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5월13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시민들이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섯 손가락은 5대 요구사항을 뜻한다.

지난 5월15일, 홍콩 시위에 참여했던 시위자에 대한 법원의 첫 유죄판결이 나왔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 1년 만의 일이다. 2019년 6월12일은 홍콩 입법회에서 송환법 표결이 예정된 날이었다.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입법회 주변에 모였다. 경찰은 최루탄과 최루액을 쏘며 시위대와 처음 충돌했다. 그날부터 홍콩에선 송환법을 반대하고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시위가 거의 매주 열렸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시민 약 8000명이 체포되었다. 이 중 학생이 40% 정도를 차지한다. 폭동죄로 기소된 560명에게는 4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5월15일, 보고서 하나가 공개됐다. 홍콩 경찰 감시기구인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서 경찰 진압 과정의 적절성을 검토한 보고서를 무려 11개월 만에 공개한 것이다. IPCC가 경찰 조사에 착수한 건 지난해 7월이다. 시위대의 5대 요구 중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인 진상규명 조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독립 조사위원회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기존 경찰 감시기구인 IPCC를 통해 경찰에 대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해외 전문가 5명을 초빙해 IPCC 조사를 위탁했다.

문제는 IPCC 위원 전부가 행정장관 위촉으로 구성된 데다 강제조사권과 증인소환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들은 조사의 중립성과 공평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해왔다. 2019년 12월 해외 전문가팀이 “IPCC는 충분한 권한과 조사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라며 집단 사임한 사건도 있었다. 경찰의 강경 진압과 7·21 윤롱(위안랑) 백색테러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요구는 잦아들지 않았다. ‘백색테러 사건’은 2019년 7월21일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옷을 입은 남성 100여 명이 쇠막대기와 각목 등으로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한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IPCC 최종 보고서는 이런 기대를 좌절시켰다. 보고서는 유혈 사태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과잉 진압 여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보고서는 “치안 유지에 시스템적 문제는 없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7·21 위안랑 백색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당시 상황을 잘 처리할 기회를 놓쳤다”라고 판단한다. 특히 당일 경찰서에 접수된 응급 전화가 2만4000통으로 기록되는데 “이 수많은 응급 전화들은 응급센터를 마비시킬 정도로 무책임하고 파괴적이다”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홍콩 시민은 보고서를 보고 분노를 표했다. 그는 7월21일 시위가 끝난 뒤 위안랑 역에서 구타를 당한, 백색테러 사건의 피해자다. “내 상처는 잘 회복되었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이 보고서가 진실을 밝힐 줄 알았지만 실망했다. 경찰 책임마저 묻지 않았다.” 입법회 민주파 진영도 “경찰 편에서 선입견을 가진 보고서”라고 지적하며 카메라 앞에서 이 문건을 찢었다. 사임한 IPCC 해외 전문가는 이 보고서가 못마땅하다며 다음 달에 보고서를 따로 내기로 했다. 앤서니 니오 IPCC 위원장은 보고서가 경찰 편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에 반박했다. 그는 “경찰 개인 행위보다는 사건의 본질을 검사하는 것이다. 갖고 있는 증거로만 진실을 분석할 수 있다”라면서도 “진실은 하나님만 안다”라고 발언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보고서가 발표된 지 2시간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화면에는 ‘홍콩의 진실(The Truth About Hong Kong)’이라는 글자가 띄워져 있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보고서에 대해 “전면적이고 객관적이며 사실에 기반한다”라고 찬양했다. 기자들이 계속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의사가 있는지 질문했으나 람 행정장관은 “동의하지 않고, 하지 않겠다”라는 반대 의견을 재확인했다. 또한 그는 “시위의 성격이 폭력을 이용해 정부를 굴복시키려는 운동으로 변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캐리 람 행정장관은 “2011년 영국 런던 폭동 이후 영국 정부가 사회갈등을 분석하기 위해 설립한 ‘독립검토위원회’처럼 시위 사태의 근본 원인을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면서 계획은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람 행정장관은 “현 상황에서 위원회 멤버를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홍콩 시위 방식

지난해 11월 중문대학, 이공대학 등 대학 캠퍼스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다수 체포된 이후로는 주말마다 열리던 대규모 행진도 한동안 중단됐다. 해가 바뀌면서 코로나19가 시작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어려워졌다. 홍콩 정부가 3월 말부터 4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인해 행진과 집회가 불가능해졌다. 5월이 되면서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시위자의 모임 방식은 예전과 달라졌다. ‘당신과 같이 노래하자’라는 프로젝트가 쇼핑몰에서 예고 없이 진행되고 있다. 송환법 반대 시위 1주년을 맞아 항쟁 정신을 잊지 않고, 구속된 시위자들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이다. SNS를 통해 불시에 모인 시민들은 쇼핑몰에서 ‘영광이 다시 오길’을 부르며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 구호를 외친다. ‘영광이 다시 오길’은 지난해 대규모 집회에서 자주 불렸던 노래다. 5월10일 경찰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쇼핑몰에 모인 시민들을 해산시키며 일부를 체포했다.

항쟁은 길거리에서 생활 속까지 이어졌다. 시위자들은 이른바 ‘노란 경제권’을 만들었다. 2014년 우산혁명 때 노란 우산이 운동의 상징이었던 만큼 이번 시위와 시위자를 응원하는 상점들을 ‘노란 가게’로 부르며 이곳에서만 소비하는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반대로 친정부나 친경찰 측 상점들은 ‘파란 가게’라 지칭하고 보이콧한다. 지난해부터 시위를 벌인 이래 ‘노란 경제권’이 점점 커지자 올 5월 초에는 중앙인민정부 홍콩 특별행정구 연락판공실이 이 ‘노란 경제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올해 6월은 홍콩인들에게 바쁜 달이다. 지난 30년 동안 6월4일 톈안먼 시위 기념집회를 매년 진행해왔다. 올해부터는 송환법에 반대하기 위해 100만명이 처음 모였던 6월9일 대행진 1주년이 추가되었다. 이 밖에도 6월12일(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한 날), 6월16일(200만명 이상 모인 대규모 집회) 등 기념할 날짜가 많다. 하지만 5월19일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8인 이상의 모임과 집회를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6월4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톈안먼 시위 기념집회를 포함해 6월에 예정됐던 집회들을 진행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가 홍콩 시위대의 기대에 가까워질까 혹은 멀어질까. 폭동죄로 기소된 시민 560여 명에게는 여전히 법원의 선고가 남아 있고, 독립적인 진상규명 조사는 요원하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지난해 9월 송환법을 철회한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홍콩 시위가 여전히 계속되는 까닭이다.

기자명 관명린 (홍콩 라디오텔레비전(RTHK) 에디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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