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대형 서점마다 바이러스와 감염병 코너가 따로 있다. 묻혀 있던 훌륭한 책들도 절판 위기를 넘기고 다시 읽힌다. 역사가 윌리엄 맥닐이 쓴 〈전염병의 세계사〉도 그런 책이다. 전염병은 역사학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배경이나 무대장치에 더 가까웠다. 무대장치에 탐닉하는 관객이란 아무래도 좀 낯설다. 맥닐은 아주 독특한 역사가다. 그는 하늘에 떠 있는 ‘새의 눈’으로 역사를 다룬다. 맥닐의 관심사는 인류사에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게 보여주는 인류사의 구조와 패턴이다.

맥닐이 보기에 인류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기생하려는 두 전략의 역사였다. 그는 이걸 ‘거시기생’과 ‘미시기생’이라고 불렀다. 거시기생이란 세금을 걷어가고 노역을 시키고 때로는 약탈하는 힘, 그러니까 무력을 쥔 지배자들이다. 그리고 미시기생이란 인류를 배양처 삼는 기생충과 바이러스 같은 미시생물이다. 전염병은 역사의 무대장치가 아니라 역사를 결정하는 힘이다. 맥닐은 거시기생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전쟁의 세계사〉도 썼다.

이 간단한 개념 틀로 인류사 전체를 종횡무진하는 솜씨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우리 시대의 슈퍼스타가 떠오른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가이면서도 개별 역사보다 구조와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맥닐의 후계자다. 차이도 있다. 하라리의 책은 구조와 패턴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구체적인 역사는 잠깐씩 논거로만 등장한다. 맥닐은 자신이 지목하는 구조와 패턴이 정말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러 실제 역사로 뛰어든다. 그래서 그의 책은 ‘새의 눈’으로 역사 전체를 조망하다가도,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급강하하여 현기증 나도록 세밀하게 역사를 파고든다. 유발 하라리에서 가독성과 비약을 덜어내고 밀도와 깊이를 더하면, 그게 윌리엄 맥닐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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