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존엄’ 위급한데 동네 보건소에 갔겠나
  • 남문희 기자
  • 호수 661
  • 승인 2020.05.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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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건강 이상설을 처음 제기한 〈데일리 NK〉 보도는 사실 무근에 가까웠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치료는 평양의 봉화진료소에서 전담한다. 청와대도 관련 보도를 믿지 않았다.
ⓒ연합뉴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 소식이 전해진 5월2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크게 세 가지 보도로 인해 촉발-확산-재확산의 경로를 밟았다. 탈북민 출신 태영호·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자는 재확산 과정에 편승했다가 독박을 썼을 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12일 묘향산 지구에 있는 김씨 일가 전용 병원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는 4월20일 〈데일리 NK〉 보도는 ‘촉발’에 해당된다. 이 기사를 이어받은 4월20일(현지 시각) 미국 CNN 방송은 ‘확산’에 기여했다. 한·미 정부는 김 위원장의 원산 체류 사실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그 덕분에 불길이 사그라질 무렵 등장한 4월25일 로이터 통신의 ‘중국 의료진 북한 파견’ 기사는 재확산 내지 증폭의 계기였다.

이 중 CNN 방송 보도는 김정은 건강 이상설에 대한 독자적 취재라기보다 4월20일 〈데일리 NK〉 보도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위중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당국자가 모니터링하고 있다”라고 전함으로써 “심혈관 수술 후 향산 특각(별장)에서 계속 치료 중”이라는 〈데일리 NK〉 보도보다 한발 나간 듯 보였으나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CNN 보도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미국 당국자가 독자 소스를 갖고 한 얘기가 아니라 〈데일리 NK〉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는 취지에서 한 얘기다”라고 확인해준 바 있다.

따라서 맨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데일리 NK〉 보도의 적절성 여부가 이 사안의 핵심이다. 기사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묘향산지구 내 김씨 일가 전용 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 평양 김만유병원 담당 외과의사가 직접 집도했다. 다른 병원 소속의 이른바 1호 의사들이 집결했다.’

북한 노동당이나 외무성, 무역기관 등에서 근무한 고위급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해당 기사의 개연성을 부인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인 리정호씨는 국내 언론 특파원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에 김정은을 치료하는 주치의는 오직 (평양의) 봉화진료소에만 존재하며, 다른 병원에는 1호 의사라는 직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역이나 외교 쪽에 종사했던 고위급 탈북자들 역시 기사의 주요 골격이 거의 ‘사실 무근’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김씨 일가 전용의 향산진료소’나 ‘1호 의사’ 같은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김만유병원은 평양 시민이나 하급 공무원 전용 병원이라고 한다. 이 병원에서 최고 지도자를 치료할 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치료는 봉화진료소의 담당 의사들이 전담한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다른 상급(장관급) 인사들도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는 봉화진료소 안에 최고 지도자 전담팀을 아예 별도로 크게 꾸렸다는 것이다. 의사의 경우, 간혹 평양적십자병원에서 임상수련 과정을 마치고 봉화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 시술에 동원되었다는 ‘다른 병원 소속 1호 의사’에 대해서는, 그런 명칭이나 제도 자체가 없다고 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역시 4월26일 한 포럼에 참석해 “향산진료소에서 김만유병원 의사가 수술했다는 내용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향산진료소는 보건소 수준으로, 수술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데일리 NK〉 측은 추가 보도에서 2014년에 향산진료소를 심혈관 질환 전문병원으로 크게 확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심근경색이 발생할 경우, 최초 5분 동안의 심폐소생술과 2시간 이내 수술이 이뤄질 수 없다면 뇌손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헬기로도 상당한 이동시간이 불가피한 묘향산에 심근경색 치료 시설을 설립했을지 의문이다.

중국 의료진 파견은 병원 건립 연관인 듯  

시술 관련 내용과 별도로 청와대는 김정은 위원장의 당시 일정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정보를 토대로 관련 보도 내용에 신빙성을 두지 않는 입장이었다. 출입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대해 “기사의 톤을 낮추고 할 것 없이 안 받아도 된다”라고 할 정도였다. 5월6일자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나타났듯이 국정원이 광범위한 정보 수집을 통해 파악한 김 위원장의 신상이나 동선 정보를 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시술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방역대책의 일환’(김연철 장관의 표현)으로 4월 중순 이후(문정인 특보는 4월13일 이후라고 특정한 바 있다) 원산에 체류 중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정보는 미국, 일본 정부와도 공유되었다. 4월23일 전후에는 미국과 일본발로 ‘김정은 원산 체류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원산행과 관련해 주목되는 행사는 지난 4월12일 개최된 최고인민위원회 제14기 3차 회의다. 원래 이 회의는 4월10일 열릴 예정이었는데 특별한 설명 없이 이틀 연기되었다. 4월12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모습은 코로나 사태하에서 열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소 충격적이었다. 북한 전역에서 올라온 약 600명의 대의원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북한 내 코로나 확산에 대해 이 회의는 “전국적 규모의 의학적 감시와 격리 사업으로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결론지었다.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마당에 대의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그러나 그 전날인 4월11일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열린 당 정치국 회의는 코로나 문제에 대해 “단기 해소가 불가능한 만큼 국가적 비상방역 사업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단기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현실과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없다’는 체제 선전 사이의 딜레마를 엿볼 수 있다. 그런 딜레마가 결국 정치국 회의 하루 전인 4월10일 열기로 했던 최고인민회의를 다음 날인 4월12일로 옮기고 그다음 날인 4월13일 김 위원장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방역 대책 차원’에서 원산으로 이동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산 체류는 방역 외에도 시급한 건설사업의 독려를 위한 측면도 있다. 원산 갈마지구 관광단지는 원래 지난해 10월10일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올해 4월15일로 늦춰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한 자재난으로 다시 올해 10월10일로 늦춰졌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형식적 의미밖에 없는 4·15 행사 참석보다 원산 현지에서 자재 조달 문제를 지도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수 있다.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결의한 경제 정면돌파전과 올해 코로나 사태 이후 새롭게 제기된 과제 등을 감안하면 올해 10월10일까지 김 위원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원산 갈마지구 말고도 두 개가 더 있다. 하나는, 5월1일 모습을 드러낸 평남 순천의 인비료공장 건설이다. 다른 하나는 평양종합병원 완공 문제다. 원산 갈마지구는 관광과 외화 수입, 인비료공장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 그리고 코로나 이후 급하게 제기된 평양종합병원은 인민의 보건을 위한 치적 사업인 것이다.

4월25일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중국 의료진의 북한 파견은 베이징 현지에서도 중국의 301병원과 협화병원 관계자들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심장수술 때문이라기보다는 코로나 이후 대두된 평양종합병원 건립과 관계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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