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을지 몰라도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디어의 공해도 한몫을 한다.

사는 데 늘 꽃길만 펼쳐질 수 없지만, 지금 창궐하는 바이러스처럼 세상에는 많은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고, 배가 가라앉고, 테러가 일어나고, ‘묻지 마 살인’이 벌어지는가 하면 온갖 추악한 성폭력 범죄가 발생한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더한 피해는 그런 사건 사고 이후에 가해지는 2차 폭력이다.

책은 다정한 자매 사브리나와 산드라의 대화 장면에서 시작한다. 언니 사브리나 집에 들른 산드라는 나중에 함께 오대호에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고양이를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우리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걸 종종 잊고 지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갑자기 불행이 찾아올 수 있다. 바로 사브리나의 실종이다.

다음은 공군에서 기술병으로 근무하는 캘빈의 집에 어릴 적 친구 테디가 찾아오는 장면이다. 테디는 사브리나의 남자친구다. 사브리나가 실종되자 테디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혼자 지내기 어려운 상태였고, 캘빈 역시 아내와 딸이 떠나버려서 외롭게 지내는 중이었다. 사브리나의 동생 산드라도 언니의 실종이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언니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누구와 함께 있든, 어떤 위로를 받든 매 순간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결국 언니는 끔찍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게다가 언론사에 사브리나의 죽음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도착한다. 그 힘겨운 사실에 더해 세상의 호기심과 끈질긴 집착은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온다. 산드라는 가족이라고 여긴 테디의 미온적인 대응에 화가 나고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은 그의 태도가 불만스럽다. 결국 책 속의 사람들은 모두가 불행하다.

이 책의 제목은 ‘사브리나’이지만, 스토리를 견인하는 주인공은 그녀의 남자친구 테디의 친구, 캘빈이다. 그가 인터넷 시스템의 약점을 찾아 오류를 점검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설정은 이 책에서 참으로 적절하다. 그가 보게 된 인터넷상의 자료는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래픽노블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에 올라

대중은 언론이 보도한 뉴스를 사실로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언론의 왜곡 보도를 너무나 많이 접하며 산다. 어쩌면 거짓이 사실을 압도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미디어와 대중은 끔찍한 사건을 재미로 소비하며 함부로 부풀리고 왜곡한다.

캘빈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지만 사브리나의 남자친구인 테디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과 집 등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된다. 음모론을 믿는 이들은 ‘사브리나 사건’이 시민을 조종하려는 정부의 사기극이라며 진실을 밝히라고 협박 메일을 보낸다. 산드라에게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윽박지르는 사람도, 불쌍하다며 기부하겠다는 사람도, 이유도 없이 죽이겠다고 매일 연락하는 사람도 있다. 남겨진 자들은 이렇게 2차 피해에 시달린다. 평생을 트라우마에 갇혀 산다. 미디어는 또 다른 뉴스가 생기면 먹잇감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고 일상을 파괴한다. 어쩌다 이렇게 잔인한 세상이 되었을까?

책 〈사브리나〉는 50년 맨부커상 역사상 그래픽노블로는 처음으로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숨죽이고 읽을 수밖에 없는 흡입력을 지닌 이 작품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화려하지 않은 그림, 분명히 큰 폭력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에 반하는 잔잔하고 서정적이기까지 한 낮은 목소리는 큰 울림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남는다.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인 양 떠들어대고 호기심으로 댓글을 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