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작전’에 명운을 건 트럼프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61
  • 승인 2020.05.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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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1월까지 코로나19 백신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유례없는 기한 단축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개발되면 FDA에 대한 승인 압력이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AP Photo3월16일 미국 카이저 퍼머넌트 워싱턴 보건연구소에서 백신 후보 약품을 임상시험하고 있다.

미국의 거대 제약사들과 바이오 기업들이 정부와 손잡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 연말까지 백신 개발을 완료한 뒤 내년 1월부터 백신을 공급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최소 70개 이상의 백신 개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굴지의 제약사인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머크, 이노비오, 바이오 기업체인 모더나, 공공기관인 국립보건원(NIH) 등이 선두 주자다. 이미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한 업체들도 있다. 가을까지 임상시험을 완료하겠다는 것이다.

모더나는 지난 4월 초 건강한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5월 중에 600여 명에게 백신을 투여해 항체 생성 결과를 지켜본 뒤 올가을까지 최종 시험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면 올 연말까지 백신 개발을 완료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판매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NIH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백신 연구진과 공동으로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붉은털 원숭이 여섯 마리에게 백신을 투여한 실험이 성공했다. 5월 들어서는 인체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중 1000명에 대한 임상시험을 완료하면 6월에 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2, 3차 추가 실험에 나설 계획이다. NIH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백신을 개발한 바 있다.

거대 제약사 화이자도 발 빠르게 임상시험에 나섰다. 뉴욕대 의대와 메릴랜드대 의대는 화이자로부터 제공받은 ‘백신 후보’ 4개 중 하나를 건강한 자원자들에게 투여하고 있다.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실험 결과 안정성이 입증되는 경우, 이르면 오는 가을에 비상용 백신을 내놓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가을에 FDA 승인을 받을 수 있다면, 연말까지 백신 2000만 개를 공급할 계획이다. 화이자는 백신 연구 및 개발에 5억 달러, 백신 생산공장 건설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 상태다. 존슨앤드존슨도 내년 초까지 비상용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신 업체로 이름난 머크는 3종의 다른 기술을 이용한 여러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신 개발 기간은 평균 5~10년이다. 동물 및 인체 실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한 뒤 FDA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 이후에야 상업화할 수 있는데 이에 성공할 확률도 6%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빠르게 진화하며 새로운 변종으로 거듭나는 반면 연구와 개발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에볼라 백신이 개발돼 FDA의 승인을 얻기까지 5년이 걸렸다. 신생아와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설사를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에는 무려 26년이 소요되었다.

ⓒAP Photo앤서니 파우치 NIAID 소장(왼쪽)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코로나19 대응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될 수 있다는 자체가 희망”

이런 측면에서 올해 초 발병이 본격화된 뒤 5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4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속히 확산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의 핵심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아무리 빨라도 백신 개발에 12~18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신속한 개발을 서두르면서 상황이 급반전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알렉스 아자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신속한 개발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행정부 관리들은 3~4주 동안의 집중 논의를 거쳐 비상 계획을 마련했다. 경제 전문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해당 계획의 이름은 ‘초고속(Warp Speed) 작전’이다. 목표는, 늦어도 내년 1월까지 코로나19 백신을 내놓는 것. 미국 정부는 가용자원을 총동원해서 백신 개발에 참여한 제약사들을 전폭 지원하기로 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RADA)은 10억 개 이상의 백신 개발 및 공급 계약을 위해 존슨앤드존슨에 1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모더나는 백신 후보 개발용으로 4억830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초고속 작전’에 참여한 파우치 소장은 NBC 방송에서 “내년 1월까지 수억 개 백신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며 이렇게 전망했다. “임상시험의 1단계가 진행 중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한다. 이런 효과들이 확인되면, 제약사들이 대량생산에 돌입할 것이다.”

문제는 사상 유례없는 백신 개발의 기한 단축이 가져올 위험성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신 개발의 핵심은 대규모 임상시험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신속한 백신 개발에 최대의 역점을 두는 만큼 임상시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는 단계마다 수년씩 걸리는 임상시험 과정을 진득하게 밟아나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임상시험에 나선 미국의 일부 제약사들은 신속한 백신 개발을 위해 유전자 전달물질인 리보핵산(RNA) 유전자 기술을 활용 중이다. 하지만 RNA 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백신은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승인된 적도, 생산된 적도 없다.

코로나19의 확산성을 감안하면 신속성에 무게중심을 둔 백신 개발 계획을 비판만 하기도 어렵다. 화이자의 불라 회장은 “불과 4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임상 전 연구’에서 ‘임상시험’ 단계로 전진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러 제약사들이 진행 중인 임상시험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험에 응한 자원자들로 넘쳐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성을 알면서도 기꺼이 백신 개발에 자원하고 있는 것이다. 임상시험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이언 헤이던 씨(29)는 〈워싱턴포스트〉에 “백신이 개발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며 자원 이유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백신의 신속한 개발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FDA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제시 굿먼 조지타운대 의대 교수는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서두르는 제약사들이 최소 80%의 효과를 입증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플루 독감의 백신 효과가 40~60%인 점을 고려할 때 상당히 높은 기준인 셈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런 높은 기준이 아니어도 백신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가면 FDA에 대한 미국 정부의 승인 압력이 상당하리라 본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고속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속도에 명운을 건 만큼, 개발 완료된 백신들은 까다롭기로 이름난 FDA 승인도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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