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pedia런던탑 까마귀는 국가 예산을 들여 보호된다.

영국에서는 국가 예산을 들여 보호하는 ‘미신’이 있다. 바로 런던탑에서 기르는 까마귀들이다. 어째서인가. ‘까마귀가 떠나면 왕실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한다’는 내용의 전설 때문이다.

런던탑의 까마귀와 관련된 전설들이 있다. 찰스 2세와 왕실 천문관 존 플램스티드가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 플램스티드가 ‘런던탑에서 천문 관측을 하려는데 까마귀들 때문에 못하겠다’고 불평하자, 찰스 2세는 까마귀들을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도리어 플램스티드는 까마귀를 내쫓으면 안 된다고 말렸다. 대신 본인이 그리니치 천문대로 근무지를 옮긴다. 그는 까마귀를 죽이거나 내쫓으면 런던탑이 무너지고 국왕도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찰스 2세는 ‘적어도 까마귀 여섯 마리는 런던탑에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내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전설도 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브랜 스타크를 기억하시는가. 하반신 마비에 까마귀를 부리면서 과거와 미래를 보는 등장인물이다. 그런데 이 이름의 ‘브랜’ 자체가 웨일스어로 까마귀를 뜻한다. 또한 브랜이라는 이름은 ‘프러데인섬의 삼제시(Welsh Triads:신화의 인물·요괴·사물 등을 세 쌍으로 묶어 서술하는 형식의 웨일스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일스 전설에 따르면, 브랜이라는 왕이 있었다. 여동생을 아일랜드 왕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아일랜드 왕이 여동생을 구박했다. 브랜은 군을 이끌고 아일랜드로 쳐들어가 승리를 거두긴 했다. 그러나 여동생과 오빠 자신은 숨지고 말았다. 살아남은 기사 일곱 명에게 브랜은 “내 목을 잘라서 갖고 다니라”고 명해놓은 터였다. 비록 잘리긴 했지만 계속 수다스러웠던 브랜의 목은 런던탑에 묻힌다. 프랑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까마귀들이 런던에 몰려든다는 내용이다.

여담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런던을 거의 매일 폭격할 때, 런던탑의 까마귀들은 단 한 마리를 빼고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미신에 비춰보자면 나라가 무너질 일촉즉발의 위기였던 셈이다.

현재 런던탑의 까마귀들은 이곳의 관광자원이다. 다만 아무나 먹이를 주면 안 된다. 까마귀 관리관(Ravenmaster)이 별도로 있는데 영국군에서 최소 22년 이상 근무하고 은퇴한 사람 중에서 선출된다. 까마귀들은 토끼 고기나 피 묻힌 비스킷 같은 간식을 제공받는다. 돌봄을 잘 받으니 출산율도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30년 만의 일이다.

까마귀 태도 불량하면 직위해제 당하기도

이 까마귀들은 앞서 말했듯 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까마귀들의 지위 자체는 ‘종신’직이지만, 영국 정부로부터 ‘해임’될 수도 있다. 특정 까마귀의 태도가 불량하면 정직을 거쳐 최종적으로 직위해제 당한다. 사례가 있다. 1981년 ‘조지’라는 이름의 까마귀가 위수지역(런던탑)을 허락 없이 벗어나 런던의 한 펍으로 갔던 모양이다. 일탈행위를 계속한 그 까마귀는 주의와 경고를 누적해 받았지만 결국 1986년 9월, 텔레비전 안테나를 망가뜨린 사고를 일으킨 후 쫓겨난다.

사례가 하나 더 있다. 1995년 ‘후긴’과 ‘재키’라는 까마귀 커플이다. 새끼를 낳게 하려고 둘을 붙여놓았더니 계속 짜증내고 난동을 부리곤 했다. 런던탑 측은 그 둘의 직위해제를 알리고 동물원으로 보내버린다. 동물원에 보내고 나서야 그 둘의 정체가 드러났는데, 둘 다 수컷이었다.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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