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멀쩡하던 소가 죽었다. 죽은 소만 190마리. 동네 이웃들은 각종 암에 걸렸다. 신장암, 고환암, 갑상선암, 대장암…. 농부는 의심했다. 집 위에 들어선 대기업 관련 시설을 지목했다. 환경보호국에 따졌다. 문제가 없다고 했다. 소는 계속 죽어나갔다. 사람들도 죽어나갔다. 자신도 암에 걸렸다. 영화 〈다크 워터스〉에 나오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농부 윌버 테넌트의 이야기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농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변호사가 있었다. 롭 빌럿 변호사는 1998년부터 2017년까지 집단 발병 원인을 쫓았다. 주범은 미국의 거대 기업 듀폰사였다. 듀폰은 PFOA라는 독성물질을 알면서도 수십 년간 제품에 사용했다.

멀쩡하던 소가 죽었다. 죽은 소만 25마리. 동네 이웃들이 암에 걸렸다. 위암, 폐암, 자궁암, 피부암, 담낭암…. 주민들은 의심했다. 동네에 있는 비료공장을 지목했다. 지자체에 따졌다. 문제가 없다고 했다. 소들이 죽어나갔다. 사람도 죽어나갔다. 마을 주민 88명 가운데 18명이 암으로 죽었고 12명이 암으로 투병 중이다. 한국 장점마을에 사는 장영수(사진)의 이야기다. 장점마을 사람들은 비료공장이 들어선 2001년부터 정부가 공장과 집단 암 발병의 관련성을 인정한 2019년까지 17년간 싸웠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아직 승소는 없다. 대기업 듀폰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주민 3535명은 승소해 배상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의 장점마을은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공장 자체가 사라졌다. 문제의 공장 사장도 폐암으로 숨졌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롭 빌럿 변호사의 100분의 1만큼 의지를 가진 공무원이나 기자가 있었다면. 아니 장점마을이 서울 인근에 있었다면. 애초에 공장이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점마을 사람들을 ‘집단 암 마을’ 희생자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17년은 너무나 값지고 소중하다.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인정받은 첫 번째 사례다.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지난 2월 이명익·장일호·나경희 기자가 장점마을에서 살았다. 손평숙 문병준 최재철 하영순 김영환 이미은 최석환 이원애 박명숙 정경례 김형구 배유경 김민영 신옥희 김성숙 김양녀 이정수 최영자 박순옥 임증자 문봉학 최정녀 이소현 김상호 김낙길 이점례 김인수 김순덕 김민진 정지영 그리고 다섯 살 윤후와 네 살 시후를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었다. 세상을 바꾼 이들이며 가장 위대한 승리를 한 이들이다. 200자 원고지 258장에 달하는 장문의 기록은 언론인으로서 반성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장점마을 사람들의 소송 과정도 보도를 이어갈 것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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