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은 경로당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고봉으로 퍼 담은 밥그릇이 밥상에 오르자 김낙길(65)은 제몫의 밥을 절반 넘게 옆 사람에게 덜어냈다. “내가 위를 3분의 1이나 잘라냈거든.” 김낙길은 스스럼없이 옷을 걷어 개복 수술한 자리를 보여줬다. 2012년 위암 판정을 받았다. 세로로 길게 난 칼자국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했다.

장점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낙길은 현재 익산 시내에 살지만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매일 장점마을로 온다. 어머니 이점례(89)가 오전 8시 ‘할머니 유치원’(노인요양시설 사랑방)에 간 사이 집안일을 해둔다. 이점례는 사랑방에서 노래도 배우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마음 쓰여 김낙길이 하는 ‘효도’다. 김낙길은 “내가 불효자야”라며 화분의 마른 잎사귀를 뜯어냈다.

ⓒ시사IN 이명익한국전쟁이 터지던 해에 장점마을로 시집온 이점례(앞)는 결혼 5년 만에 김낙길을 얻었다.

이점례는 녹내장 수술로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터지던 해에 장점마을로 시집왔다. 이점례보다 일곱 살 많은 남편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산을 옮겨 다니며 잠을 자느라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결혼은 했는데 남편은 통 볼 수 없는 이상한 결혼 생활이었다. 첫아들 김낙길을 얻은 건 5년 만인 1955년이었다.

김낙길은 고령에 눈이 불편한 노모가 혹시나 집안에서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있을까 싶어 벽마다 길게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크고 작은 일을 대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집 뒤뜰의 ‘놀이터’를 가꾸는 일도 열심이다. 한때는 먹을 것을 길렀던 땅에 지금은 눈으로 보기 좋은 것을 기른다. 참빛살나무, 명자나무, 남천 같은 관상식물이 밭고랑마다 자라고 있었다. 마당 입구에 심은 흑광은 참빗살나무 중에서도 귀한 품종이다. “꽃이 솔찮이 크게 펴. 귀한 나무야.”

2011년 어머니 이점례가 대장암으로 왼쪽 배 45㎝를 갈랐을 때, 2012년 자신이 위암 판정을 받고 위 3분의 1을 잘라냈을 때야 금강농산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술 후 5년이 지나고 재발하지 않아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밥을 먹을 때면 꽉 막힌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밥 씹는 일을 멈추고 잠시 기다린다. 느닷없이 눈앞이 빙글빙글 돌거나 반짝일 때도 있다. 의사는 큰 수술을 하고 나면 생기는 후유증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작은아버지 김영환(82)도 위암 수술을, 바로 옆 왈인마을에 사는 매형 역시 위암 수술을 받았다.

ⓒ시사IN 이명익2001년 문을 연 금강농산은 2010년까지 대기 및 폐수 처리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위는 금강농산에서 농업용수가 모여 있는 소류지로 흐르는 물.

떼죽음당한 물고기를 백로가 먹을까 봐…

장점마을 주민들이 익산시에 넣은 민원은 번번이 무시됐다. 공무원은 ‘아무 때나 전화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고, 시의원은 ‘아이고 이렇게 냄새가 나서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떠나면 답이 없었다. “말이나 하지 말지. 아이고 나는 그동안 하도 말을 해서 싫증 나.”  

마을 이장 김인수(70)는 1992년 축사를 하기 위해 현재 터에 집을 지었다. 농업용수로 쓰는 소류지과 금강농산 사이에 위치했다.

2016년 금강농산 아래 소류지에서 물고기 집단 폐사가 일어났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허연 배를 까고 둥둥 떠오른 물고기 떼를 처음 본 이도 그였다. 소류지 물은 마치 하얀색으로 보였다. 물가에는 백로가 죽은 물고기를 먹겠다고 진을 치고 있었다. 첫 번째 떼죽음을 목격했을 때 김인수는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공장에서 흘려보낸 오염된 물 때문에 죽은 물고기를 백로가 먹어도 되겠는가, 걱정이 되더라고. 그래서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했지. ‘뭐 어쩔 수 없다’고 그러데.”

