실크로드 관련자들의 비트코인 계정 정보 등을 취득했다. 울브리히트를 검거하기 위해 그린 등에 대한 기소를 미루며 잠입수사를 계속하던 중, 실크로드 사이트에서 비트코인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2013년 2월 울브리히트는 사건의 범인이라 여긴 그린을 죽이고자 청부살인을 의뢰했고, 잠입수사 중이던 비밀요원이 이를 맡게 된다. 이후 잠입요원들은 마치 청부살인이 진행된 것처럼 그린의 사망을 조작하여 증거 사진을 보내는 등 울브리히트와 연락을 이어갔다.

2013년 7월 울브리히트는 ‘알토이드(Altoid)’라는 닉네임으로 실크로드 포럼에 광고 메시지를 게시한 다음, 같은 이름을 사용해 비트코인 포럼에도 구인 광고를 게시했다. 이때 구직자들이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를 기재했다. 이를 포착한 수사기관은 구글을 통해 계정 소유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한편, 해외 호스팅 회사로부터 실크로드의 IP 주소를 확인한 후 서버 해킹에 성공한다. 마침내 2013년 10월 실크로드 서버는 압수되었고, 울브리히트는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한 도서관에서 체포되었다.

ⓒAP Photo마약 암거래 사이트였던 ‘실크로드’ 홈페이지(위). 2013년 10월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열린 실크로드 개설자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의 재판 스케치 모습(오른쪽).

2년에 걸친 실크로드 잠입수사

실크로드 사건에서 울브리히트를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수 덕이었다. 암호화·익명화라는 기술적 특징으로 인해 다크웹의 운영자나 이용자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기술 자체가 아무리 완벽할지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실크로드 사건에서 비밀요원들은 2년여에 걸쳐 잠입수사를 진행했고, 사이버 공간을 직접 대상으로 한 네트워크 수사 기법도 활용되었다. 특히 비밀요원들은 여러 사람의 신분을 가공한 후 다크웹 내에서 마약 거래를 위장하거나 청부살인을 수주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마약이나 도박 및 성매매 범죄 등을 수사하기 위해 잠입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자칫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개입하여 대상자의 범의를 유발하거나 수사기관이 범행에 관여한 정도가 클 경우에는 위법한 함정수사로 평가될 수 있다. 다크웹상에서 범죄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사관이라는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일정한 신분을 가공해서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잠입수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유관 부처를 중심으로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한편 실크로드 사건에서 잠입수사에 참여한 비밀요원 중 일부는 승인되지 않은 신분을 가공해서 울브리히트에게 접근한 후 수사 정보와 비트코인을 교환했다. 수사 과정에서 실크로드 계정의 비트코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이 사건에서 잠입수사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유용한 수단이 되었지만 통제되지 않은 요원들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텔레그램이나 다크웹 등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잠입수사가 필요하다. 다만 잠입수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통제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할 것인바, 향후 입법 과정에서 그 대상과 요건 및 절차 등이 정치하게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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