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코로나19로 격리되는 동안…
  • 문경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
  • 호수 661
  • 승인 2020.05.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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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취약한 이들을 방역과 안전의 디폴트값으로 삼아야 한다. 장애인은 격리기간에 버려졌다는 공포심과 무력감으로 더욱 고통스럽다. 정책 관계자와 당사자들이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어느 오후, 서울 양재천을 걷는데 휠체어 한 대가 스쳐갔다. ‘아차’ 싶었다. 절친인 장애인권 활동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휠체어와 활동보조사의 도움이 필요한 그녀는 “오랜 사회적 격리로 답답하고 두렵고 힘들다”라고 했다. 같이 한번 걸을걸, 왜 진즉 그 생각을 못했을까.

최근 〈장애를 포괄하는 코로나19 대책〉이라는 자료를 보면서도 자탄했다. 대책은 유럽장애포럼(EDF)이 만들어 유럽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권고한 것이었다. EDF는 유럽 내 수많은 장애인권단체들의 연합체이다. 12개 대주제로 분류된 총 72가지 정책은 세밀하고 촘촘했다. 무엇보다 장애인의 동등한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현재의 사태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깔려 있었다. 투명성·개방성·민주성을 토대로 한 ‘K방역’은 세계의 모범으로 꼽힐 만큼 훌륭했다. 하지만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친화적인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까지는 다가서지 못했다.

ⓒ최우민 제공3월4일 대구의 한 자립지원센터에 거주하던 중증장애인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어 집에 머무르고 있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으며, 취약한 이에게 먼저 닥치고 삶을 더 망가뜨린다. 서울과 대구의 장애인권 활동가와 연락해보니 예상대로였다. 자가격리에 들어간 장애인을 단체 활동가가 방호복을 입고 돌보는 상황까지 있었다. 한 확진 장애인은 병실 부족으로 한동안 혼자 집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었으며, 입원 후에도 간병인이 없어 확진자로 입원해 있던 활동지원사의 돌봄을 받아야 했다. 24시간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어느 어머니는 결국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격리기간에 버려졌다는 공포심과 절망, 무력감으로 고통스러웠다”라고 토로하는 한 장애인의 목소리는 가슴을 아프게 두드렸다.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88%가 격리기간 중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다.

매일 전쟁을 치르듯 방역에 앞장서온 관계 당국으로서는 역부족이고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 힘든데 굳이 장애인을 특별대우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팬데믹이 된 코로나19는 어떤 국경이나 장벽도 소용없이 우리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깨달음을 던져주었다. 각자도생이 얼마나 어리석은 미망(迷妄)에 불과한지, 결국은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방역이든 안전이든 그 기준은 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더 많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법이다.

미국의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이 주도하고 전 세계 254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코로나 19 공동성명’ 또한 “코로나19를 진단·치료·완화·예방하는 데 긴급히 필요한 의료수단은 보건의료 노동자와 취약한 집단에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성명은 G20 보건장관에게 발송됐다.

장애인권단체가 그간의 경험 토대로 제시한 대안

가장 취약한 자를 방역과 안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은 +α로 예산을 좀 늘린다는 뜻이 아니다. 취약한 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방역정책의 디폴트값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예산이 여유가 있을 때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자원이 부족해도 ‘다 같이 함께 살기’라는 원칙하에 자원을 나누는 분배 정의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사IN 이명익

장애인권단체는 그간의 지원활동 경험을 통해 대안을 제시했다. 확진자와 자가격리자의 지원체계, 정보 및 의료시설의 장애 접근성, 생활지원을 할 공공 사회서비스 인력 확보, 매뉴얼 발간 등 굵직한 일부터, 생쌀 대신 조리된 간편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세심한 영역까지 선진 K방역이 점검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이제 정책 관계자와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 방치된 장애인들이 소송까지 했지만 보건복지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인가? 방역의 디폴트값을 재조정하고 이에 따른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일. 이것이 예고된 올겨울 2차 파도까지 남은 시간 동안 방역 당국이 할 일이며, 또 한 단계 국격을 높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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