악취와 매연은 공장 바로 아래 위치한 김인수의 집에는 ‘직격탄’이었다. 2010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금강농산에서 뿜은 매연 탓에 아내 김순덕(68)이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온 가족이 공장으로 쫓아 올라갔다. 이갑찬 대표는 집을 사주겠다고 장담했다. 김순덕은 그날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말뿐이지. 늘 그런 식이었어. 우리 어매가 내 이름을 잘못 지었줬는갑지. 순하게 살라고 순덕이랬는데. 저짝(금강농산)이랑 싸우다 보니까 호랭이가 됐네.” 싸우다 지쳐 집을 내놓기도 여러 번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김인수는 마지막까지 금강농산에 재직했던 직원 중 한 사람이다. 14년을 일했다. 금강농산에서 일하게 된 건 이갑찬 대표 제안이었다. 공장 때문에 집이 피해가 많다고 하니 ‘보상’해주는 셈 치고 들어와서 일하라고 했다. 원재료를 분쇄하는 공정에 있었다. 김인수는 주민대책위가 세워진 후 공장 내부 정보를 톡톡히 제공했다. 폐기물을 어디에 묻었는지, 문제가 된 연초박은 어디에 쌓았는지 따위 정보는 금강농산에서 오래 일한 김인수가 아니었으면 주민대책위에서는 알 수 없을 정보였다. 김인수의 축사에는 당시 금강농산에서 사용했던 연초박이 지금도 쌓여 있다. 나중을 대비해 김인수가 옮겨둔 것이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민관협의회가 구성되고 역학조사가 시작되면서 김인수의 증언은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됐다.

금강농산은 계속 크기를 늘려갔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의 소음과 악취도 그만큼 늘었다. 공장 외벽을 감싼 슬레이트는 채 3년을 가지 못하고 부식했다. 김인수는 갈려나가는 슬레이트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두려움마저 끝난 건 아니다. “우리는 일종의 ‘보균자’여. 몸 안에 쌓인 유해물질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까. 요 작은 마을에서 벌써 몇 번 초상을 치렀나 몰라. 내 차례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무서운 거지.” 김인수의 집에는 얼마 전 칠순 잔치를 마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 딸이 케이크에 촛불과 함께 꽂았던 토퍼의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인생은 70부터. 아빠 사랑해요.’

ⓒ시사IN 이명익마을 이장 김인수는 금강농산에서 14년간 일했다. 연초박 등 환경오염 증거품을 모아뒀다.

금강농산에서 대각선에 위치한 장영수(57)의 축사도 피해가 만만찮았다. 특히 2008~2012년에 죽어나간 젖소가 스물다섯 마리였다. 소 한 마리가 죽을 때마다 25만원을 주고 포클레인을 불러서 묻었다. 장영수는 공장에 올라가서 몇 번이나 난동을 부렸다.

“스트레스 좀 풀고 왔지. 내가 몇 번을 쫓아 올라가니까 이갑찬이 나중에는 축사로 찾아왔어. 한 번만 살려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내가 당신을 살릴 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살려줘야 한다. 당신은 군산에 있는 집으로 가면 그만이고, 나도 냄새 피해서 문 꼭 닫고 집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소들은 어떻게 할 거냐.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공장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야 되는 거야.”

이갑찬 대표는 장영수에게 소 면역력을 높이는 약을 200만원어치 사서 보냈다. 매연을 줄여보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때뿐이었다. 경찰이며 면사무소, 시청을 쫓아다니며 신고를 하고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자포자기했다. “내가 이갑찬이한테 장점마을에 집 구해준다고 여기서 살으라고 했어. 콧등으로도 안 듣지. 지 목숨은 귀한가 보다 했지. 하여간 저 위에서 별거 다 태웠어. 간장 찌끄래기도 태우고. 공기 간을 맞출라고 그랬는가(웃음).”

해바라기의 꽃말을 떠올리다

익산시는 2019년 11월1일 환경친화도시 추진단을 발족하고 2020년 2월20일 장점마을을 제1호 환경시범마을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북도와 함께 206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2023년까지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한다. 익산시가 사들인 금강농산 부지도 활용 방안에 대한 용역을 맡긴 상태다. 환경교육 장소로 조성하자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장점마을은 지난 17년간 환경문제의 대표 마을이었다. 최재철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마을 곳곳에 해바라기를 심고 싶다. 어디선가 해바라기가 땅의 독성을 빨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해바라기의 꽃말이 마음에 들었다. ‘프라이드(pride)’, 긍지와 자부심을 뜻했다. 지금은 집단 암 마을이라는 낙인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언젠간 그 낙인이 마을을 바꾸는 전환의 힘이 되리라 믿는다.

ⓒ시사IN 이명익김형구(54·사진 맨 왼쪽)는 금강농산이 없어져야 아이들이 숨 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점마을 내 유일한 3대 가족. 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지영(24), 김윤후(5), 배유경(52), 김시후(4), 뒷줄 맨 왼쪽부터 김형구, 김민진(30), 김민영(13), 김민석(28).

 

기자명 익산/장일호·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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